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1번 유형 : 모세
1. 물에서 건져 올린 모세
구속사 Salvation History를 보면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그리스도를 중심인물로 꼽는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모세를 ‘우리의 지도자’,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의 아버지’라 추앙한다. 기독교에서도 모세와 예수를 대비시켜 지도자로 본다.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율법의 선포자요, 메시야의 형상으로 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율법의 완성자요, 메시야의 실체로 본다. 어느 쪽에서나 모세는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다. 출애굽 사건 Exodus Event의 중심인물이 모세요, 그리스도 사건 Christ Event의 중심인물이 그리스도인 것처럼 중요한 인물이다.
모세가 태어난 시점이 히브리인들의 고난이 정점에 이른 위기의 때였다. 그가 출생하였을 때, 바로 Pharao가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라’고 명령을 내린 때였다. 그런데 갓 태어난 남자 ‘아이가 하도 잘 생겨서, 남이 모르게 석 달 동안이나 길렀다.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를 구하여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가 갈대 상자 속의 아기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그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았다. 다행히 그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공주의 양자가 된 자기 아들의 유모가 되었다.
“공주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하면서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Flavius Josephus는 콥틱어의 어원을 따라 모 Mo는 물, 세 uses는 건져 올렸다는 뜻이라 풀이한다. ‘건져냄’을 받은 사람이 ‘건지는’ 사람이 되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구원받은’ 사람이 곧 ‘구원하는’ 사람이 되는 뜻의 모형이다.
‘세월이 지나, 모세가 어른이 되었다.’ 이렇게 출애굽기 2:11이 서술하고 있다. 공주의 양자가 되어 왕궁에서 왕도교육과 훈련을 받고 학식을 쌓았다.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그 하는 말과 하는 일에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공주 비디아 Bithya의 아들이지만 혈육이 아니므로 바로의 후계자는 될 수 없었을지라도 지도자 교육을 받은 셈이다.
성장 과정을 보면, 친부모는 그림자 속에 있다. 친모는 유모 역할을 하였으나 영향을 끼치고 애정을 경험하게 한 시간이 짧았다. 아버지는 부재중이다. 성서를 보면 누구의 아들이라 말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꼭 언급된다. 그러나 모세의 아버지는 구약 학자도 잘 기억하지 못할 만큼 족보에만 나온다(아므람 출 6:20).
유아기 기원을 미루어 보면, 모세는 아버지가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관계로 볼 수밖에 없다. 친모는 유모로서 사랑을 주었겠으나 그 기간이 짧았다. 어머니가 된 공주는 왕궁의 법도를 따라 격식을 갖춘 모자의 관계가 유지되면서 부정적이지도 않고 긍정적이지도 않은 상태, 곧 양가적이라 볼 수 있다.
모세는 학식 많고, 능력이 있으며, 명료하고 충성스럽다고(민 12:3, 7-8)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았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모세의 다섯 가지 덕목을 ⑴ 지혜, ⑵ 용기, ⑶ 절제, ⑷ 정의, ⑸ 경건으로 꼽았다. 그러나 사후에도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 나지 않았다’(신 34:10)고 하는 인물에게 끝까지 따라다닌 격정은 역시 분노였던 것 같다.
2. 왕궁에서 광야로 간 모세
어느덧 40세의 왕자 모세가 하루는 왕궁 밖으로 나가 동족들의 강제노역 현장을 본다.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십장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그를 쳐 죽여서 모래 속에 암매장하였다. 분노의 격정이 터져 나온 결과에 다름 아니었다.
이튿날 다시 나가보니, 이번에는 동족끼리 싸우기에, 때린 사람을 제지하였다. 그러자 그가 대들면서,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요? 이제는 나도 죽일 작정이오?’라고 말하였다.
모세는 위에서 정보를 알고,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찾는 바람에 피신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쳐서 거기에서 살게 되었다. 왕자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늘 옳은 것을 추구하는 이가 스스로 격정에 사로잡혀 옳지 못함을 저지른 완벽주의자의 문제에 스스로도 놀랐을 것이다. 왕궁에서 광야로 나가게 되었다.
