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9번 유형 : 요나단
1. 고귀한 사람 요나단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이 에니어그램의 대표요 상징이란 말이 있는데 이를 증명할 사람으로서 요나단을 능가할 인물을 달리 찾기가 어려울 듯싶다. 히브리 성서에 나타는 인물 가운데서 가장 고상하고 티 없이 맑고 매력적이며 자기부정을 사랑과 관용으로 나타낸 빼어난 인물이다.
요나단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낸 인간관계가 다윗과 나눈 사랑에 나타나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사울 왕 앞에 나타나 이야기를 끝냈을 때였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마치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어,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삼상 18:1,3-4). 실로 파격적이요 놀라운 일이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세 아들 가운데 장자요 군대의 천부장으로서 장군이다. 속으로 자기를 사랑하듯 아끼는 마음이 있어도 신분과 권위의 상징인 겉옷과 무기와 띠까지 모두 준 일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대접이다.
이렇게 시작된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과 그 이후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 둘의 사랑이 단순한 우정이냐, 두 사람 사이의 정신적 사랑 platonic love이었느냐, 동성애 homoerotic/ homosexuality였느냐 오랜 동안 논쟁이 있었을 만큼 대단한 사랑이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에피소드와 스토리가 얽혀 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총애를 받고 왕궁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쏠리는 것을 보자 사울은 시기하기 시작하였고 위협을 느끼면서 다윗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로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10년 세월동안 온갖 박해와 죽음의 위험을 겪으면서 도피 생활을 계속할 때 요나단이 보여준 희생적인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토마스 버넷 스완 Thomas Burnett Swan의 소설 ‘어떻게 강자가 추락하는가 How Are The Mighty Fallen’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이 연인으로 그려지는데, 특히 요나단은 네피림(창6:4)일지도 모를 반 인간 semi-human이요 날개 달린 반 천사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환상 소설에서도 요나단은 역시 사랑이 많고 특별히 고상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사울 왕이 다윗에 대하여 격노하면서 요나단에게 하는 말에서도 요나단의 사랑은 크게 나타난다. ‘네가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라고 화를 내면서 다윗은 죽어야 마땅하다고 할 때도, 그는 고상한 자세를 간직하고 사울에게 탄원한다. 그러나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의 결의가 워낙 굳은 것을 알고는 요나단이 자기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다.
사울은 왕이며 요나단의 아버지이다. 부왕이 위협을 느끼며 불안하여 다윗을 제거하려 하면 계승자가 될 요나단도 같은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고, 자기 마음을 비우고 다윗을 옹호하며 사랑한다. 이는 자기 개인의 위치와 욕망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인 요나단이 한 번 마음먹고 사랑하기 시작하면, ‘무조건적 사랑’으로 다윗을 사랑할 뿐 아니라, 관성 Inertia의 법칙이 강한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의 특징으로서 꾸준히, 한 결 같이 사랑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성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을 본다.
2. 신의의 친구 요나단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의 선을 넘어서면, 대체로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런 것 같다. 당시에도 부왕 사울이 이해하지 못하였고, 현대에 와서도 그 고귀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편리한 논리를 내세우며 별별 해석을 다 시도한다. 그러나 삶 속에 나타난 지속성과 일관성을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신의이다. 말 자체가 뜻하는 대로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이오, ‘믿음으로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요나단이야말로 이런 신의의 상징이라 하여 지나침이 없다. 허구로 소설처럼 그리더라도 요나단이 일생을 두고 다윗에게 보여준 신의는 실천은 고사하고 묘사하기도 쉬운 일이 아닐 정도인 듯싶다. 그야말로 첫눈에 사랑하게 된 그날부터 블레셋 사람과의 전투 중 길보아 산에서 전사하는 순간까지 요나단의 사랑은 지고지순의 사랑이었다. 비록 다윗이 나중에 왕위에 올라 역사상 큰 이름을 남긴 임금이 되기는 하였으나 두 사람 사이를 견주어 보면 요나단의 사랑이 더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다.
다윗을 처음부터 사랑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끝까지 사랑한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면을 본다. 세상이 알다시피, 사울은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혔다’(삼상16:14)고 하였듯이 정신 질환을 앓았고 에니어그램 8번 유형의 격정에 사로잡혀 음모와 조작과 복수를 일삼는 아버지이자 임금인 사울을 대하면서도, 요나단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고상하게 신의와 품격을 지켰다.
