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3번 유형 : 사무엘
1. 기도하는 사무엘
조슈아 레이놀즈 Joshua Reynolds의 1723년 작품 ‘어린 사무엘’의 기도하는 모습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성화로 꼽힌다. 그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아들로 이름도 shammael 즉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뜻의 사무엘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고뇌와 마음고생은 다른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이 보기에 한나가 술에 취해서 말한다고 오해하였을 만큼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서원기도까지 하였다.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기만 바란 것이 아니라 아들을 점지하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노라 구하였다. 아들을 주님께 바치면서 드린 한나의 기도는 후일에 마리아가 드린 기도의 패러다임이라 할 만하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기에 소중하였을 뿐 아니라 아이의 한평생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였기에 더욱 더 애지중지하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기만 하여도 3번 유형으로 크는 법이다. 하물며 하나님께 아이의 한평생을 바치기로 마음먹고 키우는 어머니가 얼마나 아이의 장래를 내다보고 존중하며 키웠을까는 너무나 자명하다. 어머니의 사랑과 인격적 대우를 받으며 긍정적 관계에서 자라난 아이는 그만큼 어머니를 사랑하며 존경하게 되기에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고 어머니를 닮으려 한다.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를 보고 배우는 사무엘이기에 어려서부터 기도가 생활습관이 되었을 것이다. 레이놀즈의 예술적 상상력과 일치하는 점이다. 그래서 어린 사무엘의 모습은 기도하는 사무엘로 그려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칠 때 말보다 행동과 삶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녀가 독서하기를 원하면 부모가 먼저 독서할 것이요,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기도할 일이다. 부모의 모습이 각인되고, 모범을 따르기 마련이다. 한나의 기도가 사무엘의 기도로 이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도 모습과 뜻이, 형식과 내용이 한데 어우러져야 온전한 법이다. 사무엘의 기도 가운데,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삼상3:10)라고 한 것은 경청하는 기도의 원형이다. 대개 사람들은 기도할 때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그친다. 응답은 바란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사무엘이 주님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한 것은 단순히 기도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성과 진실을 나타내준다. 3번 유형이 남에게 잘 나타내고, 잘 보이고 싶은 과시욕에 붙잡히기 쉬운데, 사무엘은 일찍부터 신실하게 배우며 자라고 있었음이 기도에서도 나타나 보인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곱씹게 된다. 에니어그램 인성으로 말하자면 만 6세에 성격 유형이 나뉘어지고 결정될 뿐 아니라 그때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방향을 결정하는 만큼 중요하다. 바로 정향 定向 되었다면 계속 바르게 가도록 도울 일이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바로잡아야 한다. 빠를수록 도움이 된다. 그래서 ‘성격이 운명이다’ Ethos Anthropoi Daimon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가 기도하고 은총을 입어 임신하게 되었고, 태중에 있을 때도, 출산과 양육과정에서도 기도로 컸고, 어린 나이에 엘리 제사장에게 배우고 훈련받은 만큼 기도하며 자랐으니, 기도하는 사무엘은 신실한 사무엘로 자라날 수 있었다.
2. 소명을 살리는 사무엘
‘주께서 한나를 기억하여 주셨다’(삼상1:19)고 기록되었듯이 한나가 은혜를 입어 임신하게 되었다. 아들을 출생하였을 때 한나는 서원한 것을 지키려 아이를 키웠다. 아직 어리지만 떼어놓을 나이가 되니까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에 있는 주의 집으로 갔다’(삼상 1:24)고 하였다. 주님께 사무엘을 바친 것은 결국 엘리 제사장에게 수종들며 그에게서 배우고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보면 사무엘은 나실인이 된 것이다.
