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채움 - 지경 넓히기 3 - 가정의 CEO

나효선 2008. 8. 11. 10:57

채움 - 지경(삶의 영역) 넓히기 3

 

  삶에 의욕이 없을 때는 시장에 나가서 살기위해 경쟁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면 살고자 하는 힘을 얻는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시장을 거쳐야 전철역에 갈 수 있다. 오갈 때마다 놓인 물건들, 음식을 바삐 만듦, 사고파는 풍경 등을 보면서 다니니 재미있다. 생명력이 넘치는 삶의 현장이다. 마음이 나약해질 때 오가며 힘을 얻는다.

가정의 CEO(최고경영자)

  나는 전에는 여왕이자 무수리였다. 집에 가면 1인 제국을 다스리는 여왕이자 온갖 유지·관리에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무수리였다.

지금도 여왕이자 무수리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양상이 조금 다르다. 구십이 넘으신 어머니는 나의 백성이자 여왕이시다. 수간호원이셨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를 간병할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간호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부드럽게 살살 다뤄야 해.” 하신다. 화장을 하면 “세상이 험하니 예쁘게 하고 다니지 말라.” 밤에 걷기운동을 하려고 나가면 “밤에 위험한데 조심하라.” 하신다. 집에 온다는 시간에 가지 않으면 들락날락하시면서 걱정을 하시니 오십이 넘은 나이에 어머니 슬하에서 다시 어려진다.

 

  사회 생활할 때는 보지 못했던 텔레비전의 여성대상 프로그램을 보니 이제는 전업주부들이 ‘가사 노동자’가 아니라 ‘가정의 CEO(최고경영자)’라는 말을 한다. 주부 커뮤니티인 ‘미즈’나 ‘아줌마닷컴’에 접속해 가정경영의 정보를 교환하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 노하우를 쌓은 뒤 ‘가정경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 최고의 가치는 바로 당신’

내가 ‘나’를 인정하고 존경하지 않는다면 남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개척하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높아진다.≫

 

  전에는 일위주로 살아서 ‘살림’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는 ‘가정의 CEO’이다. 거기에 걸맞게 가정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 ‘살림’을 배우고 가정경영을 잘 하려고 노력한다.

며칠 전 양변기의 볼 탭이 낡아 고장이 나서 4000원을 들여 새 것을 구입하여 오빠 네의 스패너를 빌려가지고 조립했다. 그런데 물이 조금 새서 살펴보니 고무패킹을 거꾸로 끼웠다. ‘할 수 있어.’ 마음을 다지고 다시 해체해서 쭈그리고 앉아서 조립을 새로 했다. 그런데도 물이 샌다. 할 수없이 다른 철물점에 가서 고쳐달라고 청했다. 볼 탭만이 아니라 다 낡았다고 모두 새로 교체했다. 비용이 8배 이상 더 들었다. 그러더니 양변기 밑의 시멘트가 깨졌다고 새로 발라야 한다면서 다 깨어서 떼어내신다. 아저씨는 “수제비 반죽하듯이 백시멘트를 되게 반죽해서 붙이면 된다.”고 하시면서 백시멘트는 공짜로 주셨다.

이럴 수가! 여왕인 나보고 하라는 것인가? 신하도 없는데… 수제비는 우리가족이 여유롭게 살지는 않았지만 만들어 먹은 적이 없다.

먼저의 철물점 아저씨는 미덥지 못하고, 나중 철물점 아저씨는 더 이상 말을 붙이기가 어렵고…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며칠을 미루다가 벌레가 생긴다는 아저씨의 말이 자극제가 되어서 ‘가정의 CEO’로서 결심을 하고 8월 7일 밤에 백시멘트를 반죽했다. 수제비 반죽은 해보지 않았지만 학생들 요리 실습할 때 경단을 만들기 위해 찹쌀을 익반죽한 경험은 있으니 ‘해보자.’ 변기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백시멘트 반죽을 붙이고 모양을 내기위해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매만졌다.(아저씨는 스펀지로 하라고 주셨지만) 반죽이 묽게 되었는지 백시멘트 굳히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4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굳어지지 않아서 5% 덜 굳은 상태에서 잔 후 아침에 보니 역시 그 5%가 부족하게 밉게 조금 아래로 퍼진 채 굳어졌다. 굳어진 후는 어찌할 수가 없으니 내 힘으로 ‘해냈다.’는 성취감만으로도 기쁘다.

 

  명퇴를 한 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비즈공예를 해볼까 하여 인터넷으로 도안을 얻어서 만들어 보았다. 나는 혼자 배워서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작품을 수백 개를 만들어야 전에 받았던 월급이 된다. 만들기만 하면 되는가? 팔려야만 수익이 된다. 그런데 수익을 얻으려다가 시력을 잃어버리겠다. 영롱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에 눈이 아른아른 거려서 창작열이 불타오를 때라야 만든다. 비즈공예를 하면 인내심은 기를 수가 있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야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비용이 들기 때문에 드문드문 하게 되지만 손가락을 많이 움직여야 뇌가 활성화가 되니 영롱한 구슬을 꿰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