요나단이 부왕과 두 형제와 함께 전사하였을 때, 다윗이 지은 유명한 조가 ‘활 노래’에서도 신의와 사랑이 묻어난다. ‘사울과 요나단은 살아 있을 때에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떨어지지 않았구나!’(삼하 1:23).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아버지를 끝까지 사랑하고 지켜준 요나단의 신의와 사랑이 더욱 돋보인다. 다윗은 요나단의 신의와 사랑을 추모하며 노래한다. ‘나의 형 요나단, 형 생각에 나의 마음이 아프오. 형이 나를 그렇게도 아껴 주더니, 나를 끔찍이 아껴 주던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 진한 것이었소,’(삼하1:26). 얼마나 살뜰하고 자상한 사랑을 끊임없이 베풀었으면, 이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동성애로 의심 받을 만큼 애절하게 사랑을 추모했을까 싶다. 그토록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요나단이었다. 사울 왕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바람에, 다윗이 말하기를 ‘나와 죽음 사이는 한 발짝 밖에 되지 않네’(삼상20:3)라고 하였을 때,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하였다. ‘자네의 소원을 말해보게, 자네를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네’(삼상20:4)라고 하면서 다윗의 탈출을 도우며 신의를 지켰다. 위험을 무릅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왕자인 요나단이 왕위 계승권까지 포기하면서 다윗을 지킨다. ‘다윗이 십 광야의 호레스에 있을 때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호레스로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자네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걸세. 나는 자네의 버금가는 자리에 앉고 싶네.’(삼상23:16-17).
‘이리하여 이 두 사람은 다시 주님 앞에서 우정의 언약을 맺었다.’(삼상23:18).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믿고, 하나님이 뜻을 이루는 일과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일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인 요나단은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의 덕목을 유감없이 살리면서, 다윗에게는 사랑과 의리를, 백성에게는 사랑과 충성을 하나님께는 사랑과 믿음을 지킨 사람이다.
3. 관용의 왕자 요나단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의 잠재력은 크다. 그 큰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덕목과 격정으로 명암이 갈린다. 잠재된 에너지를 선용하면 덕목이 되고 오남용하면 그 결과로 격정의 노예가 된다. 요나단의 덕목은 무조건적 사랑이 평화와 화해와 관용으로 나타나는데, 그것도 지속성과 일관성으로 나타난다.
9번 유형의 관용이 요나단에게서는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다윗을 끌어안았고, 성격적 결함과 과오를 넘어서 부왕을 너그러이 대하였다. 관용 Tolerance은 오차와 동의어이다. 틀린 줄 알면서도 참고, 견디고, 품는 힘이 바로 관용이다. 요나단은 관용의 왕자였다. 부하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품어준 왕자였다.
싸움터에 나갔을 때도 ‘요나단이 무기를 든 젊은 병사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승리는 군대의 수가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삼상14:6). 소수의 병사를 데리고 블레셋 사람의 큰 군대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면서 지휘관인 요나단이 넉넉한 마음으로 부하를 격려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까지 불어넣는다. 요나단이 다윗의 탈출을 도울 때도 그랬다. 다윗을 배려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얼마나 컸던지 부왕에게 미움도 사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도 오직 다윗의 안전을 위하여 모험도 불사한다. 그의 안전을 도모하여 활을 쏘아 암호를 삼는 과정에서도, 요나단은 ‘어린 종’을 데리고 나가서 심부름을 시키고 있다. 어린 사람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이 오히려 강한 군인을 데리고 일하는 것보다 더 안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어린 종이 느끼는 요나단의 배려와 관용 때문이다.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어리고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도 목숨 걸고 용감히 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도 요나단이 부왕 사울에게 보이는 관용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기의 사위로 삼고서도, 다윗을 까닭도 없이 죽이려고 들며, 그야말로 정신없이 구는 아버지이지만, 요나단은 끊임없이 관용하며 탄원한다. ‘그가 무슨 못할 일을 하였기에 죽어야 합니까?’(삼상20:32)하고 간구하다가 사울의 창에 찔려 죽을 뻔한 위험도 겪었다. 요나단은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고 끊임없이 기회를 살피면서 화해를 시도한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앞에서 다윗의 좋은 점들을 이야기하였다. ‘다윗은 아버지께 죄를 지은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아버지를 도와서, 아주 좋은 일들만 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블레셋 장군을 쳐서 죽였고, 그래서 주님께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도 그것을 직접 보고 기뻐하셨습니다.’(삼상19:4-5). 아버지 사울 왕에 대한 관용이 결국 사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런 관용은 오차와 타성의 이면을 지닌다. 편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흔히 늘어지기 쉽고 타성에 빠지기 쉬운 면을 지닌다. 그래서 동전의 양면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평화를 만들고 화해를 이루며 관용하는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의 요나단은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으나 한 가지 실수가 나타난다. 지치고 스트레스 받을 때 나타날 9번 유형의 실수이다. 요나단에게는 천려일실 千慮一失의 에피소드이다. 템포감각이 떨어졌을 때이다. 벳아웬 전쟁 중에, 사울이 무모하게 군인들에게 금식 명령을 내렸을 때, 어쩌다 직접 듣지 못한 요나단은 ‘벌집에 든 꿀을 찍어서 빨아먹었다.’ 이를 알게 된 사울이 요나단은 죽어야 한다고 선언한다(삼상14:27,44).
