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감리회 2011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8 예레미야의 눈물의 기도

나효선 2011. 4. 23. 01:18

 

기독교대한감리회 2011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8

 

 

8. 예레미야의 눈물의 기도

 

 

                                                          정진권 목사님 (삼양교회)

 

 

성경봉독 : 예레미야 9:1~9

참고성경 : 예레미야 33:2~3

요 절 :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렘 9:7)

 

 

예레미야는 나라의 명운이 기울어져갈 때 활동한 예언자였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레미야가 눈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애가(哀歌)의 한 장면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패역함을 보고, 멸망할 민족의 앞날을 안타까워하여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의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할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도다”(렘 9:1) 통곡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알았기 때문에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시고, 예레미야에게 “너희 나라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나라의 멸망을 눈앞에 둔 예레미야는 눈물로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의 눈물을 가상히 보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을 영원히 지상에서 멸절시키지는 아니하고, 70년 동안 포로생활한 후 다시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주셨습니다.(렘 29:10)

 

이런 가운데 바벨론의 침공이 임박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나라는 망하더라도 백성은 살리려는 예레미야의 애국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은 끝까지 예레미야가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은 거부하고 바벨론은 2년 만에 부지깽이처럼 부서지리라는 하나냐의 거짓 예언만을 듣고 바벨론에게 항거했습니다. 결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3차에 걸친 침공을 받은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파괴되었고, 느부갓네살 왕은 성전 기물과 장식품까지 몰수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갔으며, 이스라엘의 천년 문화유산이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법궤도 망실되어 지금까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곡의 벽에 얼굴을 대고 울면서 법궤를 찾고 있습니다.

 

코펜하겐에 가면 도시 중앙에 황제의 동상이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에 비하면 아주 초라합니다. 동상으로 새긴 황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점령에 맞서 국민적 저항을 이끌었던, 덴마크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국왕 크리스티안 10세입니다. 그는 부왕 프레데리크 8세가 덴마크령인 서인도제도를 미국에 팔아넘기려고 하자(1911년) 세자의 자리에서 내려올 각오를 하고, 항명운동에 앞장섰던 왕세자였습니다. 1912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 1940년 독일군이 덴마크를 침략해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싸움 한 번 해보지 않고 항복을 합니다. 사람들은 크리스티안을 비겁한 왕이라고 욕하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아침마다 말을 타고 코펜하겐 거리를 다니며 독일군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였습니다. 크리스티안 10세는 끝까지 독일 점령군에게 항거하고, 반유대인 입법에 서명하라는 나치즘에 반대하다가 결국 연금 상태에서 죽었습니다. 그 후 독일이 연합군에게 패망하고, 나라가 회복된 후에 덴마크 사람들은 크리스티안 10세의 고귀한 뜻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의 동상을 세우고, 그를 추모하였습니다. 크리스티안 10세는 자기 목숨을 구걸하려고 독일군에게 항복한 것이 아니라, 덴마크의 백성과 아름다운 코펜하겐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항복하였던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만 위대한 왕이 아니라, 왕조는 비록 잠시 망할지라도 백성을 살리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보전하기 위하여 살신성인한 크리스티안 10세야말로 위대한 지도자 상입니다. 크리스티안의 애국은 코펜하겐이 피바다가 되더라도 왕조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생명을 보호하고 코펜하겐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티안과 시드기야 왕! 두 사람은 똑같이 패장이었지만 크리스티안 10세는 이스라엘의 시드기야 왕과는 대조가 될 만큼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약 시드기야 왕이 크리스티안 10세처럼 자기 나라의 문화유산을 자기 권좌보다 더 사랑하고 백성의 생명을 자기 명예보다 더 사랑하였더라면?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자기 왕관보다 더 소중히 여겨 바벨론 왕에게 일찍 항복했더라면? 아름다운 솔로몬 성전도 그대로 보전되고 하나님의 법궤도 분실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고통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지금 보다 훨씬 더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한 후, 예레미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B.C. 587년, 바벨론은 느부사라단을 총독부 사령관으로 세우고, 예루살렘을 짓밟고, 성전을 훼파하고, 젊은이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눈이 뽑히고,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를 포로로 잡아가다가 풀어 주며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렘 40:4)고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모든 호의를 마다하고 유다의 남은 자들의 틈에 끼어서 살았습니다.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그대로 두지 아니하였습니다. 친 바벨론자라고 욕하고 박해하며 돌을 던졌습니다. 선지자의 마지막은 비참했습니다. 나라는 망해도 백성들은 살려보겠다는 예레미야는 그토록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에게까지 버림을 받고, 유대 땅에서 조차 살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예레미야가 진짜 예언자라고 노래하고 싶습니다. 이쪽저쪽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그의 영혼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정직한 예언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게 이스라엘을 맡겼고, 느부갓네살 왕에게 시드기야 왕과 유다가 패할 것임을 예레미야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몹쓸 짓을 하고 다닌 것입니다. 나라는 망해도 백성들은 살려야겠다는, 예언자의 백성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당하는 고통의 대가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예레미야는 친 바벨론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왕에게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까지도 처절하게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고난 없이 어떻게 혼돈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칼날 위를 걸어가면서 어찌 고통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양 칼날 위에 서 있는 고통의 예언자였습니다. “분단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연 누구입니까? 고난당하는 예언자적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기회주의자 입니까?” 민족의 고통에 민감하지 않거나 피한다면,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는 기회주의자일 뿐입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 내가 나라를 위하여 받은 고난이 무엇입니까?

   예레미야가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받은 고난과 비교하여 생각해 봅시다.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2011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감리회를 기도로 회복시키는 평신도

 

 

 

‘통곡의 벽’ 사진 출처 : http://oldtestament.maru.net    오택현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