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감리회 2011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6 삼손의 엔학고레기도

나효선 2011. 4. 6. 23:25

 

기독교대한감리회 2011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6

 

 

6. 삼손의 엔학고레기도

 

 

                                                  이사야 목사님 (남서울대학교 교수)

 

 

성경봉독 : 사사기 15:14~20

참고성경 : 출애굽기 17:1~7

요 절 :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드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삿 15:19)

 

 

서 론

 

기원 13세기 경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무렵, 그 땅의 해안지역에는 블레셋이라는 해양민족이 진입해 왔습니다. 이 블레셋 사람들은 가나안 내륙지역으로 들어오려 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은 불가피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이들 블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이 시작되던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의 사사는 용맹한 힘으로 유명한 삼손이었습니다.

 

삼손의 엄청난 힘은 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힘은 하나님의 영이 임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도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얼마든지 지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도 세상에서 지치고 힘들어 결국에는 무기력하게 넘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번 받은 은혜로 세상과 끝까지 싸워 항상 승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삼손의 싸움은 왜 우리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재충전되어 새 힘을 입어야만 하는지를 잘 일러 주고 있습니다.

 

 

1. 라맛 레히(턱뼈의 산)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에 올라와 레히라는 곳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던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찾아가 따져 물었습니다. “너는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으냐”하고 말입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에게 행한 대로 그들에게 행하였을 뿐이라고 대답하지만,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고야 맙니다.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넘겨줄 뿐이요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고는 새 밧줄 두 겹으로 삼손을 결박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레히에 이르렀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묶여온 것을 보고 환호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였고 삼손을 결박하던 두 겹의 밧줄은 불탄 삼처럼 떨어져 나갔습니다. 삼손은 주변에 떨어져 있던 나귀의 턱뼈를 주워들고 그것으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인 후에 그 곳을 라맛 레히(턱뼈의 산)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텩뼈로 내가 천명을 죽였도다.”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찬송이 단순한 독백인지 아니면 노래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분명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엄청난 일을 해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 엔학고레(부르짖는 자의 샘)

 

그러나 삼손도 이내 지치고야 말았습니다. 블레셋 사람을 천 명이나 죽였지만, 아직 적들은 많이 남아 있었고, 그들을 대적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혼자서 천 명을 상대했으니 삼손이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그 주위에 유다 사람이 삼천 명이나 있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삼손 혼자서 블레셋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그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들 유다 사람들이 이 때 삼손을 도와 블레셋 사람들과 맞서 싸웠다면 이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감격적인 장면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유다 사람들은 삼손의 싸움을 구경만 하였고, 아직도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탈진하여 쓰러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삼손이 지쳐 쓰러진다면 영락없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자신을 지켜보는 유다 사람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그러나 삼손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그들은 삼손을 도울 마음도 힘도 없었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고백했던 한 시편기자의 고백처럼(시 146:3~4)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도울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삼손을 넘겨주기 위해 끌고 왔던 사람들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삼손은 자신을 지켜보는 유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자신에게 영을 내려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으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가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18절) 점차 정신이 혼미해갔지만, 삼손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합니다. 자신의 능력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그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레히의 한 우묵한 곳을 터뜨려 물이 솟아나게 하셨고, 삼손은 그 생수를 마시고 정신을 회복하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에 블레셋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모습을 지켜본 그들은 다들 도망을 가버린 듯합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터지게 하신 샘 이름을 ‘엔학고레’ 즉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고 붙였습니다.

 

 

3. 샘을 터지게 하시는 하나님

 

성경 안에는 하나님이 샘이 터지게 하신 이야기가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갈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광야에서 거의 죽어가고 있을 때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방성대곡뿐이었습니다. 아무도 도와 줄 이가 없는 광야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아들이 목이 말라 죽어가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목말라 죽어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샘을 터지게 하셔서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비록 이스마엘이 약속의 아들은 아니었지만,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기적적으로 샘물을 마시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창 21:8~21)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광야 한가운데에서 목이 말라 죽을 뻔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에 백성이 마실 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며 대들었고,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며 원망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라고 했던 것을 보면 그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로 반석을 치게 하시며 이스라엘에게 물을 주셨습니다(출 17:1~7). 이때의 일을 회상하는 장면이 신명기 8장 15절에 나오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다”고 일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의 몇몇 기자들도 이스라엘을 위해 물을 터지게 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시 78:15),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시 114:8).

 

 

결 론

 

구약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하나님의 백성들로 마시게 하시는 분이십니다(사 43:20). 이스라엘에게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며(사 41:17),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실 것이고(사 44:3),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백성을 이끌어 주시거나 목마르지 않게 할 샘물의 근원으로 인도할 것이라고(사 49:10)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삼손에게 힘을 주신 하나님이 그가 지쳐서 기도할 때에 생수로 그의 기갈을 해소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지쳐서 넘어지려 할 때에도 외면치 않으시고 우리를 돌보십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삼손이 유다 사람들을 바라보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주변의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까?

 

2) 사람의 도움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말씀 속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2011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감리회를 기도로 회복시키는 평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