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2번 유형 : 룻

나효선 2016. 10. 1. 12:00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2번 유형 : 룻

 

1. 함께 가는 룻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세상에는 저마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디모데를 천거하면서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라 한 말이 비쳐진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세상에서 남에게 잘 주고, 돕고 돌보며 봉사를 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들이다. 이들은 자신보다 남에게 뭐가 필요한가를 얼른 알고 다가가서 도와주는 선수들이다. 성서에도 이런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룻은 특기할 만하다.

 

에니어그램으로 조명하기 이전에 룻은 특기할 사항이 많이 있다. 본디 유대인이 아니라 모압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었고, 예수의 조상이 되었다. 문학 형식으로 말하자면, 저항문학이다. 성서에 여성의 이름이 붙은 책이 에스더와 룻기뿐이다. 외경에는 유딧이 하나 더 있다. 그만큼 희귀한 중에도 룻은 이방 여인이었다.

 

사사시대에 기근이 극심하여 이스라엘 가족이 모압으로 이주한다. 엘리멜렉이라고 하는 유다 베들레헴 태생의 한 남자가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거느리고 모압 땅으로 건너가 거기서 살게 된다.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자,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다. 두 아들은 다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룻이고, 또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바였다. 그들은 거기서 십 년쯤 살았다. 그러다가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으니, 나오미는 남편에 이어 두 아들마저 잃고, 홀로 남았다’(롯 1:3-5).

 

룻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배경이 급전직하로 그려진다. 때마침 고향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가 살던 곳을 떠날 때에 두 며느리도 함께 떠나서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선다.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들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룻 1:9∼) 라고 하면서 축복해주며 작별하려고 할 때, 며느리들이 큰 소리로 울면서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도 어머니와 함께 어머님의 겨레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들의 작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랜 실랑이 끝에, 작은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면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떠났다.’ ‘그러나 룻은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달라붙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룻이 말한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더욱이’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룻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구구절절이 시요, 신앙고백이요, 충효의 결단이다.

 

자신의 필요보다 남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돌보는 2번 유형의 특성이 이보다 더 웅변적으로 드러날 수가 없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나오미가 말한 것처럼 시동생이 남아 있어서 레비레이트 Le- virate 혼을 할 형편도 아니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서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가겠다는 결단이 돋보인다. 자기의 처지보다도 시어머니의 처지를 생각하여 함께 가는 룻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다.

 

 

2. 이삭 줍는 룻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에 돌아 왔을 때는,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룻의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척 가운데 재력이 있는 보아스가 살고 있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의논하여 추수하는 밭에 나가서 이삭을 줍기로 하고 갔는데 우연히도 보아스의 밭이었다. 보아스 역시 남의 필요는 재빨리 알아채고 돕는 2번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는 룻의 특성을 빨리 간파한 듯하였다.

 

누구라도 자기 관찰과 자기 수련을 하며 사는 사람이면 다른 사람의 인성을 잘 파악한다. 그중에서도 자기와 같은 성격 유형이면 그만큼 동질감을 느끼며 더 빨리 그 특성을 알아차린다. 보아스의 눈에 비친 룻이 그랬을 것이다. 특히 보아스가 룻을 배려하며 자상하게 도와줄 뿐 아니라, 이미 나오미에게 룻이 ‘어떻게 하였는지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2번 유형들은 남의 필요를 잘 아는 것처럼 남의 사정에도 밝고 정보도 잘 안다. 어쩌면 룻이 보아스의 밭을 찾아간 것이나, 보아스가 룻을 만나기 전에 이미 룻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던 데서도 그런 특징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보아스는 룻에게 이르기를 다른 밭으로 가지 말 것과 자기 밭에서만 있을 것과 일꾼들이 곡식을 거두는 밭에서 눈길을 돌리지 말고, 이삭을 줍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젊은 남자 일꾼들이 룻을 건들리지 못하게 조처하는 것과 동시에 목이 마르거든 물단지에 가서 물을 마시도록 하라며 특권을 준다. 룻이 감격하여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하였다. 룻은 감당하기 어려운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시어머니와 둘이서만 사는 룻이 시어머니에게 효도를 한 것이 이미 알려진 덕이었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들은 남의 필요를 빨리 알고 돕는 대신에, 자기 자신의 필요는 잘 못 보는 탓에 자기가 한 일을 남에게 자랑함으로 자기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있다. 2번 유형이 남의 필요를 인식하는 만큼 자기 자신의 필요를 알고 대처하게 되면 자랑하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겸손해진다. 룻에게서 나타난 겸손이 시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더욱 빛나게 하였을 것이다.

