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 속회 공과 23
웨슬리 속회 공과
김원경 목사 편
제 23 과
긍휼히 여기는 자 (1)
성경 : 마태복음 5:7
(요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될수록 이 세상의 하나님이 없고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에게 대하여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자에게 상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비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를 받을 것이다.” (마태 5:7)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주님이 쓰신 “자비” 라는 낱말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씨를 말합니다. 이런 마음씨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결여된 사람에게 대하여서도 경멸 대신 깊은 동정과 염려를 나타냅니다.
이 자비라는 독특한 덕은 형제애의 다른 말로서 이것은 다른 모든 덕의 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비의 어의는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데 충분히 표현됩니다.
2. 이 자비 즉 사랑이 이렇듯 중요한 만큼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사랑의 내용을 충분히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이에 의하여 자비를 얻을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이렇게 중요한 만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가 되며” “내가 예언의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모든 신비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리고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가 비록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 주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 몸을 내주어 불사르게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유익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이 사랑, (이 낱말은 자비보다 더 분명하고 덜 모호하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 오래 참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향하여 그들의 약함, 무지, 과오, 취약성, 연약한 믿음을 관인(寬忍)하며 그들의 사악도 참습니다. 참되, 일시적 만이 아니라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라도 그들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므로 그들의 머리 위에 사랑의 숯불을 계속하여 놓는 것입니다.
4. 사랑의 사람은 이러한 숭고한 목적을 목표로 하여 “선으로서 악을 이긴다.” 그러므로 “사랑은 친절합니다.”
즉 이것은 부드러우며, 온화하며, 살뜰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무뚝뚝하거나, 차갑거나 하지 않고, 특히 수난자에게 대하여서는 극진한 애정과 관심으로 지체 없이 위로하고 보살펴 줍니다.
5. 따라서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 못된 성품(시기)의 상반된 덕성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랑의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 인간에게 세상의 복과 영적 은혜가 함께 내리기를 바라며,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모든 좋은 선물이 주어지기를 절원(切願)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런 축복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도 역시 같은 축복을 받기를 바라며, 비록 자신은 그런 은사를 받지 못했을지라도 다른 사람은 받아서 자기보다 더 행복 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의 사랑이 클수록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즐거워하며, 그들이 받는 축복에 대하여 추호의 시기심도 갖지 않는 것입니다.
6.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남을 성급하게 판단하지도 않으며, 쉽사리 정죄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남의 하는 일을 언뜻 한번 보고서는 가혹한 판단을 내리는 일이 없고, 모든 물증을 확인한 후에 가부를 말합니다. 특히 피소(被訴) 자에게 유리한 증언에 대하여 더욱 그렇게 합니다. 이웃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꼬물만큼 보고, 크게 추측하여 결론을 내리는 법은 없습니다.”
사랑의 사람은 조심성 있게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검토하여 옛사람이 “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험담을 경솔히 믿지 않을 것이며, 자기 자신에 대하여 하는 말이라도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항상 재고(再考)를 권할 것이며, 조언도 불사할 것이다.” 라고 말한 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신중을 기합니다.
7. 사랑은 또한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사람은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항상 자기 분수에 맞게 생각합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는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는 모든 생각을 자기 속에서 몰아내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지극히 작은 자이며, 낮은 자이며, 모든 사람의 종이라는 겸허한 생각을 가집니다. 그리하여 형제적 사랑으로 얽힌 사람들 사이에는 뜻을 같이하며, 서로 존경하고,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귀중히 여깁니다.
8. 그 다음으로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난폭하지 않으며, 고의로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의무를 감당하게 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게 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예의와 친절과 자애로 대하는 것입니다.
근일에 어떤 문필가는 선량한 교양 즉 ‘예절 바른 태도’(politeness)를 “모든 행동에 있어서 남을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씨” 라고 풀이한 것을 보았습니다. 만일에 그의 말대로라면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만큼 좋은 교양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모든 사람의 건덕(健德)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를 열망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 열망은 감출 수 없어 누구와 접촉하든지 자연히 표시됩니다.
사랑의 사람에게는 가식이 없어 그 사랑은 그의 말과 행동에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 꾸밈없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린도전서 9:22) 되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생각 때문인 것입니다.
9. 이와 같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되려는 데” 있어서는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람은 자신의 물질적 이익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은, 금이나 의복을 탐내지 않으며 다만 그들의 영혼의 구원 이외에 다른 것을 원치 않습니다.
어느 의미에서 이 사랑의 사람은 세상의 물질적 이익만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 이익마저도 도외시하고, 그들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고자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신을 잊어버림과 동시에 인간애가 극에 달할 때 자신의 영과 육을 함께 포기하는 것도 사양하지 않습니다. 그는 모세가 범죄한 동족의 죄의 용서를 하나님께 간구하여 “이 백성이 …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출애굽기 32:31-32)라고 한 것처럼, 또는 사도 바울이 “나는 내 동족인 형제를 위하여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오히려 나는 한이 없겠습니다.” (롬 9:3)라고 말한 것처럼 그런 심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10. 이런 사랑의 사람은 “성내지 않는 것” 입니다. 혹 자기에게 대한 불친절에 대하여서도 그는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때 혹 분노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사람은 이 분노에 말려들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당면하는 시련에도 그는 예수를 우러러보며, 그의 사랑 안에서 이기고도 남는 자가 됩니다.
11. “사랑은 남의 악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낼만한 원인을 제거함이 됩니다. 물론 사랑의 사람은 사람들의 악한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들의 악한 일을 날마다 보고 듣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그 이웃을 구타하는 것을 본다든지, 하나님께 대해 모욕하는 말을 들을 때 어떻게 이 사실들을 모른다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일들이 악하다 하지 않을 것입니까? 그러나 사랑의 사람은 이를 마음속에 품어 두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의식적으로 남의 악을 품어두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타나지 않은 악을 짐작으로 그러려니 하거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추측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 일 같은 것을 아니합니다. 사랑은 이런 일을 절대로 아니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상상해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일은 없습니다. 요컨대, 사랑은 모든 질투와 악한 추측을 하지 않으며, 남의 악을 쉽게 믿지 않으며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악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악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12.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원수가 고난이나, 과오나, 죄에 빠질 때 쾌재를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을 우리는 봅니다. 내 반대파에서 누가 그런 일을 당할 때에는 더더구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 반대파 가운데서 혹은 사실적으로나 짐작으로나 그들의 정책이나 행동에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든지 반대파의 무슨 실책이 내 파의 정책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것은 오직 사랑의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의 사람만이 내 원수가 범죄를 하거나 우매한 행동을 했을 때 이를 슬퍼하며, 그런 일을 들은 것조차 마음 아파하며, 이를 생각조차 하려하지 않으며, 이것을 영원히 잊어버렸으면 하는 것입니다.
[연습문제]
1. “긍휼”의 의미는?
2. 긍휼히 여기는 사람, 곧 사랑하는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을 하나하나씩 이야기 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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