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 속회 공과 5
웨슬리 속회 공과
김원경 목사 편
제 5 과
성서적인 기독교 (1)
성경 : 사도행전 4:31
(요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1.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었다”는 표현이 사도행전 2장에도 나옵니다.(행 2:1-4) 그 결과의 하나는 그들이 여러 가지 다른 나라말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는 여러 곳에서 온 외국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모여 왔다가 각각 자기나라 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말하는 것을 들었다”(행 2:5-13)는 정도였습니다.
본문의 사도행전 4장에서는 사도들이나 형제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을 때 “그 모였던 자리가 흔들리고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행 4:3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장의 기록에는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성령의 신비한 은사가 이때의 모든 사람, 혹은 사람들 중의 누군가에게 주어졌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신비한 은사란 “병 고침” “기적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의 은사 등을 말합니다.(고전 12:9-10)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야할 사실은 교회의 요람기(搖籃期])에 있어서까지도 하나님께서 그러한 은사는 이따금씩 밖에는 분배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때에도 모두가 예언을 하였던가요? 모두가 기적을 행하는 자였던가요? 모든 사람이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었던가요? 모든 사람이 방언을 말했던가요? 결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교회의 교사들뿐이었고 그들 중 몇 사람뿐이었습니다.(고전 12:28-30)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신비한 은사를 얻는 것보다 더 훌륭한 목적을 위해서였습니다.
2. 그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이것은 모든 시대, 모든 기독교인에게 필수적인 것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을 가지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성령의 열매를 주기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갈 5:22-24)으로 채워주고 그들에게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부여하고 그들에게 정욕과 욕심을 육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내적 변화의 결과로 모든 외적인 의(義)를 성취하고, “그리스도가 행하신 것같이”(요일 2:6) 행하는 것을 그들에게 가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의 신비한 은사에 관한 호기심에 찬, 불필요한 논의에 분주하지 말고 성령의 정상적인 열매에 대해 좀 더 가까이 해 보기로 합시다.
이 열매가 모든 시대를 통하여 존속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 정상적인 열매야 말로 하나님이 사람의 자녀들 사이에서 행하시는 위대한 역사이며 그것을 “기독교”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서적인 기독교”란 말은 의견이나 교리의 체계가 아니라 개인의 마음과 생활에 관한 표현인 것입니다. 먼저 이러한 “기독교”가 개인 안에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개인 안에 이루어지는 성서적인 기독교
1. 기독교 기원 당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려 죄를 확신하고 회개하여 예수를 믿은 한 사람의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인 이 믿음에 의하여 아들의 신분을 주는 영을 받고 그 영에 의하여 이제는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롬 8:15) 이제 처음으로 그는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를 주(主)시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고전 12:3) 성령께서 그의 영과 함께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거해 주시는 것을 받게 되었습니다.(롬 8:16) 이제 그는 참으로 감격하여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몸으로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 2:20)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그의 신앙의 본질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이요, 그것은 죄인인 그에게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통하여 주어진 것이어서 이제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므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롬 5:1) 모든 인간의 이해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의 마음을 주장하게 되어(골 3:15) 모든 의혹과 공포에서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흉한 소식에 대한 두려움”(시 112:7), 어두움의 힘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함을 받는 것입니다.(히 2:14-15) 그러므로 그의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즐거워하게 됩니다.”(벧전 1:8)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 값을 용서받은 것에 대한 기쁨(엡 1: 7), 하나님의 영이 그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해 주는 것에 대한 기쁨(롬 8:16),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소망을 가지고(롬 5:2)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부어지기 때문에(롬 5:5) 아들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끊임없이 증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우기 위해서 얼마나 큰 사랑을 아버지께서 베푸셨는가를 잘 생각해 봄”(요일 3:1)으로써 더욱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요일 5:10)를 자신 안에 가지게 된 것입니다.
3.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요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는(요일 3:18)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마음에 가진 사람이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믿어지는 일입니다. 단순히 악을 행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은 선을 행하는 일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의 마음의 소리는 언제나 “내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 5:17)라고 말하며 선을 행하시면서 동분서주 하셨던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굶주린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부모가 없는 가련한 자를 위해 남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면 어떤 경우에서도 “자기를 부인하는”(마 16;24) 일을 특히 기뻐했습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25:40)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한 것입니다.
4. 이러한 것이 그 발생 당시의 기독교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제사장과 장로들의 위협을 들었을 때 “다 같이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으매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상용(常用)하는”(행 4:24, 31-32) 무리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처럼 그들이 믿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서로서로 사랑하게 한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기독교가 한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퍼져가 어떻게 해서 점점 이 세상에 진출해 갔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연습문제]
1. 성령 충만의 목적에 대해 서로 얘기해 봅시다.
2. 개인 안에 이뤄지는 성서적 기독교에 대하여 설명해 보십시오.
(죄의 확신, 회개, 신앙, 내적인 거룩, 선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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