 

보아스는 룻에게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일에 대하여 더할 수 없이 너그럽게 배려하며 조치할 뿐 아니라 룻이 한 일은 주께서 넉넉히 갚아 주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주실 것이오’(룻2:12) 라고 축복하여 준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 대목에서 룻기의 저항문학이 지닌 핵심이 드러난다. 에즈라, 느헤미야가 시도한 개혁에 저항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방 여인도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면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온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룻은 이방 여인이나 유대교로 개종하여 다윗 가문에 편입되어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된 것이다.

 

그토록 너그럽게 대해준 보아스에게 룻이 가까워질 수 있는 지혜를 시어머니 나오미가 가르쳐준다(룻3:1-5). 룻이 ‘어머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하며 보아스에게 ‘다가가서 보아스의 발치를 들치고 누웠다.’(룻3:7) 보아스가 자다가 놀라서 깨었을 때 룻이 말한다. ‘어른의 종입니다. 어른이야 말로 집안 어른으로서 저를 맡아야 할 분이십니다’(룻3:9).

 

나오미의 다른 며느리 오르바처럼 자기 고향 친척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룻이었지만 시어머니에게 효를 다할 뿐 아니라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이 되어 고난을 무릅쓰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하여 이삭을 줍고 살았다.

 

 

3. 한결 같은 사람, 룻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을 흔히 두 얼굴의 휴머니스트라 한다. 잘 주고, 잘 돕고, 봉사 잘 하는 모습은 분명히 휴머니스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하는 면보다 실은 자기가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남에게 잘 주고, 돕고 봉사하는 성향이 있어서 나오는 말이다.

 

이타심은 따지고 보면 이기심의 다른 면이나 마찬가지다. 건강한 사랑은 순전하고 단순한 법이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저 단순한 사랑이다. 꼬리표가 달리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다. 2번 유형이 이런 사랑을 하면 한결같은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랑을 하려면, 뭘 해서가 아니라, 평소에 자기는 사랑받을 사람이라는 확신과 자존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봉사를 하는 것도 사랑을 받기 위해서 하다 보면 늘 자기중심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한결같기가 어렵다.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만큼 사랑받지 못하든가, 관심이나 사랑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렇게 되도록 만들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조작하게 된다. 인위적으로 사랑을 끌어내려 한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면 이중삼중으로 자존심이 상하고, 그래서 화가 난다.

 

남달리 자존심이 강한 2번 유형이 그래서 한결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답답하고 느리게 보일지언정 관성의 법칙이 강한 에니어그램 9번 유형에 비해서는 많이 힘든 편이다. 그래서 2번 유형은 변덕이 심하거나 공격성이 나타나기 쉬운 편이다. 평소에 남에게 잘 주고 돕는 것과는 딴판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두 얼굴의 휴머니스트가 된다.

 

남보다 에너지도 강하고, 특히 봉사해야 된다는 유혹이나 강박관념이 함정처럼 작용하는 2번 유형들은 지칠 줄 모르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일을 한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우아하고, 한결같은 사람이 되는 비결은 자기의 필요는 스스로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자기는 뭘 안 해도 사랑받을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룻은 2번 유형 가운데서도 한결같은 사람으로 돋보이는 인물이다. 성서의 인물들 가운데서 별별 사람이 다 있는가 하면, 같은 2번 유형 가운데서도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룻은 특별히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2번 유형이 이런 상태에서 살아갈 때, 지위나 환경이 어떻든 간에 우아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더욱이 이방 여인으로 유대인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에즈라와(10:2) 느헤미야가(13:23) 개혁을 단행할 때, 유대인들과 결혼하여 살던 이방 여인들을 쫓아 보내던 환경을 생각하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분도 지위도 현격한 차이가 있는 보아스에게 높이 평가받고 인정받았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룻이 지닌 아름다운 영혼과 한결같은 사람의 인품이었음을 본다.