에니어그램 1번 유형인 모세는 평소에 완전과 정의를 추구하며 살았다. 아랫사람들은 그를 거역할 수 없었을 터이니 별 문제가 안 생길 수도 있고 웬만한 일은 시정 명령을 내리면 해결되었을 터이다. 그밖에는 윗사람에 대한 문제가 생기면 참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럴 때 1번 유형인 모세는 감정을 억제하였을 터이고 따라서 반동형성 reaction formation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주의자는 불의와 실수를 포함한 ‘불완전’을 보면, 분노의 격정이 유발된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하자니 그 자체가 또한 불완전하기에 분노를 기피하며 참다가 쌓인다. 억제된 감정이 약한 곳으로 분출되는 속성이 이집트인 노예 감독관을 쳐 죽이는 데로 나타난 것이다. 한동안 궁중에서 억제되던 격정이 분노로 표출되고 나서 그것을 의식하면서부터 기피와 격정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 문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모세로 말하자면, 땅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민 12:3)고 인정하신 사람이다. 이토록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보다 겸손하면서도 자기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하나님에게나 높은 사람에게 항변하고 싶었던 것까지 억제하던 감정이 격정으로 분출된다.
격정을 바로 알고, 격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익하며 수련하지 않으면 모세처럼 왕도교육을 받고 학식과 능력을 쌓은 사람일지라도 분노의 격정을 다루지 못하면, 그것을 의식하기 시작한 때부터 격정에 사로잡힌다. 아홉 가지 격정 가운데서도 1번 유형의 격정인 분노는 표출될 때마다 자타가 강렬하게 느끼게 되는 것 또한 특징이다.
왕궁에서 살 동안 평정을 유지하며 품위 있게 살던 모세였으나, 왕궁 밖에서 격정에 사로잡혀 큰 실수를 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면서 자책도 죄의식도 커지면서 격정을 의식하게 되었다. 하여 격정에 사로잡히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거나 분노가 치미는 것을 전에 없이 경험하게 된다. 1번 유형은 이렇게 하여 스트레스를 받으면, 특히 사회적 관계에서 불안을 느낀다.
호렙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해내라!’는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도 알리바이를 내세우며 선뜻 응답하지 못한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을 터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가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그리고 이어서 ‘그들이 저를 믿지 않고, 저의 말을 듣지 않고, 주께서는 너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하면 어찌합니까?’ 심지어 ‘저는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3. 민족의 영도자 모세
바로의 궁정에서 왕도교육을 받고 왕족으로서 평정 serenity(‘전하’라는 뜻도 됨)과 품위를 지니고 살던 모세가 한순간 분노의 격정에 사로잡혀 뜻밖의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자가 되고 말았다. 미디안 땅에서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목자로 살게 되었다.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삶이 축소되었다. 꿈도 접고, 자괴감도 좌절감도 느꼈을 것이다.
어느 날 ‘양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거기에서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야훼,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만난다.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라고 스스로 계시하시는 야훼 하나님을 만난다.
야훼 하나님을 만나고, 야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는 모세는 자신의 불완전과 모자람과 무능력을 자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실 뿐 아니라 자신감을 갖도록 만들어 주신다. ‘나는 곧 나다’ 하는 자기 정체성과 함께 자기 존중감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보내심을 받는 과정에서나, 더욱이 정체성이 확립되기 이전에, 평정을 잃고 완전주의란 함정에 빠지며 격정에 사로잡힐 때, 모세는 스스로 자신감도 없고, 능력도 없고 말도 잘 못한다고 하였다. 1번 유형은 남이 보기에는 말을 잘하는데도 완전주의의 덫에 걸리면, 스스로는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함께 자신감을 갖게 되면 좋은 지도자가 된다.
현대에서도 선출직 대통령이 된 1번 유형은 세계를 통틀어서 그리 많지는 않으나 일단 대통령이 되면, 가장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모세가 하나님의 세우심으로 지도자가 된 이후 민족의 영웅이요, 영도자가 되는 모습에서도 같은 현상을 보는 듯하다. 모세보다 세 살 위의 형인 아론이 대변인이 되도록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출 4:16).
하나님을 만난 모세, 자기를 재발견하고,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모세는 이제 다시금 광야에서 왕궁으로 간다. 도망자가 되어 쫓기듯 나왔던 모세가 이제는 ‘하나님의 종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왕궁의 바로를 찾아간다.
