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성서 인물과 에니어그램 역동성 4번 유형 : 침착한 예술가

나효선 2014. 9. 3. 00:05

성서 인물과 에니어그램 역동성 4번 유형 : 침착한 예술가

 

외로움을 타면서도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공상을 잘한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면서 감성이 풍부해지고 상상력이 커지면서 예술적 감각과 직관력이 강한 사람이 된다. 남달리 몸과 마음이 아픈 것에 예민해서 상처에 민감하다. 이들은 섬세함과 독특함 때문에 남들이 못 보고 못 느끼는 것을 다 보고 느낀다. 그러다 보니 더 독특해지고 끊임없이 독특성을 추구한다. 또한 무엇이라고 딱히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것까지도 통찰하며 그 속에서 부조리와 부조화를 간파한다. 4번 유형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다. 항상 불편하고 부족하며 부당하다고 느끼니까 공상의 세계로 나래를 편다. 상상력의 날개가 펼쳐진다. 이들은 진선미에 대한 열정이 크고 내면에서부터 정의와 평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도 풍부하다.

 

의인 욥은 질병에 시달리며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한다.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난’ 대표적인 경우다. 성서에서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욥은 말도 안 되는 고난도 ‘필요한 고난’으로 받아들이며, ‘자발적 고난’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풍부한 상상력과 깊은 영성이 조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영성 수련의 중심에는 ‘자발적 고난’이 자리한다. 에니어그램 수련에서는 더욱 큰 비중을 둔다.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고난 없는 행복은 없다. 크고 작은 어떤 고통도 참고 견뎌 내면 덕이 된다. ‘고진감래’란 말도 있지 않은가. 고생을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 모든 종교를 통틀어 봐도 ‘자발적 고난’이라 하면 욥의 고난만 한 것이 없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에서 극치를 이룬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 안 해도 될 것 같은 고생이라도 견뎌 내면 덕이 된다. 4번 유형은 민감성과 섬세함에 더불어 ‘상처 입을 가능성’이 남달리 크기에 몸과 마음이 고통을 잘 느끼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남들이 모르는 세계를 보여주며 고통과 상처를 승화시킨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치유를 경험하게 한다. 자신의 상상과 하늘의 뜻이 다른 것을 알고 사명을 피해 도망치는 요나는 독특성을 추구하며 자신의 직관을 과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뜻을 좇는 요나의 모습에서 우리는 ‘요나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 문제를 밝히 볼 수 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기로 하면 신의 뜻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신과 갈등을 일으킨다 할 수 있다. 특히 4번 유형은 그들의 독특한 직관력과 상상력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물론, 신과도 갈등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상상과 통찰이 독특하다 믿는 것이 그만큼 강한 까닭이다.

 

유일신 하나님이 선택받은 민족만 구원하고 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이방인을 구원하라는 신의 명령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내 생각과 신의 생각이 같지 않다면 인간이 승복해야 할 일이 아닌가? 이는 내면에서 하나님을 경청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며, 대화가 이루어지면, 하나가 된다. 신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러나 요나는 그 ‘경청의 예술’을 잃어버렸다. 우리 모두가 그렇고, 특히 4번 유형들이 그렇다. ‘귀족’이라는 별명이 붙는 4번 유형이면서 실제로도 귀족이었던 이사야는 예술가적 상상력이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예언자들은 대개 4번 유형인데, 이사야는 그중에서도 빼어난 인물이었다. 메시아와 그의 나라에 대한 비전과 더불어 평화에 대한 환상과 예언은 그 어디에도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 이사야 예언에 나타난 비전은 실로 웅장하다. 평화의 나라, 영원한 나라, 평화의 왕, 영원한 구세주에 대한 환상은 정말 대단하고 훌륭하다. 스케일이 크다. 그러면서도 섬세하다. 이사야는 그 모든 웅장한 비전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바로 아는 데서 비롯됨을 밝힌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이사야 1:3). 그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과 믿음이 없으면 그 웅장한 비전과 예언도 허사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그의 예언은 섬세함이 단연 출중하다.

 

독특성과 진정성을 추구하는 4번 유형의 열정은 대단하다. 그것이 지나쳐서 시기(猜忌)의 격정으로 빠지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예술성과 상상력을 살리면 이들은 과연 귀족 같은 우아함과 균형감을 갖게 된다. 4번 유형은 다른 어떤 유형보다도 예민한 유형이지만 흠이 생기거나 틀릴까 봐 스트레스 받는 것을 극복하고 침착의 덕목을 살리면 우아하면서 감정의 균형과 함께 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지만 남다른 능력이 있거나 특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중용과 절제가 더 절실하게 요청된다. 감수성과 열정이 대단한 4번 유형이 절제하며 중용을 살리면 큰 힘이 마음속 깊이 자리해 마침내 내공이 쌓이고, 감정의 균형이 이루어지면서 겉으로는 침착과 우아함이 나타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천재성과 예술성으로 세상에 공헌하면서도 자신은 고통을 극심하게 겪는 사람들을 본다. 상상력과 직관력, 창의력이 남보다 더 많은 사람일수록 그만큼 침착과 중용, 절제가 더 요청됨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앞서 살핀 인물들을 생각하면서 4번 유형의 자기 관리와 위기관리에 대해 살펴보자.

 

4번 유형은 개인주의자면서 예술가적 기질이 강하다. 독특성과 진정성을 추구하는 성향이라서 평범한 것을 기피한다. 평범한 것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살자니 끊임없이 상상하게 되고 창의성을 발휘해 독특한 것을 찾거나 스스로 무언가 창작하려 한다. 뜻대로 안 되면 좌절감과 우울감에 빠지고, 예민하던 감정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혼자 공상과 상상에 빠지는 일에 익숙하다. 누구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혼자서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다 보니까 틀리거나 흠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서 무결주의자가 되기 쉽다. 잘하려는 마음과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완전무결’을 외치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평범한 일은 안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면제의식을 갖는다.

 

4번 유형은 만 여섯 살을 전후해 부모와 부정적인 관계를 맺은 경험과 기억이 있다. 대개는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라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부모의 사랑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고 스킨십이 부족했던 경우다. 이들은 공상이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발전하며, 개인주의적이고 감성적 면이 강하다.

 

4번 유형이 시기의 격정을 사로잡고 감정의 균형과 침착의 덕목을 살리면 빼어난 상상력과 창의성, 침착성이 결합해 일의 완성도를 높이고 자기 분야에서 첨단을 달리게 된다. 심미안과 리더십의 배합이 멋진 리더를 만든다.

 

예술가 기질이 강한 4번 유형은 위기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면 자기 분노와 우울감에 사로잡히기 쉬우나 남다른 상상력과 창의성을 침착과 감정의 균형과 결합해 위기를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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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으로 보면 인간의 의식은 4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잠자는 상태, 둘째는 선잠 깬 상태, 셋째는 자기를 의식하는 상태, 넷째는 객관적 세계와 우주를 의식하는 상태로 크게 나눈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성에 젖어서 기계적인 삶을 산다.

생각(지성), 느낌(감성), 행동(활동)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살아간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삶의 의미도 목적도 모른 채 산다.

 

참 지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각(Thinking), 느낌(Feeling), 행동(Doing) 즉 지성, 감성, 본능 이 세 가지가 조화되고 균형을 이루도록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하고, 기계적 삶에 저항하며 살아야 하며, 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일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

 

출처 : 공동체성서연구원 김영운 목사님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