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 속회 공과 24
웨슬리 속회 공과
김원경 목사 편
제 24 과
긍휼히 여기는 자 (2)
성경 : 마태복음 5:7
(요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3. 사랑의 사람은 (남의)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만큼 그는 또한 “진리와 함께 즐거워합니다.”
그 진리가 어디에서 발견되든지 이를 환영하며 즐거워합니다. 이 진리는 경건에 속한 진리로 이것은 마음의 성결과 함께 우리의 담화에서 성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는 비록 내 반대자에게서라도 그의 의견이나 행동에 있어서 진리를 발견하면 이를 기뻐하며, 그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비록 자기의 반대자라도 다른 면에서는 책망할 것이 없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슨 잘하는 일을 들으면 이를 기뻐할 뿐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이것을 진리와 정의와 연결 지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누구에서나 선이 발견되든지 이것은 그의 기쁨의 원천과 영광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실상 그는 세계 시민의 하나로서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은 곧 자기의 행복으로 여기며, 무엇에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뻐하며 인간 세상에 평화와 선의를 고취하기를 힘씁니다.
14.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사랑의 사람은 남의 불의를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잘 발설하지도 않으며, 누구에게서 무슨 악을 보거나, 듣거나, 알지라도 자신이 그 악에 동참하지 않음은 물론, 이를 될 수 있는 대로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서나 자신이 찬성할 수 없는 행동을 볼지라도, 그 형제를 얻기 위하여 본인에게 직접 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입 밖에 내지 않으며, 또 형제의 과오나 실수라도 그것을 좋게 말하지 않는다면 화제로 삼지도 않습니다.
사랑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남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자나, 험담을 하는 자나, 쑥덕공론을 하는 자들은 다 살인자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는 자는 미구에 그의 목에 칼을 꽂을 수도 있을 것이며, 화살과 횃불과 죽음을(험담, 모략, 중상 등) 살포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그 이웃집에 불 놓을 생각도 할 것이며, 그러면서 “나는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사람은 형제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되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악을 공개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냄이 되거나 이웃의 유익이 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 무죄자에게 손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범과(犯過)자의 죄상을 폭로하여 그의 잘못을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라도 1) 그 범과자에 대한 사랑의 동기가 아니면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으며, 2) 막연한 선의로서나 또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는 관념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피해자를 그가 당하는 어떤 위해나 손실에서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합니다. 3) 그럴지라도 사랑의 사람은 이런 방법 이외에 더 다른 좋은 방법이 없다는 신복되기 전에는 말하지 않습니다. 4) 그런 판단이 선 후에라도 그는 이를 최후의 수단으로, 독으로 독을 제한다는 생각 아래 마지못해 씁니다. 따라서 5) 그는 이런 방법을 부득이한 경우 이외에는 쓰지 않으며 이런 방법을 쓸 경우에라도 그는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래 조심성 있게 씁니다.
15.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사랑의 사람은 언제나 무엇에서나 가장 좋은 점을 발견하려 하며, 무엇이나 선의로 해석하려 합니다.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건덕(健德)에 유익한 것을 믿으려 하며, 남의 무죄와 진실에 편들며, 혹시 잘못이 있을지라도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의 허물을 용서하기를 좋아하며, 범죄자를 정죄하되 될 수 있는 대로 가볍게 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인간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16. 그러나 더 믿을 수 없는 경우에는 “모든 것을 바랍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인정되더라도 사랑의 사람은 그것이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그런 범죄가 그에게 있었을 까닭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일까? 아마 진상은 좀 다를 거야!” 이렇게 생각해서 그 범죄 사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될 수 있는 대로 과소평가하려는 태도를 가지며 실상 그렇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범과 사실이 확실한 경우에는 사랑의 사람은 “그것을 고의적인 것은 아니었을 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만일에 계획적인 악의에 의한 범과라고 여겨지더라도 그는 그것은 그의 본성이 나빠서라기보다 일시적 감정의 폭발이거나 혹은 어떤 강력한 시험에 들어서 그 사람이 거기에 휩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저것 다 시인할 수밖에 없는 경우 즉 그의 행동이나 의도나 성격 등이 다 악했다 하더라도 사랑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내미시어 그를 구원하심으로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보다 이 한 죄인의 회개를 더 기뻐할 그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7. 마지막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로써 진실로 자비한 자의 품성은 완성됩니다. 그는 더러만이나, 여러 가지나, 거의 다 정도로만 견디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전부 견딥니다.
아무리 불공평하고 악랄하고 잔인한 일을 당한다 해도 그는 이를 능히 견딥니다. 그에게는 이것은 정말 참을 수 없다고 할 일이 세상에 없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또 모욕적인 대우라도 그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도우심에 의하여 참고 견디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당하는 고초가 그의 사랑의 열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거나 손상하지 못합니다. 사랑이야말로 방수제, 방화제의 역할을 합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지심에서 솟구치는 불에 비길 것입니다. 많은 물이 이 사랑의 불을 끌 수 없을 것이요, 큰 홍수가 이것을 엄몰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승리자이며, 현실에서나 영겁에 영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시인이 읊은 대로, 사랑은 오직 하늘의 명령에 순종할 뿐으로, 지식도 폐하고 예언도 그칠 것이나, 오직 사랑만은 영속할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에 얽매임도 없고, 썩음의 운명도 당함이 없이 언제나 선을 뿌리며, 영원히 칭예를 누리면서 승리의 즐거움 속에, 무궁 세계에 빛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비한 사람들은 자비를 받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다만 하나님의 축복만이 그의 하는 모든 일에 임하고, 그가 그의 형제를 사랑한 그 사랑의 몇 천만 배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보상을 받을 뿐 아니라 “창세 때부터 준비된 나라에서” “영원하고 큰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연습문제]
1. 사랑의 사람 곧 긍휼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합니까?
2. 긍휼의 문제에 있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거나 무자비한 말이나 행동을 한 것이 있었으면 서로 고백하고 회개합시다.
(요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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