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
≪ 자유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이다. 이는 소극적인 의미로서의 자유이다. 둘째는 ‘무엇을 향한 자유, Freedom for’이다. 이는 전자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이다. 이 자유는 단순히 예속과 억압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우러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진정한 자유는 기피하거나 해방하거나 포기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자유 즉 Freedom from이 아니다. 진리를 통하여 스스로 자유하게 될 때에 스스로 누릴 수 있는 자유 즉 Freedom for이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르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곧 이런 자유를 일컫는다. ≫
김진홍 목사님의 아침묵상 중에서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나는 1979년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1980년 11월쯤 어머니가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와야 사람도 사귀고 결혼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는 1년 반 동안 하숙생활을 하다가 2학기부터 두 명의 여선생님이 아파트를 얻어서 같이 자취를 하자고 제의를 해서 자취를 하던 중이었다. 학교 코앞 영렬탑 근처에서 해주는 밥을 먹고 다니다가 일을 분담하기는 했지만 비래동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자니 힘들었는데 어머니가 마침 그렇게 말씀하셔서 기뻤다.
12월 23일 현관 앞에서 만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전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할 말이 있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교장실로 오라고 하셨다. 학교를 그만두려고 하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셨나? 지레짐작을 하고 종업식 후 교장실에 가니 고등학교 선생님도 앉아계셨다. 다짜고짜 “제가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합니다.” 하니까 당황하신 듯하더니 “아버지에게 말씀드렸어요?” 하신다. 내가 그만 두는데 아버지가 무슨 상관인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집에 가서 푹 쉬고 오세요.” 하셨다. 집에 가서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니 “내가 은퇴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계속 다녀라.” 하셨다. 지원군이 되어줄 어머니는 미국에 있는 작은언니에게로 가셨기에 도움도 못 받고, 방학동안 푹 쉬기는커녕 할 줄 모르는 살림을 해야만 했다.
1981년 3월이 되어서 중학교에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이 전에 교장실에서 뵌 고등학교선생님이셨다. 에구에구, 수업시수가 더 늘은 데다가 두 개 학년을 맡게 되었다. 힘들다고 서울로의 탈출(?)을 꿈꾸었는데 더 힘들어졌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하숙생활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서울로의 탈출(‘무엇으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을 꿈꾸다가 1986년에는 포기하고 아파트를 구입하여 대전시민이 되었다.
그 후 21년을 열성을 다하고 보람되게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활용하고, 2007년 2월 드디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를 얻었다.
‘무엇을 향한 자유, Freedom for’
- 진리를 통하여 스스로 자유하게 될 때에 스스로 누릴 수 있는 자유 -
걷기운동을 하는데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몸의 자세, 보폭, 착지할 때 발뒤꿈치부터 닿아야한다든가 또는 장생보법 <어린아이들처럼 발바닥의 혈자리인 용천(湧泉·발바닥을 안쪽으로 구부렸을 때 움푹 들어간 곳)으로 걷는 걸음이 건강하다.> 등도 있지만 우이천변을 걸을 때의 규칙이 있다.
2007년 8월초 처음 걸을 때 규칙을 잘 지키는 나는 좌측통행을 했다. 가다보니 잘못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2㎞정도 걷고 돌아서서 오다가 아래를 보니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우측통행이 바른 것이다. 나는 규칙을 잘 지킨다고 걸었는데 잘못 걸었다. 커다란 화살표가 세 번이나 그려져 있는데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했다.
우이천변 걷기를 할 때 자전거·인라인스케이트·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가는 사람, 뛰는 사람, 빨리 걷는 사람, 천천히 걷는 사람, 지팡이 짚고 걷는 사람, DMB TV를 보며 걷는 사람, 역주행하는 사람 등 많은 양상을 보게 된다. 한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우리의 인생길을 연상하게 되어서 어떤 때는 갑자기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무슨 목표를 가지고 걷는가? 왜 걸어가야 하는가? 올바른 방향인가?
과연 우리는 올바른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올바른 의식을 갖고 행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성화된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성령께서 나를 지시하시고, 통제하시고, 간섭하시는 것을 지속적으로 받는 사람”(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 성경에서 ‘귀(耳)로 듣는 것’은 자발적인 복종을 말한다. 근본적인 신앙태도는 하나님 말씀에의 순종인 것으로서 보는 것보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사무엘상 3장 9~10절) ≫
하나님은 사람을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정교한 로봇으로 창조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도, 불순종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지금은 하나님의 복음이 거의 온 세상에 전파는 되었다. 그러나 귀가 있어도 들을 귀가 있어야 들을 수가 있다.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어야 들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짊어져주신 십자가의 보혈로서 죄를 깨끗하게 씻음 받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구원받았다. 이제는 스스로 자유의지로 ‘나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즉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6장 27, 28절 / 31절)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태복음 13장 41절~43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장 12절)
‘지혜로운 자는 자기 영혼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이 땅에서 영원을 준비하는 자’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무엇을 향한 자유, Freedom for’)함으로서 죄의 올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실은 사랑의 물결에 나를 내맡기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진정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빛 : 어둠
순종 : 불순종
선택은 자유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대가를 치러야만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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