모세가 아론과 함께 바로에게 가서 말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거절할 뿐 아니라 강제노동을 한층 더 강화시키도록 명령한다. 벽돌을 만드는 데 쓰는 짚을 더 이상 이전처럼 대주지도 못하게 하였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졌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모세는 주께 돌아와 호소하였다. 결국 하나님께서 ‘야훼 하나님’의 뜻을 재확인하게 하시며 다시 자신감을 갖게 하심으로써, 모세는 평정을 되찾게 된다. 1번 유형이 좌절감을 느끼면 불안해지던 것을 극복하게 된다. 하나님께선 ‘보아라, 나는 네가 바로에게 하나님처럼 되게 하고, 너의 형 아론이 너의 대언자가 되게 하겠다’고 결정적인 말씀을 하신다. 평정과 자신감을 되찾은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열 가지 재앙을 거쳐, 마침내 이스라엘이 엑소더스를 감행하도록 이끄는 민족의 영도자가 되어 홍해 바다까지 건너게 된다.
4. 가나안을 바라보기만 한 모세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한 인물이 크면, 그만큼 빛도 그림자도 크기 마련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민족 영웅, 종교지도자, 율법 선포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 중재자 등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운 대단한 인물이다. 히브리인들의 표상이요, 예언자의 아버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 지도자들의 역할 모형 role model이라 할 만 하다.
출애굽 전에 보여준 열 가지 재앙을 비롯하여 숱한 기적을 보이고 홍해 바다를 건너는데서 부터 얼마나 많은 위기를 그때마다 극적으로 넘긴 지도자였던가! 그리고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근성에 찌들어서 나오는 원망, 불편, 불만, 반란을 모두 견뎌내며, 이기고, 지도력을 발휘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었다.
출생에서 성장과정이 특이한 그였다. 모세의 일생을 셋으로 나누면, 왕궁에서 40년, 미디안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이라 할 수 있다. 왕자에서 목자로, 그리고 민족의 영도자로 파란만장한 120년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신 34:7)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모세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나지 않았다. 주께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모세와 말씀하셨다. …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모세가 한 것처럼, 큰 권능을 보이면서 놀라운 일을 한 사람은 다시 없다.’(신 34:10-12)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두고 말씀하시면서 아론에게나 바로에게도 ‘하나님 같이 될 것’이라 하셨고,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민 12:3) 하셨고,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 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민 12:7-8)라고 하셨다.
복음서에서도 모세와 예수는 늘 대조된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와 모세가 더욱 빈번하게 대조될 뿐 아니라 예수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요 3:14)고 언급하셨다. 예수가 타볼산 위에서 영광 가운데 변화하실 때에도 엘리야와 모세가 함께 있었다고 공관복음서(마 17, 막 9, 눅 9)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실로 위대한 인물이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으로 비쳐 보며 한편으로 몹시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인간적으로 동정할 수밖에 없는 지도자의 고뇌와 고통이 컸음에도 격정으로 인한 대가를 너무 크게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타락한 백성의 성화에 못 이겨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에, ‘모세는 화가 나서,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돌판 두개를 산 아래로 내던져 깨뜨려 버렸다.’(출 32:19).
하나님이 손수 새겨 주신 십계명의 돌판을 깨뜨린 모세는 격정에 사로잡혀 ‘자기의 친척과 친구와 이웃을 닥치는 대로 찔러 죽여라’ 하신다고 외쳤다(출 32:27). 모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대목을 보고 가장 끔찍한 분노라 한다. 명령을 어기고 만나를 욕심껏 거두어들인 사람들 때문에 ‘모세가 그들에게 몹시 화를 내었다’(출 16:20).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민족의 영도자로 뇌물도 모르고 오직 정의롭게 살아온 모세였으나 가데스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민 20:12)는 이유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는 결정이 난다. 빛나는 영웅의 삶은 결국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에서 가나안 땅을 멀리 바라보며 숨을 거둔다.
출처 : 공동체성서연구원 김영운 목사님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 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민수기 12:3, 7-8 표준새번역)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모세가 한 것처럼, 큰 권능을 보이면서
놀라운 일을 한 사람은 다시 없다.
(신명기 34:7, 12 표준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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