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 속회 공과 26

나효선 2009. 12. 2. 14:54

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 속회 공과 26

웨슬리 속회 공과

                                                                                                                      김원경 목사 편

제 26 과

마음이 청결한 자 (2)

 

성경 : 마태복음 5:8

(요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그러나 하나님을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맹세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네가 주께 맹세한 것은 다 지키라’ 고 옛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마 5:3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너희는 맹세를 하지 말라. 그러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때에는 그 맹세를 주께 지켜야 한다. 그러나 다른 맹세는 주님이 상관하시지 않는다.” 라고 할 것입니다.

바리새파인들은 일반 회화에서 비록 사소한 것으로 맹세를 하는 것도 유효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까지 맹세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1. 그러나 주님은 거짓 맹세와 함께 모든 맹세를 엄금하셨습니다. 크나 작으나 간에 무엇으로 맹세하든지 이것은 악한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은 어디에나, 무엇에나 그리고 모든 것 위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마 5:34)

즉 이것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는 까닭이며,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디디시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마 5:35) 하나님은 땅에도 하늘에서와 같이 임재해 계신 것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그것은 큰 임금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큰 성과 큰 궁전에도 계시며, 거기에서도 아신 바 되고 있는 것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마 5:36) 실상은 머리카락 하나도 내 것이 아니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담화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라. 여기서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 5:37) 하셨습니다. 즉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그러나 주님은 법관이나 관리의 요구에 의한 선서나 또는 진실 된 맹세를 금하시지 않으셨으니, 이 아래 사실들이 이를 나타냅니다.

(1) 맹세의 남용을 경계하는 교훈 중에 거짓 맹세와 또는 일상 담화에서 하는 맹세를 금하셨으나 법관 앞에서 하는 맹세는 문제 삼지 않으신 것.

(2) 이 교훈의 결론에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라” 하신 말씀

(3)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맹세와 함께 그에게 물어온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신 것, 즉 대제사장이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고 그대에게 명령하니 대답하시오.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 물음에 대하여 긍정적인 대답을 하시면서 “네 말대로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네게 일러둔다. 이제로부터 너희는 인자가 전능하신 이의 오른 편에 앉아 있는 것과 또 그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마 26:63, 64) 하신 것.

(4)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서의 예증, 히브리서 6:17에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어받을 사람들에게 그의 계획의 불변성을 더욱 밝히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맹세로 보증하신 것입니다.” 한 것.

(5) 사도 바울의 예증. 바울은 성령을 받은 분이며, 그의 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장 잘 안 사람인데 그는 로마서에 “내가 그 아들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내 영으로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내 증인이 되십니다.” (롬 1:9) 하였고,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모시고 나는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고후 1:23) 하였으며,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증거하십니다.” (빌 1:8) 한 것. 만일에 바울 사도가 주님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이해했다면, 그가 이해한대로는 예수님의 말씀은 중대한 사건에 관해 서로 맹세를 하는 것을 금하시지 않은 것으로 볼 것입니다. 더구나 법관 앞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6) 마지막으로는 히브리서 기자도 엄숙한 맹세에 대해 “사람들은 자기보다 위대한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맹세는 사람들의 모든 논쟁을 끝내고 확증을 지어줍니다.” (히 6:16) 하였는데 만일에 그가 섬기는 주님이 맹세를 전연 금하였다면 그런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복된 주님이 우리에게 거듭 강조하시는 교훈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만물 중에 계시다는 것과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통해서 창조주를 볼 수 있다는 것과 또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하나님을 떠나서 사용하거나 관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무엇이나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실제적 무신론자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과, 만물을 관찰함에 있어서 이것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으로서, 그가 친히 그 중에 계시어 유지 보전하시며 그 속에서 그것들이 동작하게 하시고 계신 까닭으로 하나님은 참된 의미에서 우주의 영이심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연습문제]

 

1. 맹세에 관하여, 주님은 어떤 큰 교훈을 주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