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18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6과 죽음 묵상을 통한 침묵 기도의 길
* 성경봉독 : 시편 90:3~12
* 요절 :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시작하는 말
최근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나 다가오는 죽음을 여유 있고 품위 있게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피날레인 마지막을 아름답게 보내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신자들은 과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6월은 죽음을 묵상하는 침묵 기도를 알아보고 여유 있고 품위 있는 죽음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본론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을 알면서도 기독교인들조차도 집착하다가 죽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영성가들은 늘 죽음을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죽음이나 장례식을 묵상할 때 욕심과 근심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성가들은 죽음을 친밀하게 생각했습니다. 동방정교회의 고전인 『필로칼리아』에 보면 영성가들은 죽음을 아담의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서방교회를 대표하는 영성가인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태양의 찬가”에서 죽음을 자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죽음을 아담의 딸이라고 한 이유는 아담의 범죄를 통해 죽음이 인간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자매라고 한 이유는 죽음도 피조물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가장 엄숙한 스승이요, 사랑스러운 동반자로 여겼지요. 특별히 동방정교회의 영성가들은 자신의 죽는 순간을 묵상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고요를 경험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곤 했는데 그것은 현실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는 모든 것들을 홀연히 초월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죽음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욕심과 근심이 대표적입니다. 부자는 부자이기에 근심이 떠나지 않음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눅 12:16~21). 얼마나 가련한 인생인가요? 그런데 우리가 죽음을 묵상하는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머리가 가벼워지는 것을 보니 죽을 날이 다가온 모양이다.” 마음에 가득한 욕심과 근심이 사라지기에 머리가 가볍고 청결해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동방정교회에서 죽음에 대한 묵상은 무정념(無情念)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청결에 이르는 중요한 영성훈련의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죽음이 그런 역할을 하는 이유는 죽음의 두 가지 차원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는 죽음의 불가피성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창조주가 정한 법칙입니다. 또 하나는 죽음이 다가올 시간에 대한 불가지성입니다. 즉 죽음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를 알 수 없는데 그것이 피조물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삶의 가장 엄숙한 스승이 되고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도록 도와줍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삶의 가장 사랑스러운 동반자입니다.
죽음을 삶의 동반자로 여길 때 우리는 “죽음 없는 죽음”(the death without a death)을 맞이할 것입니다. 죽는데 왜 죽음(a death)이 없을까요? 죽음이 없다는 의미는 두려움, 후회, 사별의 고통이 경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가 허락한 시간만큼 최선을 다해 살다가 이제 영원한 안식을 위해 그분에게 돌아가기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이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영성가들은 종말론에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종말적인 삶을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죽음이 올 것을 준비하며 살았기에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맞을 수 있었습니다.
영성가들은 죽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중 하나라고 이해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이렇게 이해할 때 존엄한 죽음의 차원을 넘어 매일매일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영성가들처럼 나 자신의 장례식을 묵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질문해 봅시다. “내 장례식에는 가족 외에 몇 명의 조문객이 참석할까? 내 장례식을 집례하는 집례자는 내 인생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요약하는가?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조문객들에게 나의 삶은 어떻게 남겨질까? 만약 하나님이 내 생명을 연장해 주신다면 내가 꼭 해야 할 세 가지는 무엇일까?” 이상과 같은 질문들을 수시로 묵상하면서 하반기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육체는 조만간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원히 남길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입니다. 살면서 얼마나 사랑을 주었는지 표시하고 서로 나누어 봅시다.
(숫자가 클수록 큰 사랑입니다.)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2. 나의 남은 삶을 위한 기도문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 『2018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영성 형성의 길 The Way of Spiritual 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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