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감리회 2012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4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는 성도

나효선 2012. 4. 1. 01:55

 

기독교대한감리회 2012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4

 

 

4 .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는 성도

 

 

                                                           서승직 목사님 (회복의교회)

 

 

● 성경봉독 : 신명기 8:1~3

● 참고성경 : 출애굽기 16:13~36

●요 절: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왜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하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며 온갖 열심을 다하는데 “왜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 “늘 큰 은혜를 경험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왜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을까?” 입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교회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것인데 그 땅 끝은 바로 교회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교회 안에서 빛과 소금이 되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다 보니 가정, 학교, 직장, 사회 그 어느 것 속에서도 하나님의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일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은 ‘열심’이라는 단어 속에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끝없이 주어지는 ‘열심’은 가정도 없고, 삶도 없이 오로지 교회에서 충성하는 것이 전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중심, 일 중심의 신앙은 목회자 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신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결국 보이는 열심뿐이고, 자원함과 감사가 결여된 무기력한 신앙인이 되어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정에서는 제사장으로 세워주시고, 일터에서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갈 것을 요청하셨지만 그것을 감당하기에 우리의 신앙은 너무도 나약할 뿐입니다.

 

 

먼저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은 무엇보다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서 시작합니다. 일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을 배워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알아가면서 주님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주님을 알아갈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생활을 하면서 먼저 일과 열심을 배우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보다 우리가 열심히 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웃을 귀하고 값지게 섬기도록 힘과 용기를 주며, 주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어가도록 격려합니다. 또한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이 치료받고 회복되어 일어나는 위로의 공동체입니다. 교회 다니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삶의 장소에서 온전하게 실천하도록 힘을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만 주님과의 동행이 아니라 일터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이 세상 가운데서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함께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가르침과 양육은 ‘날마다’에서부터

 

온전한 믿음생활을 위한 우리의 대답은 다름 아닌 ‘날마다’입니다. 변화와 역동적 신앙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특별한 무엇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만나의 법칙은 우리에게 ‘날마다’가 왜 중요한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줍니다(출 16:4, 신 8:3). 시편 1편, 여호수아 1장은 복된 사람, 여호와를 따르는 사람이 ‘날마다’(주야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은 ‘날마다’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22절은 ‘날마다’(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보고 듣는 일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보는 대신에 세상을 날마다 보고 들음으로써 우리는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불법한 행실을 ‘날마다’ 보고 들음으로 마음이 상하게 되었고(벧후 2:7~8), 삼손은 ‘날마다’ 독촉하는 여인의 소리에 그 마음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삿 16:16).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마다 말씀 앞에 서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듣는 것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목회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계획하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허락하신 ‘삶의 지침서’입니다. 말씀은 하나님 백성들의 삶을 위하여 준비하신 ‘사용설명서’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훈련받는 것은 그 말씀을 가지고 삶의 터전에서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양육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제 주님의 말씀 앞에 ‘날마다’ 겸손하게 무릎 꿇고 묵상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나는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살았습니까?

 

2. 날마다 무엇을 보고 들으면서 내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까?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2012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훈련하며 성장하는 평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