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11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4
4. 한나의 서원기도
月 • 이사야 목사님 (남서울대학교 교수)
성경봉독 : 사무엘상 1:9~20
참고성경 : 누가복음 2:52
요 절 :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서 론
성경에서 탄생과 유아기를 자세히 언급하는 인물은 흔하지 않습니다. 굳이 손꼽아 본다면 모세와 사무엘 그리고 예수님 정도입니다. 사무엘의 탄생이야기는 사사시대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던 과도기의 제사장 엘리와 아이를 낳지 못해 고뇌하던 에브라임의 한 여인 한나의 일화로 시작됩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 가족은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던 옛 이스라엘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엘가나는 해마다 실로(Silo)라는 이스라엘의 성소를 순례하고 거기서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화목제란 번제와는 달리 하나님께 제물을 바쳐 예배한 후에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즐겁게 제물의 분깃을 나누어 먹는 일종의 잔치입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등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중요 제사 중에서 가장 기쁜 제사가 바로 화목제였습니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기쁨이 되는 그 순례와 제사가 유독 한나에게 만큼은 고통스런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고” 엘가나의 다른 아내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했기 때문입니다(삼상 1:6). 일찍이 사래(사라)가 자신의 몸종 하갈이 잉태하자 그로부터 멸시를 받았던 것처럼(창 16:4), 한나는 자식이 있던 브닌나로부터 식음을 전폐할 정도의 고통을 당합니다. 물론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그러한 남편의 사랑과 위로조차 한나의 괴로움을 달래 주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자신에게 힘과 위로가 되지 못할 때 한 여인으로서 가장 깊은 소원과 서원을 담은 한나의 기도는 시작되었습니다.
1. 열정적인 기도
엘가나의 온 가족이 ‘먹고 마신 후에’(=화목제를 마친 후에) 한나는 홀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으며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그저 적당히 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면 좋고, 안 들어 주셔도 상관이 없는 그런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면서 통곡하는 기도였습니다(9절).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통하는 기도, 마음의 고통과 슬픔이 하나님 앞에 통하는 기도, 그저 입술로만 조잘거리는 기도가 아닌 그 속에서 불일 듯 일어나서 하나님의 마음을 뒤흔드는 심정이 통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한나의 기도가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제사장 엘리는 그녀를 술 취한 여인으로 오해하고 포도주를 끊으라고 다그칠 정도였습니다(13~14절). 하나님의 사람인 제사장도 이렇게 실수하는가 봅니다. 제사장이 신실한 평신도의 기도를 술 취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제사장조차 알아주지 못하는 아픔을 간직한 여인 한나는 자신의 원통함을 그저 하나님께 열정적으로 아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한나의 열정적인 기도는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12절)라는 말은 그녀의 기도가 강렬하면서도 중단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도 응답이 없는 이유는 그저 단편적으로 끝나버리는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기도를 해 놓고도 무엇을 구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대부분 기도 응답에 대한 열망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그 소원이 너무너무 분명해서 그 한 가지 소원을 놓고서 오래도록 간절하게 매달리는 기도였습니다.
2.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
한나를 술 취한 여인으로 오해했던 엘리 제사장은 늦게나마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길 원하노라”고 축복합니다. 이 때 한나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을 띠지 않았습니다. 평신도의 진정어린 기도조차 알아보지 못한 제사장 엘리의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그의 축복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그 자리를 떠나가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나가 무엇을 먹었다는 말인가요? 화목제의 제물을 먹었다는 말입니다. 기쁨의 잔치인 화목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제사장 엘리의 축복을 받은 한나에게 화목제는 진정한 기쁨의 잔치로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기도조차 술 취한 것으로 오해했던 허물 많은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제사장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제사장 역할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수용성의 문제는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이 때 한나의 얼굴에는 더 이상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 예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한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는 말씀은 한나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절대적으로 신뢰하느냐 입니다. 얼마나 그분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분을 바라보는지가 중요합니다.
