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17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10과 미국 감리교회의 개척자
필립 엠버리 Philip Embury
* 성경봉독 : 시편 145:12~14
* 참고성경 : 히브리서 2:11~12
* 요절 :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시 145:13)
필립 엠버리는 미국 감리교회의 개척자입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미국에 와서 사촌인 바바라 헥과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 개척이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교회 개척에 헌신한 것은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열정이 그를 움직인 것입니다.
북아메리카의 감리회 개척자인 필립 엠버리는 1728년 9월 1일 아일랜드 리머릭 카운티의 볼린그레인에서 독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목수로서의 정당한 교육을 받은 전문 목수였습니다. 존 웨슬리의 설교 영향을 받아 1752년 성탄절에 회심을 체험하고 감리회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1758년 필립은 사우스웰 지역에서 감리교도들을 위한 평신도 설교자가 되었고, 채플 공사에 기쁨으로 참여했는데, 이 무렵 평생의 반려자 마가렛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결혼 후 필립의 아버지가 세운 엠버리 가문을 더욱 유명한 가문으로 크게 일으켰습니다.
1760년 6월 어느 날, 친족들과 감리교 친구들이 일단의 젊은이들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리머릭 시에 있는 커스텀스하우스에 모였습니다. 그 젊은이들 가운데는 전도유망한 젊은 설교자, 필립과 임신 중인 아내 마가렛이 있었습니다.
1760년 그들은 리머릭에서 배를 타고 9주간 항해한 끝에 아메리카에 도착했습니다. 필립은 뉴욕에서 목수로 일했는데, 1766년에 바바라 헥의 설교를 들으면서 식었던 종교적 열정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는 곧 바락 스트릿에 있는 자기 집과 윌리엄 스트릿에 있는 삭구공장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로 인해 필립은 바바라 헥과 함께 북아메리카에 감리회를 설립한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집회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밀려오는 사람들을 수용하기에 비좁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만큼 그의 설교는 설득력과 감화력이 있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예배당 지을 헌금을 했고, 많은 기금이 모아져서 1768년과 1769년에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이 교회는 존스트릿교회로 명명되었고, 북아메리카의 첫 감리교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필립과 가족을 위한 목사관도 세웠습니다. 지금도 필립이 설교하던 강대상이 방문객들을 위해 전시되고 있습니다.
존스트릿에 미국의 첫 감리교회를 세운 필립은 일 년 간 설교했습니다. 그러다가 1769년 워싱턴 카운티에 있는 캄덴으로 이사했는데, 그는 이사하기 며칠 전까지도 예배당 인테리어를 위해 일을 했습니다. 캄덴에 도착한 필립은 지도자로 알려진 덕분에 땅을 할당받았고, 주지사로부터 알바니 카운티의 평화 판사로 임명받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필립은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신망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이런 신망은 설교사역을 더욱 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필립은 목수로 일하면서 매 주일 설교했습니다. 그러다가 토머스 애쉬튼과 집 근처 애쉬그로브에 뉴욕 북부의 첫 감리교 신도회를 조직하고, 캄덴에 속회를 세웠습니다. 필립은 설교자요 속장으로서, 애쉬튼은 평신도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들은 뉴욕 북부에 감리교회의 첫 씨앗을 심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필립은 1775년 8월 자신이 일군 밭에서 일하다 늑막염으로 쓰러졌고 며칠 병석에 있다가 결국 소천했습니다. 필립은 뉴욕의 캄덴 밸리에 있는 파더 비닝어 농장에 묻혔습니다.
1832년 6월 6일, 애쉬그로브에서 개최한 트로이회의에서 필립의 유골을 비닝어 농장에서 애쉬그로브 무덤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필립이 처음 설교한 지 100주년이 되는 1866년에 다시 뉴욕 캠브리지의 우드랜드 공동묘지로 옮기기로 해서 지금 필립은 우드랜드에 묻혀 있습니다.
필립 엠버리는 식을 줄 모르는 열정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한 감리교 설교자였고 교회 개척자였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과 교회를 시작했지만, 곧 모임 장소가 비좁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설교에 큰 감화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성경탐구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설교만 하지 않고 직접 밭을 일굴 정도로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자비량으로 전도여행을 했던 사도 바울을 연상시킵니다. 그는 자신의 식량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면서 말씀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교회를 개척한 것은 단순히 한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를 넘어 교회를 주님의 뜻에 맞게 바르게 세운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교회를 영적으로 세우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 우리의 교회를 영적으로 세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 『2017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웨슬리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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