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인물과 에니어그램 역동성 9번 유형 : 행동하는 평화주의자
에너지가 누구보다 크면서도 상당 부분을 속에 지니고 사는 9번 유형은 남을 불편하게 할까봐 목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듯이 잘 나서지도 않는다. 갈등을 피하고 평화를 만들며 화해를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심리적 나태에 빠져 미루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눈을 감거나 자게 된다. 적극적으로 평화를 일구며 무조건 사랑해야 근면과 활동이 강화된다.
9번 유형을 ‘외유내강’이란 말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이는 좋은 말이지만 자칫하면 겉모습이 부드럽고 편해서 무기력하게 보이거나 속에 있는 강한 힘이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이들은 갈등을 싫어하고 기피해서 평화를 원하면 소극적인 평화가 될 수 있다. 갈등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극복할 때 온전한 평화가 이루어진다. 보존 본능 때문에 현상 유지를 하려고 애쓴다. 마음속에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생명 본능이 창조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면 적극적인 평화를 추동(推動)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9번 유형의 대표다. 보존 본능이 강한데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끝없는 순례의 길을 가며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며 살았던 모습은 보통 상태인 9번 유형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근면과 활동, 도전의 표본이다. 그러나 남을 위해 기도하며 양보하는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도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반격정(反激情)에 사로잡혀 3번 유형의 격정인 기만에 빠지기도 했다. 보통 사람에게 현상 유지는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평화주의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더 넓은 세상의 평화를 이루려면 국지적 환경에서 탈출해야 한다.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느라 ‘고향 집’을 떠나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어느덧 자발적으로 ‘끝없는 탈출’을 시도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다. 그는 정신 심리적 나태를 떨쳐 내고 새로운 일, 관계, 환경에 도전하며 나갔다. 그가 스스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바보의 나눔’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목을 살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3번 유형의 성공과 성취를 무리하게 지향하는 경우에는 반격정에 사로잡히는 결과에 이른다.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는 가장 아름다운 우정의 상징이다. 권력에 있어서는 다윗이 돋보이지만, 우정과 너그러움에 있어서는 요나단이 단연 우월하다. 요나단은 왕세자로서 다윗을 지켜주고 왕이 될 것을 내다보며 목숨 걸고 사랑하며 지원했다. 다윗은 좋은 자질과 소명을 지녔지만 요나단이 없었다면 왕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나단이 왕자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는 자세와 결단으로 다윗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지원했기에 다윗이 살아남아 마침내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누구나 목숨 걸고 쟁취하며 지키고 싶어 하는 권좌를 미리 내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요나단에게도 아브라함처럼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은 초연의 영성이 엿보인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빼어난 사도 바울도 과연 바나바가 없었더라면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것이 가능했을까. 이는 요나단이 없었더라면 다윗이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과 마찬가지다. 바나바는 관용과 사랑, 평화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그 이름 자체가 ‘위로의 아들’인 것처럼 언제나 위로하고 지원하며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았다. 초기 교회 형성사를 보면 단연 바나나가 돋보인다. 그는 자기 소유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쳤을 뿐 아니라 스스로 헌신하며 집사로 일했다. 사람을 보는 눈 또한 밝아 일찌감치 바울을 알아보고 지도자들에게 천거했으며, 그 이후에도 그를 지원하고 협력하며 선교 여행에 동행했다. 선교 여행 도중에 마가 때문에 갈등이 생겼을 때도 바나바는 약자 입장에 있는 마가의 편에 서서 바울과 헤어져 따로 길을 간다. 바나바는 관용과 화해를 중시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평화운동의 원칙으로 상호이해, 상호인정, 상호존중, 상호수용, 상호협력을 꼽는데, 이를 체화해서 산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의 삶 자체가 평화요 화해라 하겠다.
