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창덕궁(昌德宮) 가을 나들이

나효선 2010. 11. 30. 03:08

전철 유람46(2)

창덕궁(昌德宮) 가을 나들이

 

창덕궁은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당시 종묘·사직과 더불어 정궁인 경복궁이 있었으므로,

이 궁은 하나의 별궁으로 만들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창경궁과 함께 불에 타 버린 뒤 제일 먼저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경복궁의 역할을 대체하여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궁이 되었다.

창덕궁은 500여 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임금이 거처한 궁궐이었다.

1997년에는 조형미와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외전

 

인정문(仁政門)

인정문은 새로운 왕이 즉위하는 곳이었다.

통상적으로 임금이 세상을 뜬 후 엿샛날 세자가 왕위에 오르는데,

임금이 나와서 조회하는 궁궐의 으뜸 건물인 정전의 정문에서 즉위하는 경우가 많았다.

창덕궁에서는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이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인정전(仁政殿 국보 제225호)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는 천장이 높아 통칸으로 트인 1층 건물이다.

인정전 지붕 용마루를 장식하고 있는 ‘오얏꽃 문양’ (1897년 이후부터 대한제국을 상징)

다섯 개가 금동으로 되었다.

인정전과 인정전 마당(조정)은 의식을 위한 공간이다.

외국 사신의 접견, 신하들의 조하(朝賀), 세자 책봉식, 왕실의 큰 잔치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인정전 내부 임금의 자리인 어좌(御座).

 

임금의 자리인 어좌. 임금이 다스리는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병풍인 일월오봉도.

어좌 위에는 보개(寶蓋)라 하여 별도의 천장을 설치하여 어좌의 공간적 차별성을 극대화하였다.

1908년 무렵에 내부에 서양식 가구와 실내 장식이 도입되어 전돌 바닥 대신 서양식 마루를 깔았고

샹들리에가 설치되었다.

 

선정문(宣政門)

 

 

선정전(宣政殿)

임금의 일상적인 집무 공간으로 쓰인 곳(편전 便殿).

 

선정전 지붕은 궁궐에서 유일하게 청기와를 얹었다.

 

복도각

 

내전

희정당과 대조전 일대

 

희정당(熙政堂)

임금의 거처. 선정전보다 편안한 업무 공간

 

희정당(熙政堂) 현관

자동차 승하차

대조전(大造殿)

왕비의 생활 공간이자 임금과 왕비의 침전.

 

침대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사용.

 

 

성정각(誠正閣)

순조의 장남인 효명세자의 공부방

단층의 몸채에 중층의 날개채가 직각으로 붙은 독특한 모습.

 

 

낙선재(樂善齋)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외형.

 

낙선재 현판은 청나라의 대가 섭지선의 글씨

 

외국 문물에 대한 헌종의 기호를 반영하여 창살무늬와 상량정의 건축양식 등에서

청나라 양식을 볼 수 있다.

 

상량정(上凉亭)

 

경복궁이나 창경궁은 자유롭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궁궐인데

창덕궁은 그렇지가 않아서 11월 25일 반세기만에 처음 갔다.

비밀의 화원을 살짝 들여다 본 것 같다.

창덕궁 후원의 아름다움을 다른 계절에도 보고 싶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91편 14-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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