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17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12과 열정적인 복음 전도자
해리 덴만 Harry Denman
* 성경봉독 : 이사야 6:7~8
* 참고성경 : 사도행전 10:42
* 요절 :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해리 덴만은 감리회 평신도 지도자이며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가르쳐주는 삶을 강조했습니다. 덴만은 단순한 삶을 예시하고 교육함으로써 현대의 물질주의를 비판했고, 인종·성별·경제적인 차별을 하지 않고 편견에 도전했습니다. 특히 그는 매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한 켤레의 신발만 신었고, 시계도 없어서 보통 시간을 물으면서 대화를 시작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물품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또 다른 유명한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의 친구였는데, 그래함은 덴만을 가리켜 “복음을 위한 위대한 멘토”라고 했습니다.
해리 덴만은 1893년 9월 26일 알라바마 주의 버밍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노동자로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였습니다. 덴만은 아버지가 가족을 포기하자 10세의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를 도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과 주일학교 선생님은 덴만에게 다시 학교에 가서 공부하라고 설득했고, 이에 덴만은 1904년 학교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덴만은 1921년에 버밍햄 남가주대학을 졸업하고, 1931에는 사회복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36년에는 알라바마 아텐주립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15년 버밍햄 주일학교 연합의 실무자가 되어 1919년까지 일하다가, 그 해에 버밍햄제일감리교회의 운영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전도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덴만은 1938년 감리회 에피스코팔 교단의 선교부 소속 복음전도단 서기로 선출되었고, 1939년에는 감리교회의 복음전도위원회(복음전도총연맹)의 총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신앙 간행물인 「다락방」을 발행했고, 내슈빌에 다락방 채플도 세웠습니다. 특히 그는 다음 세대에서 미국 감리교회 복음전도를 책임질 중요한 인물들에게 멘토가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처럼 덴만도 복음전도의 중심은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의 사람이 되는가? 덴만은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해 타인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웨슬리처럼, 덴만도 규칙적으로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언제나 타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야말로 사랑의 열쇠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은 개인이나 가족이나 국가를 위해서 기도할 때, 개인이나 가족이나 국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덴만은 지속적으로 여행하면서 자기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삶을 돌보고, 그들의 직업과 가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교회에 대해 묻거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혹은 자신에 대한 기도를 요청하면서, 화제를 신앙의 문제로 전환했습니다. 덴만은 평신도였음에도 설교를 잘했습니다.
그는 교회의 증언이 물질주의와 인종차별주의로 뒤섞였다고 믿었습니다. 덴만은 한 벌의 신사복만 가졌고, 여행할 때도 서류가방 하나에 파자마와 셔츠 하나, 속옷 한 벌, 그리고 양말 몇 켤레 정도만 넣고 다녔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처럼 그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죽을 때는 재산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소속은 알라버마에 있는 백인교회와 내슈빌에 있는 흑인교회 두 군데였습니다.
덴만은 알라버마 주의 버밍햄주일학교연맹의 서기로 일했으며(1915~1917년), 버밍햄제일감리교회의 평신도 매니저와 북알라버마 콘퍼런스의 평신도 지도자로 봉사했습니다(1917~1938년). 미국 감리교회가 재결합한 1939년에는 감리교회의 복음전도 총회 서기가 되어 1965년 은퇴할 때까지 봉사했습니다.
1949년 1월 31일, 덴만은 9명으로 구성된 헌신된 감리회인들의 그룹에 속하였습니다. 그들의 열망은 교회의 복음전도 사역을 직접 돕는 것으로 결국 복음전도 재단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국제기도팔로우십을 설립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기구의 본부는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준알루스카 호수에 있었고, 해리 덴만을 기념하는 기도 채플이 있습니다. 1965년 덴만은 복음주의총연맹에서 물러나면서 받은 마지막 사례비를 복음전파를 위한 재단에 기부했습니다. 남은 생을 미국과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복음전도 집회를 열고 설교하며 보냈습니다. 1976년 덴만은 83세를 일기로 알라버마의 버밍햄에서 서거했습니다.
덴만의 빼어난 사역은 오늘날 미연합감리교회(UMC)의 모범인 동시에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사역이 끼친 영향은 그가 상대하고 형성했던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감리교회의 많은 연회들에서는 매년 복음전도를 위해 탁월하게 사역한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덴만상을 수여하고 있고, 이 상의 스폰서는 복음전도 재단입니다. 이것은 덴만이 20세기 중엽의 감리회에서 개인적인 복음전도의 옹호자이며 실천자였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우리가 왜 복음 전도를 해야 하는지를 성경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2. 복음 전도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 『2017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웨슬리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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