성격이 어떻든지 간에 나실이 되면 주님께 온전히 자신을 성별하여 헌신하게 된다. 포도주를 마시지 않을뿐더러 포도나무에서 나는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 스스로 절제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며 헌신하는 생활을 한다. 이른바 수도생활에 전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일에 예수가 ‘나자렛’ 사람이라 불리운 것도 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음도 참작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이나 ‘나실’ 사람이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순종할 것을 생각하기로 말하면 나실인은 보통 사람에게 모범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결국 사무엘은 어떤 모양으로 살든지 하나님의 사람은 소명을 감당하고 그 소명에 충실하게 맞춰 살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표본적인 인물이 된다 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소명과 성격을 일찍이 발견하고 거기에 맞춰 살기로 말하면 인생에 성공할 수 있다. 사무엘은 그런 면에서 본보기가 된다. 랍비전승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리하고 똑똑하였다고 한다.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이 그렇게 똑똑하면 자칫 나서기 잘하고, 자기를 과시하며 잘난 척하기가 쉽다. 그러나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삼상 2:26)고 기록된 것을 보면 그만큼 소명을 감당하며 신실하게 큰 것을 엿볼 수 있다. 한나의 기도와 마리아 찬가를 대조하여 볼 수 있듯이, 이것을 ‘아기는 자라며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찼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눅2:40)고 기록된 예수의 어린 시절과 연결시켜 보게 된다.
사무엘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기도하고 준비하며 임신한 데서 시작하여, 임신 기간에 기도하며 태교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시하고 출산 후에 양육과정에서도 하나님께 바칠 아이로 사랑과 기도로 키우며 하나님의 뜻이 스며들도록 기른다면, 어떤 아이인들 사무엘처럼 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소명을 감당하기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세상에 난 목적과 인생을 사는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류를 사랑하는 것임을 발견하고 그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구르지예프도 에니어그램을 배우는 목적이 바로 ‘인류를 위해 사는 것’이라 한 뜻을 확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무엘이 소명을 감당하며 자라난 모습이 성서에서 발견되는 기록이 있다. 즉, ‘사무엘이 자랄 때에, 주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삼상 3:19). 실로 놀라운 일이다. 스스로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성취하도록 은총으로 도우셨다는 표현일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빠져들 유혹의 함정과는 거리가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 때 3번 유형이 가장 신실하게 살면서 결과적으로 성공하며 성취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듯하다.
3. 과도기의 지도자 사무엘
성서에 나타난 수많은 지도자 가운데 특히 과도기의 지도자를 꼽자면 사무엘만한 이가 없다. 이미 언급한대로 그는 마지막 사사요 첫 예언자였다. 그 뿐 아니라 엘리가 죽음으로써 제사장 겸 사사가 되었다. 그는 또한 사울과 다윗 두 임금에게 기름 부어 세움으로써 왕정시대를 여는 첫 번째 선지자가 되었다. 이렇게 서술하기는 간단한 것 같아도 역사 속에서 그 변화는 한 인간이 당대에 겪을 수 있는 것 치고는 엄청나게 큰 변화였다. 이와 같은 대전환기에 과도기적 리더십을 발휘하며 성취하는 사무엘에게서 성취자 본연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과도기의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으로 목적의식과 임기응변의 기지와 함께 성취동기가 뚜렷한 리더십을 꼽을 수 있는데 사무엘이 이런 것을 갖추고 있었다.
에니어그램 3번 유형에게서 발견되는 특징들이다. 인정욕구가 강하여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강렬하다. 그래서 성취욕과 성공의지가 강하다. 목적의식과 목표의식이 강하다보니 능률을 앞세워 밀고 나가는 드라이브가 강하다.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결과에 집착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기만에 빠지고 속임수를 쓰는 유혹과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기도의 영성을 가꾸었고,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어 자랐고, ‘사무엘이 말을 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여 들었다’(삼상4:1)고 하였을 정도로 신실하였다. 3번 유형의 덕목을 잘 살리고 있었다. 과정에서 충실하며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를 유지할 때 가능한 능력과 성실의 배합된 모습이다. 이렇게 사무엘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데는 그만한 활동과 삶이 있었음으로 본다. 사무엘이 청년이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을 때, 이스라엘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던 블레셋의 압박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도 희귀하여 막막하기만’ 하였다.
