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6번 유형 : 베드로
1. 큰 바위 얼굴 베드로
성서의 등장인물 가운데 베드로만큼 잘 알려진 ‘큰 바위 얼굴’도 아마 없을 것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대표이며, 대변인 역할도 도맡아 한다. 사복음서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또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성정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람도 달리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인성의 다면성을 잘 보여준다.
베드로는 참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다. 실수와 실언도 잘하고, 나서기도 잘하고, 용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맹목적이고 무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번 믿고 따르면 끝까지 따라간다. 때로 딴 소리는 할지언정, 순응하고 충실하고 언제나 함께 하는 사람이다.
베드로는 잘 알다시피 그 이름 자체가 ‘바위’이다. 그러나 동시에 돌도 되고 때로는 조약돌이 되기도 한다. 에니어그램을 모르고 이야기하더라도, 베드로의 특징을 모두 열거하고 나서 에니어그램의 개괄표를 가져다 맞춰보면, 얼른 눈에 띌 정도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의 충실한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베드로의 지명도나 인상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베드로를 8번 유형의 지도자로 본다. 그것은 그가 풍기는 강한 인상이나 수제자로서 열두제자의 대표이거나, 교회의 수장으로서의 지위를 생각해서 그렇게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의 체계에 의하면 보다 더 정밀한 분석을 거쳐서 이해하게 된다.
에니어그램에서 경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누구를 봐도 인상이나 상상에 의해서 이해하든지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성을 이해하고 성격 유형을 파악하려면, 그의 격정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는 데 관심의 초점을 맞춰야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지위나 역할을 본다든가 개인의 장점을 통해서 성격 유형을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다.
이런 관점에서 베드로를 살펴본다.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를 제일 먼저 부르셨다. 선교 여행길에 오르실 때에도 그는 늘 동행하였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리스도 고백을 한 사람도 베드로가 처음이다. 예수께서는 그래서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 16:18)라고 말씀하신다. 시몬을 ‘큰 바위 얼굴’로 세워주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면서 ‘죽임을 당하고서, 사흘 뒤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을 때, 베드로가 펄쩍 뛰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예수께 항의하였다’(마 16:22)고 기록되어 있다. 원전에는 예수께서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같은 동사가 쓰여 있다. 제자가 선생님을 야단친 꼴이다.
이 일로 인하여 ‘반석’이 ‘걸림돌’(마 16:23)이 된다. ‘그리고 엿새 뒤에’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도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베드로를 데리고 가셨다. 영광 가운데 변화하였을 때에, 베드로가 말한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베드로는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던 것입니다’라고 마가복음의 기자는 보도한다.
이처럼 ‘큰 바위 얼굴’이 반석으로 인정을 받았으면서도, 걸림돌이 되듯이 엉뚱한 말이나 무모한 언행을 잘 드러낸다. 더 자세히 살펴볼 일이지만, 이런 현상은 6번 유형이 격정에 사로잡히면 잘 드러내는 속성이다.
2. 잘 나서는 베드로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은 어려서부터 모범적이고 충실한 사람이다. 질서, 규칙, 명령 등을 잘 지키며 순응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걱정이 많으며 열등감에 잘 빠진다. 스스로 의존적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기댈만한 사람이고 좋아할 사람이다. 수호형이며 충성가 타입이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자기 혼자서 무엇을 하려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벗어나는 것이 싫고, 일탈을 기피하는 만큼, 정도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늘 안전이란 함정에 잘 빠진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안전 제일주의’에 빠진다는 것이다. 아버지나 아버지 같은 권위 있는 사람을 의지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해온 버릇 때문이다.
6번 유형의 격정은 공포로 나타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떤 이유로든지 심리적 압박을 느끼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어려서부터 또래 압력에 민감한 탓에 불안한 증세가 잘 나타난다. 이런 심리 상태가 되면,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즉 ‘스트레스, 불안, 공포, 우울’ 이 네 가지는 사촌지간처럼 가까이 맞물려서 나타난다.
이처럼 6번 유형이 격정에 사로잡히면, 3번 유형의 단점으로 퇴화하면서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아무 때나 잘 나서고 엉뚱한 말도 잘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면서도 나서서 말한다.
수난 받으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에도, 예수께서 ‘너희가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모두가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막 14:29)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밤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막 14:30) 그러나 베드로는 힘주어서 말하였다. ‘내가 선생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막 14:31)
이런 것이 바로 격정의 표출이다. 격정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여기서 베드로가 드러낸 것처럼, 누구나 ‘절대로 안 하겠다’고 다짐하며 사는 것은 ‘절대로’ 하게 되고, ‘절대로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안 하는 것’ 그것이 격정이다. 이미 1번 유형 바울을 살필 때 확인한 것이다. 즉,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은 합니다.’(롬 7:19) 선악에 상관없이 하려는 것은 못하고, 안 하려는 것은 하게 하는 것이 격정이다.
6번 유형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격정에 사로잡히면 그 격정의 꼭두각시가 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큰소리치던 베드로는 당장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신 예수께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는데도 쿨쿨 잠만 잤다.
곧 이어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예수를 붙잡으러 왔을 때, 전설에서는 베드로라 하지만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 귀를 잘랐다’(마 26:51)고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도 베드로는 잘도 나섰다. 물위로 걷게 해달라고 했다가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마 14:30)든가, 부활하신 주님이 바닷가에 계신 모습을 보고, 사랑 받던 제자가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는 말을 듣고서 ‘벗은 몸에 겉옷을 두르고 바다에 뛰어내렸다’(요 21:7-8)고 한다.
3. 충성하는 베드로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서 아버지와 친하고, 아버지를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남을 의지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아버지나 아버지 같은 권위 있는 인물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은 늘 안전을 지향한다. 이른바 ‘안전 제일주의자’ 같이 된다.