3. 약속을 지키는 기도
한나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11절).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라 평생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않겠다는 것은 그 아들을 나실인으로 바치겠다는 서원입니다.
하나님은 그 구한 것의 열매를 눈여겨보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건강을 구한다면 그 건강함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질을 구한다면 그 물질로 무엇을 할 것인지 알고 싶어 하십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무작정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들을 자기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아들 사무엘을 주신 후에 한나는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27~28절)
결 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했던 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사무엘은 한나의 열정적인 서원기도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열매였습니다. 사무엘 이후에도 하나님은 한나를 돌아보셨고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게 하셨습니다(삼상 2:21). 그리고 사무엘은 그의 유년 시절을 여호와 앞에서 보내면서 “여호와와 사람들에게서 은총을 받으며” 자라갔습니다(삼상 2:26).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한나의 서원기도는 또한 몇 사람을 더 떠올리게 합니다. 라반의 집을 떠나 형 에서를 찾아가던 중 얍복 나루터에서 홀로 남아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던 야곱의 모습이나(창 32장),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자기 왕궁의 벽을 향해 고개를 대고 통곡하며 기도하던 히스기야 왕의 모습 등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절박한 문제를 놓고 적당한 기도가 아닌 열정적인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열정적인 기도는 때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할 정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되지 않는 일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한나의 서원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우리의 심정을 통하는 열정적인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누군가가 나를 괴롭고 힘들게 할 때 그를 향해 원망하거나 다투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2) 하나님이 나의 간구를 들어주시면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입니까?
생각을 위한 질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2011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감리회를 기도로 회복시키는 평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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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나의 서원기도
1987년 3월 29일 실력고사 성적 단표를 작성하는데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대전 권안과에 가니 ‘각막염’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하드렌즈를 착용해왔는데 그 때는 소프트렌즈를 착용하여 조금 찢어져 있는 것을 몰랐었다. 그 당시 녹내장(안압을 높이고 시력 상실을 유발)에 걸려 시력을 잃은 여주인공의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5월 23일 의사가 “안압이 너무 높아졌다.”고 했다. 드라마의 내용이 생각났다. 이러다가 장님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 장님이 되느니 죽겠습니다.
눈을 고쳐 주시면 가르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활을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했다.
놀라서 그 즉시 서울에 올라갔다. 아버지의 연세대학교 제자(미국에 유학 갔다 온 박사) 병원에 갔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하므로 그냥 대전으로 내려와서 치료를 받았다. 7월 4일 의사가 각막염은 다 나았으나 앞으로 1년 동안은 렌즈를 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나의 시력은 안경을 끼고 눈 바로 앞에 책을 대어야 글씨가 보였다. 중학교 3학년을 담임하고 있었는데 1984년부터 가르친 내용이라 다 아는 것이라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무난히 가르쳤다. 내가 맡은 학급 학생들의 얼굴은 1학기가 지나도록 알아볼 수가 없었다. 9월이 지나서야 시력이 조금 회복 되었다. 당시 학적계를 맡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상태로 3학년을 가르치고, 업무를 수행한 것이 신기하다.
(휴직·병가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1년 후 1988년 7월 병원에 가니 시력이 다 회복되었다고 했다.
그 기쁨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한 감사는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지금 현재 아직 노안이 되지는 않아서 렌즈를 끼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특히 서원기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 장님이 되느니 죽겠습니다.
눈을 고쳐 주시면 가르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활을 하겠습니다.”
에니어그램 1번 완벽주의자인 나는
눈이 안 보이는 ‘흠’이 생긴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참람한 기도를 했다.
(참람하다 : 분수에 넘쳐 너무 지나치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나도 기도한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느끼고
사진으로 나타내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원기도는 신중하게 하고
하나님께 한 그 약속은 지켜야 한다.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에스겔 16장 5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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