4. 일편단심의 의인 요나단
평소에 한결 같은 마음으로 고매한 인격과 깊은 영성과 넉넉한 사랑으로 살면서 살아온 요나단이기에 왕명을 어긴 죄로 죽을 목숨이 되었을 때에도 군인들과 백성이 그를 지킨다. ‘이 때에 온 백성이 사울에게 호소하였다.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준 요나단을 죽여서야 되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살아계심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는 오늘 하나님과 함께 이 일을 이루어 놓은 사람이기 떄문입니다.’(삼상14:45).
한결 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충실하게 살아온 자기들의 지휘관이자 왕자인 요나단에 대한 사랑의 탄원과 호소에 반사되는 요나단의 의로운 모습을 본다. 왕위에 오른 날부터 건강하지 못한 에니어그램 8번 유형인 사울은 끊임없이 전쟁을 하였다. 천부장인 군대장관 요나단도 부왕을 도와 무수한 전쟁에서 공을 세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처음처럼 한결 같은 마음으로 살면서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충실하다.
요나단은 사울 왕을 도와 나라를 튼튼하게 세우며 블레셋의 공격과 압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다. 전쟁에서 공을 세울 뿐만 아니라 왕자로서 지위가 더욱 확고해져도, 요나단은 시종여일하게 자기의 일과 삶에 충실할 뿐이다. 동서고금에 이와 같이 능력과 성실과 영성을 고루 갖춘 인물은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에니어그램 리더십을 말할 때 중요한 요인을 첫 손 꼽는 것이 있다. 평균 상태에서는 별 실수나 과오도 없이 살던 사람도 부와 권력을 잡으면 대개는 오만과 탐욕과 태만에 빠지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격정에 사로잡혀서 평소에 지녔던 좋은 생각과 야망에 반대로 살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요나단은 달랐다. 권력과 지위가 확보되어 있었고, 왕위 계승이 보장될 만큼의 위치에 있었다. 부하군인들과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지녔다. 부왕이 무슨 일을 하려면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사전에 요나단에게 이야기 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삼상20:2). 그야말로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이였다. 그래도 요나단은 변함이 없었다.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과 겨레 사랑에 오직 일편단심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다윗을 지극히 사랑하여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삼상18:3)나서부터 변함없이 ‘요나단은 제 목숨을 아끼듯이 다윗을 아끼어’ 위기와 고난의 순간마다 그 뜻을 재확인하였다. 다윗을 향한 일편단심의 극치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며 자기는 버금가는 자리에 있고 싶다고 말할 때 나타난다.
힘이 생겼을 때 그 힘을 쓰는 태도와 방식이 리더십을 결정한다. 요나단은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윗이나 부하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으며 희망을 가지고 고난을 이겨내도록 돕는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한다. 외유내강의 리더십이요, 관용과 통합의 리더십이다.
성서에 나타난 인물을 통틀어 봐도 각기 특징이 있으나, 요나단처럼 고루 갖춘 인물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자기의 성격 안에서 요나단만큼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며, 힘이 있으면서도 절제하고, 약자를 돌보며 관용과 배려를 드러내는 인물은 찾기가 힘들다. 요나단의 특징은 우정의 상징으로 쓰이는 ‘다윗과 요나단’에서도 나타난다. 나이도 지위도 권력도,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우위에 있었는데도, 늘 다윗을 요나단 스스로 높여 줬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윗을 더 크게 생각하도록 만든 힘이 사실은 요나단에게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예수를 빼 놓고 원만하고 통합적이면서도 힘의 균형과 절제를 온 몸으로 산 사람이 요나단이다.
출처 : 공동체성서연구원 김영운 목사님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서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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