이런 위기의 때에 사무엘이 엘리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며 동시에 선지자와 사사로서 백성들 속에서 열정을 쏟아 살았다. 3번 유형의 탁월한 언변과 설득력이 때를 만난 상황이 되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전역을 두루 다니며, 율법을 가르치고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설 것과 회개하며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킬 것을 이스라엘에게 강력히 촉구하였다.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여’ 경청할 만큼 감동적인 설교를 하였다.
사무엘의 말을 경청하는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 금식기도를 하였다. 사무엘을 중심으로 하여 온 백성이 ‘죄를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 유명한 미스바 성회에서 ‘에벤에셀’이라 이름하여 돌을 세우고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하고 말하면서 상징을 삼았다. 절묘한 설득과 소통의 방편이었다.
새 시대의 지도자로 나선 사무엘이 과도기 현상을 극복하며 개혁을 시도하는 자리로 미스바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을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계에 있는 요새였고, 온 이스라엘의 기도와 경배의 장소였다. 바로 이곳에 온 백성이 모여 회개기도를 하고, 사무엘이 번제를 드렸을 때, ‘주님께서 큰 천둥소리를 일으켜 블레셋 사람을 당황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패하였다’(삼상7:10)고 기록되었다.
그야말로 이판, 사판, 기도 수행과 국정운영 양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드러내며 과도기의 지도자로 성공한 모습이다.
≪ 이판(理判) : 수도(修道)에 전념하는 일
사판(事判) : 사무와 재물에 관한 일을 맡아 처리함 ≫
4. 왕을 세우는 선지자 사무엘
전환기에 새 지도자로 출현한 사무엘은 실로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 왕정시대 이전의 마지막 사사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재판과 통치를 담당하였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예언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제사장 임무까지 수행하였다. 영성과 능력이 출중하여 그 모든 책무를 감당하였다. 동시에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에 이른다.
금식과 회개기도, 그리고 율법의 재발견을 통하여 종교개혁을 이룸과 동시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20년간 시달림을 받던 블레셋을 퇴치함으로써 국가 안보를 튼실하게 한 사무엘은 혁혁한 공을 세우며 든든한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선다. 기도와 영성과 신실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능력과 경건과 청렴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통치에 성공하는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공공의 책무에 충실할 때 자칫 사적 영역에 빈 구석이 생기는 안타까운 사정은 개인의 삶을 넘어서는 데까지 영향이 미친다. 사무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의 번영과 민생의 안정만을 위하여 그야말로 ‘멸사봉공’의 열정으로 일을 하며 사무엘이 가정을 등한시하고 자녀 교육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아주 이른 나이에 나실인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졌고, 자녀교육에 소홀했던 엘리 제사장 밑에서 수종들며 훈련받은 탓에 가정생활의 바탕이 빈약했던 점까지 생각하고 보면 사무엘의 아들들이 타락한 것은 그의 일생에 가장 아픈 부분이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진실은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다 하겠다.
비록 신실하게 평생을 살았던 사무엘이었으나, 3번 유형이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고 능률과 성공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은 아닌지 못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권력이 집중되었던 만큼,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가 된 뒤에 타락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무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자기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다’는 사실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따르게 되었다.
결국은 이런 일을 계기로 백성들의 마음이 사무엘에게서 떠나고, 왕을 요구하는 데 이른다. 장로들의 요청에 사무엘이 상심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삼상8:10).
사무엘은 결국 백성들의 요구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왕을 세우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끝까지 그는 왕정제도와 왕권의 문제와 한계를 바르게 인식시키며 예언자의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연 과도기의 지도자답게 사울과 다윗 두 임금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는 데까지 이른다. 숙명적으로 과도기의 지도자인 그가 왕을 세우는 일까지 한다.
출처 : 공동체성서연구원 김영운 목사님
사무엘이 자랄 때에, 주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사무엘상 3:19 표준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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