9번 유형은 품이 넓다. 양보하고 위로하며 참아주고 너그럽게 사랑한다. 이들에게는 스트레스 받을 때 움츠러들며 나태의 격정에 빠지는 것을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다. 심리적 나태에 사로잡히는 것이나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을 극복하며 무조건의 사랑을 살리기만 하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근면과 활동이 강화되며 평화와 관용의 품이 넓어진다. 행동하는 평화주의자가 된다. 느리지만 꾸준히! 이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속도 감각이 떨어지면 누구나 무기력해지기 쉬운 법이다.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지나치지 마라’는 에니어그램 격언이 여기서도 적절하다. 느림의 미학은 좋으나 나태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9번 유형은 관성의 법칙이 강한 성향을 띄는데, 지속성이란 긍정적 면이 있는가 하면 타성이란 부정적 측면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붙어 있다.
정신 심리적 나태 indolence는 무통 또는 무기력과 통한다. 심하면 ‘얼음’이 되어 마비되고 무감각해진다. 이를 깨고 나가면서 인내와 관용, 평화로 에너지를 변환시켜 살리는 동력이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임을 깊이 인식하고 살림으로써 9번 유형은 행동하는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는 ‘귀를 먹먹하게 하는 침묵’처럼 모순 어법 같으나 조용한 평화주의자가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살리는 역설적 진심의 역동적 모습이다.
앞서 살핀 인물들을 생각하면서 자기 관리와 위기관리에 대해 살펴보자. 9번 유형은 보존형으로 평화주의자 기질이 강하다. 화해주의자이면서 보존주의자이기에 현상 유지에 관심이 많고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갈등을 기피한다. 심하면 자기 부정이나 자기 비하의 함정에 빠진다. 외유내강의 전형으로 남달리 에너지가 크면서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남이 압도당할까 봐 스스로 조심하여 움츠러들 정도다. 이들은 마음만 먹고 나서면 누구보다 큰 저력을 드러내는 리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을 기피하느라 나서지 않는 관성이 크다. 격정에 사로잡히면 이런 성향은 정신 심리적 나태로 작용한다.
9번 유형은 어려서부터 착한 아이의 표본으로 자라서 화합과 평화를 이루는 성향이 강하다. 가정에서부터 평화롭게 살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그런 환경과 관계로부터 분리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들은 어려울 때도 그대로 참고 가만히 있다 못해 ‘얼음’이 될 정도로 움츠러들고 굳어지고 타성에 빠진다.
9번 유형은 만 여섯 살을 전후해 부모와 긍정적인 관계를 경험한 기억이 있고, 갈등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어쩌다 갈등을 겪게 되면 낯설고 두려워서 기피하게 된다. 그래서 지나치게 친절하고 수용적으로 자라면서 거절을 못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평화가 우선인지라 갈등과 긴장을 피하려다 남을 답답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9번 유형은 정신 심리적 나태의 격정을 사로잡고 자기비하를 무조건적 사랑으로 변환시키면 근면과 행동을 남달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품을 수 있는 큰 잠재력을 속에 가두고 인내하며 있던 터에 이것이 놀라운 저력으로 분출된다. 이들은 소통과 일치와 통합을 이루는 평화스러운 리더가 된다.
평화주의자 기질이 강한 9번 유형은 위기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면 정신 심리적 나태에 빠지고 무책임할 정도로 위축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나 남다른 인내심과 포용력, 무조건적 사랑의 활동으로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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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으로 보면 인간의 의식은 4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잠자는 상태, 둘째는 선잠 깬 상태, 셋째는 자기를 의식하는 상태, 넷째는 객관적 세계와 우주를 의식하는 상태로 크게 나눈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성에 젖어서 기계적인 삶을 산다.
생각(지성), 느낌(감성), 행동(활동)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살아간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삶의 의미도 목적도 모른 채 산다.
참 지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각(Thinking), 느낌(Feeling), 행동(Doing) 즉 지성, 감성, 본능 이 세 가지가 조화되고 균형을 이루도록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하고, 기계적 삶에 저항하며 살아야 하며, 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일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
출처 : 공동체성서연구원 김영운 목사님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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