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부흥성회 5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까?(2)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도봉지방 선교부 주최
‘존 웨슬리 회심 274주년 기념 도봉지방 연합 부흥성회’가
도봉교회(이광호 목사님 시무)에서 개최되었다.
주제 : 『어떻게 주님을?』
강사 : 김광년 목사님(봉천교회)
넷째 날(5월 23일) 낮 집회
찬양인도 : 최중철 목사님 외 교역자(도봉교회)
사회 : 이상현 목사님(반석교회)
설교 : 김광년 목사님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까?』
(시 107: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치료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어 치료하시고, 위로하여 주시고, 새롭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평생 듣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헤아릴 수 없이 들었습니다.
성경말씀, 기도로 듣습니다.
신령한 생각이 떠올라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자연 환경, 인간 환경, 주변 환경,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기록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믿음으로 극복해야 하는데
믿음으로 극복하기 전까지는 감사가 없고, 기쁨이 없어서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고난 중에서도 나에게 이루실 것이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창 50:19-20)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하나님이 악이 변하여 선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악이 변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까?
1. 우리는 끊임없이 듣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들으려는 의지가 없으면 듣지 못합니다.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 밑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에
하나님이 “사무엘아” 부르셨는데 자기를 부르는 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부르시자 엘리가 “하나님이 너를 부르시나보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주님의 음성을 듣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 듣게 됩니다.
듣겠다는 것은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고 사모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훈련을 통하여 풍요로워집니다.
‘부모님 음성을 어떻게 분별해서 듣기 시작하였습니까?’
아이가 처음부터 부모의 목소리를 분별하지는 못합니다.
부모가 계속 끊임없이 이야기해서 아이는 지속적으로 들어 부모 형제 목소리를 분별하게 됩니다.
영어 방송이 나온다면 듣고 웃기도 울기도 하는 사람, 더듬더듬 듣는 사람, 하나도 안 들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세계가 넓어지고 풍요로워집니다.
훈련을 받지 않으면 자아의 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마귀의 소리는 분별이 쉽습니다.
미움, 시기, 질투의 소리는 마귀의 소리입니다.
내 육신의 본성이 마귀의 소리를 붙잡으려고 해서 어렵지 마귀와 하나님의 음성은 분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자아의 음성과 하나님의 음성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은 어느 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분별하고 순종이 가능했습니다.
어떻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명령, 얼토당토 않는 명령,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리실까?
때를 따라 시간이 지나면 분별이 가능합니다.
훈련을 통해 가능합니다.
2. 우리들의 신경 · 정신이 다른데 빠져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관심이 돈 버는 데, 성공하는 데에 있으면
성공하기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하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면 텔레비전에 빨려들어 갑니다. 불러도 못 알아듣습니다.
다른 것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집중하기를 축원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과의 친밀성을 회복합시다.
하나님이 우리가 보통으로, 평상적으로 말하면 듣지 않으니까 다리를 부러뜨려서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친구처럼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모세,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표정만 봐도 하나님의 마음을 압니까?
‘백 번, 천 번 들어도 모르겠어요.’ 합니까?
하나님과 친밀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3. 순종함이 없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기만하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뜻만 알면 순종하겠습니다.’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영혼 구원’입니다.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벧전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구별되게 살고 있습니까?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고난 받는 것은 싫어요.’ 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꽉 차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순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맞지 않아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척 합니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양은 방향감각이 없어서 자기 집도 찾아오지 못합니다.
양은 근시안입니다. 1m 정도만 떨어지면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한 치 앞도 모릅니다.
(잠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인간과 양은 흡사 합니다.
양은 남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도 없고 자기를 지킬 힘이 없습니다.
인간도 자기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양이 고집이 세어 앞발을 뻗어 버티고 꿈쩍도 하지 않아 좀처럼 끌고 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자기 생각에 안 맞으면 안 따라갑니다.
양에게 장점이 하나있는데 자기를 인도하는 목자의 음성은 알아듣고 순종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귀의 소리를 분별해야 합니다.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마귀가 생각을 집어넣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내 머리 위에 집을 짓지는 못하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
마귀의 소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마귀의 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보다 강한 존재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 권세로 제압할 수 있습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물러갑니다.
미움, 시기, 원망, 질투, 분노의 생각들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야 물러가라.’ 대적해야 합니다.
(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대적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찾아다닙니다.
‘대적하라.’
마귀와 타협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물리치십시오.
마음속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마귀가 평화의 마음을 뺏어갑니다.
마귀의 소리는 대적함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자아의 소리는?
자아의 소리는 물러가라 해서 물러가지 않습니다.
자아의 소리는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자아의 소리에 지배 받게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내 뜻대로 행하게 됩니다.
자아의 소리는 합리적이어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없다면 잠잠해야 합니다.
제가 들은 주님의 음성을 이렇습니다.
‘자아의 소리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자아의 소리는 네가 죽어야만 처리할 수 있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구주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으면 주님이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다 이루었다. 다 갚았다.’
‘테텔레스 타이’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내 죄의 빚을 다 갚으셨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당신은 거기에 있었습니까?
2000년 전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 시간 · 공간이 맞지 않습니다.
‘나는 떨려’ 믿음의 사건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안 보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이 못 박히실 때 나도 죽었다’를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롬 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는 내적 신앙의 외적 표현 · 증거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옛사람의 죽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자아의 소리는 죽음으로만 처리됩니다.
기둥뿌리 뽑아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은 3~4명 정도 보았지만
성질머리 뽑아 바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주님의 소리라고 들었는데, 주님의 소리라고 확신하는데 서로의 생각이 다릅니다.
다수결로 할 것인가?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으로 성령의 역사를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영적인 지도자, 목사님의 말씀이 소중합니다.
신앙적인 멘토를 갖는 것이 소중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영적 분별하는 사람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같이 하면 활력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와 함께 하면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 하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둔감하여지면 오락가락하게 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민감하여지면 매순간 주님과 동행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민감하여지면
웨슬리 목사님의 구원론과 같이 우리는 성화되고, 영화됩니다.
≪ 성화(Sanctification)는 사람이 회개와 믿음으로 거듭날 때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악마적인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으로 바꿔져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
≪ 웨슬리는 성화의 완성, 곧 그리스도인의 완전(상대적 완전)은 죽기 전에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악성의 깊이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의 깊이가 크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 완전은 죽음 후에
영화(Glorification,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신령한 몸의 모습인데, 이 영화의 은총에서 마침내 죄로 인한 모든 흔적 즉 사람이 지니고 있는 모든 제약성과 허약성 그리고 실수와 무지와 유혹에서도 완전히 해방 받는다)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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