아버지는 낮이면 밖으로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아버지가 곁에 없으면 불안을 느끼던 버릇은 커서도 잘 나타난다. 그래서 6번 유형의 격정은 공포로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6번 유형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게 되면 변화되어 용기를 덕목으로 갖추게 된다. 그러면 성실하고 전통에 충실하며 믿고 따르는 지도자들에게나 대의명분에 충성한다.
베드로가 마음이 불안정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돌출 발언이나 행동을 하고 잘 나서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말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6번 유형의 기본 성격이 버팀목이 되어서 일단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서 그분에 대한 충성심이 커지게 된다. 더욱이 그가 그리스도 고백을 하였을 때에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게 되면서, 6번 유형에게 가장 힘이 되는 권위와 안전과 아울러 소속감을 확보한다.
베드로는 이런 상황에서 아직은 격정을 붙들고 이겨낸 것은 아니었지만 주님을 향한 충성심은 더욱 커진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중요한 자리마다 동행하시는 만큼 신뢰해 주시는 것이 무엇보다도 힘과 용기를 더해주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숙을 향하여 이행하는 과정으로 보면, 베드로는 실수와 실언을 자주 하기는 하지만 주님을 향한 충성심이 일관되게 지속되는 것을 본다.
변화산 위에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 일이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치는’ 일이나 비록 세 번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면서도 예수가 끌려가서 재판 받는 현장에 가 있는 일이나, 이 모두가 생각은 아직 모자라고 지성과 감성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격정을 벗어나지는 못했어도 주님을 향한 충성심의 발로라 하겠다.
부활 주일 새벽에 빈 무덤으로 제일 먼저 달려간 사람은 베드로이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사랑 받던) ‘다른 제자’와 함께 뛰었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뛰어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 그는 몸을 굽혀서 고운 베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그를 뒤따라 와서,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요 20:4-6)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빈 무덤 안으로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도 베드로였다.
수난 당하시기 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저녁을 먹을 때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장면을 떠올린다. 충성스러운 베드로는 여기서도 펄쩍 뛰었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주님, 내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 주십시오’(요13:8-9) 라고 말하였다.
6번 유형의 기본적인 공포가 ‘버림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그가, ‘그러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는 주님의 말을 들었을 때,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경험이 6번 유형의 베드로로 하여금 권위에 대한 말씀을 남기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즉, ‘여러분은 주님을 위하여,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순종하십시오.’(벧전 2:13). 주님께 충성하는 베드로의 권면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4. 언제나 든든한 베드로
영성 수련의 과정을 ‘야곱의 사다리’에 비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미지가 먼저 눈에 띈다. 에니어그램을 ‘영속적 운동성’으로 이해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 만큼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 인성의 변화 과정도 통합의 방향으로 이어질 때도 있고, 반대로 비통합(퇴화)의 방향으로 옮겨갈 때도 있다.
베드로의 삶을 관찰해도 이런 양면성과 두 방향의 움직임이 변화 과정에 나타나는 것을 본다. 한 사람의 행동과 삶을 ‘오랫동안 예리하게 관찰하면 그 개인에게 명백히 나타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분명히 스스로 ‘확인’하게 될 때 그것이 그의 ‘전 존재에 각인된다.’ 그 때부터 자기 격정을 다루는 지혜가 생기는 법이다.
베드로는 예수가 제자를 불러 모으는 과정에서 처음 제자로 부름을 받았고, 끝까지 떠나지 않고 남았고, 나중에 ‘순교’할 만큼 끝까지 충성한 사람이다. 그의 숱한 실수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충성하는 특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낸 사람이다. 제도와 질서를 수호하고 교회를 지키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응하고 복음을 수호하며 주님께 충성한 사람들의 대표가 되었다.
베드로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즉, 격정을 부정적으로 나쁘게 볼 것이 아니다. 다만 격정을 똑바로 관찰하고 잘 다루면, 거기서 엄청난 힘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이러나저러나 충성한 사람이다. 다만 자기 확인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이 앞설 때에는 불안하거나 허둥대기도 하였다. 그래서 할 말 안 할 말을 구별하지 못하고, 때로는 비굴한 모습도 드러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자신에 대한 주님의 신뢰를 확인하고, 자신의 소명을 재확인하면서 자기의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을 확인하였을 때, 베드로는 단연 으뜸가는 제자로서 의연한 모습을 드러냈고, 예수님 다음 가는 지도력을 발휘하기에 이른다.
오로지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가 확립되었을 때, 내면의 불안과 양가적 상태를 이겨내고, 주님만 의지하는 데서 오는 용기가 탁월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부활하신 주님이 세 번씩이나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확인하였고, ‘내 어린 양떼를 먹여라’ 하고 당부하시는 장면에서 통합의 과정으로 이행하며, 가장 건강한 상태로 변화하는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의 전형을 본다.
후일에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도 1-12장까지 전반부의 중심인물로 베드로를 내세운다. 격정을 이기는 건강한 6번 유형의 담대하고도 용감한 모습을 우리는 저 유명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행2:14-36)와 산헤드린 최고회의 법정의 변론에서 확인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행4:18)는 엄중 경고를 받은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으뜸 제자의 믿음과 지혜와 순교자의 용기가 나타나는 데서 우리는 건강한 6번 유형의 베드로를 확인한다.
출처 : 공동체성서연구원 김영운 목사님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디모데전서 1:12, 14)
'에니어그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8번 유형 : 에스더 (0) | 2015.10.01 |
---|---|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7번 유형 : 솔로몬 (0) | 2015.09.03 |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5번 유형 : 요셉 (0) | 2015.08.05 |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4번 유형 : 요나 (0) | 2015.07.28 |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3번 유형 : 야곱 (0) | 2015.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