 

후일에 신학자들이 룻기를 편협한 선민사상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다윗 왕권을 강조한데 대한 저항문학으로 보는 것도 결국은 주인공인 룻이 돋보이는 인물이었음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여성이었다.

 

인성 유형이 어떻고, 성격이 어떻든 간에 한결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수련의 목표이다. 한 때 잘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날마다 수련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때에만 한결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재확인한다.

 

 

4. 아름다운 사람, 룻

 

룻은 이름값을 한 사람이다. 그 뜻이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웬만큼 건강하게 사는 2번 유형도 남을 잘 돕고 봉사 잘 하며,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는 말은 들어도 ‘아름다운 사람’ 또는 ‘우아한 사람’ 이란 말을 듣기는 쉽지 않다. 프라이드가 강하고 자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룻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칭송할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2번 유형이 건강하게 살 때는 감정이입이 잘 되어 공감 empathy을 잘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도 남들 때문에 애 끓이는 마음 없이 부드럽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역지사지란 말처럼 남들의 처지에 자기를 놓고 보며 늘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한다. 가슴이 따뜻하고 남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인정하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봉사하면서 남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상대방이 행여나 빚진 감정을 느낄까 조심하며 배려한다.

 

남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깊이 배려하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 순전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우아한 인상을 준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꾸밈없이 남들에게 다가간다. 봉사 잘하며 겸손한 사람이 되니 칭송받을 만하다. 룻이 그런 사람이었을 듯싶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필 가치가 있다.

 

시어머니가 작별하자고 하였을 때 룻이 고백과 결단으로 시를 읊듯이 진심을 토로했을 때,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을 보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룻1:16-17,18). 심지가 굳은 여인임을 보여주었다. 일꾼들이 하는 말이다: ‘아침부터 와서 지금까지 저렇게 서 있습니다. 아까 여기 밭집에서 잠깐 쉬었을 뿐입니다.’(룻2:7).

 

집안 어른인 보아스가 말합니다: ‘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알고 있소.’(룻2:11). 자기가 잘한 것을 자랑하지 않았던 면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자기를 보아스의 손에 맡기려 하였을 때도, 기꺼이 맞아들이는 보아스는 룻에게 말한다 : ‘룻, 그대는 주님께 복 받을 여인이오.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은 남자를 따라감직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지금 그대가 보여 준 갸륵한 마음씨는, 이제까지 보여 준 것보다 값진 것이오.’(룻3:10). 상대방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마침내 보아스와 결혼하여 룻이 아들을 낳았을 때,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룻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룻4:13) 그 아기가 바로 오벳이다.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는 아기다. 룻이 이토록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송을 듣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표현과 묘사 속에 담긴 룻의 인품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2번 유형이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조화와 균형에서 나온다. 남의 필요를 잘 아는 것과 자신의 필요를 알고 인정하는 것의 균형이 잡히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한 일이나 봉사에 대하여 더 이상 자랑할 필요가 없게 된다. 자신이 하는 어떤 행위도 사랑을 받기 위하여, 또는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숨은 동기 ulterior motivation 조차도 순수한 사랑의 표현으로 할 따름이다.

 

공감 empathy과 뜨거운 동정심 com- passion으로 봉사하며 사랑으로 일관할 때 2번 유형은 사심 없이 도우며 봉사하는 사람의 순전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남에게 감동을 줄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감동이 되는 삶을 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름다운 룻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된다.

 

출처 : 공동체성서연구원 김영운 목사님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더욱이’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룻기 1:16 표준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