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4번 유형 : 요나
1. 스페인으로 도망가는 요나
‘요나는 어디에나 있다 Jeder ist Jona’ 라는 말이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선지자 요나가 한 짓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 된다. 우리가 흔히 성격이라고 하는 말은 심리학에서 인성 personality이라 한다. 보편성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성격이 공통적이라는 뜻이다. 특수성으로 보면, 제각기 독특한 격이 있고 각이 져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요나와 공유하는 인성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요나처럼 행동할 수 있는 바탕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다른 사람 특히 다른 민족을 사랑하시는 것을 못 본다. 셋째, 이기적인 만큼 독선적이다. 그러면서도 우둔하다.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바보짓은 골라서 한다. 이것은 에니어그램의 관점에서 볼 때, 남들이 객관적으로 모두 보고 있는 것 즉, 격정을 자기 자신만이 못 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실’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아밋대는 바알에게 절하지 않은 칠천 명 중 한 사람이라고 전해내려 오는 말이 있다. 바로 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는 가드헤벨 출신이다. 가드헤벨은 예수 당시에는 갈릴리의 가나로 불린 곳으로 나사렛 서북쪽으로 십리 정도 떨어져 있다. ‘비둘기’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요나는 그의 선지 활동이 열왕기(하 14:25)에도 기록될 만큼 인정받던 경험이 풍부한 예언자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하시며 뜻을 말씀해 주신, 하나님이 믿어 주시는 종이었다.
‘가나’하면 예수께서 선교 활동 초기에 잔칫집에 가셨다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을 일으키신 곳이다. 후일에 유대인들이 기적을 구할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표징밖에는, 이 세대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서 중대한 발언을 하셨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과 같이, 인자도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땅 속에 있을 것이다.’(마태 12:39-40)
로빈슨 같은 학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가 가나에 있는 선지자 요나의 무덤에서 뭔가 큰 감명을 받고 자신의 선교와 사명에 대하여 깊은 뜻을 깨달았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요나는 엘리사가 수련생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하여금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은 다음 속히 도망하게 한 젊은이였다. 그는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토록 감수성이 예민하고 부드럽고 수줍으면서도 직관력이 높은 요나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소명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결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고 동의하지 못할 일이면, 비록 하나님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어길 수 있는 성격임을 드러낸다.
요나서는 예언서 가운데서 일종의 저항문학이다. 선민사상과 시온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로서는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신다는 뜻을 이해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고, 또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성향을 대변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이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시니까,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 곧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났다.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은 얼핏 봐도 독특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것을 기피하는 특성 때문에 외모부터 독특하다. 섬세하고 민감하고 개성이 강하다. 그만큼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하고 로맨틱하며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에 부딪히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동굴 심리가 작용하여 숨을 곳을 찾는다. 애들 말로 방에 콕 처박히는 ‘방콕’을 한다. 여러모로 요나는 이런 특징을 드러낸다. 어려서 양친 부모의 애정을 긍정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이다.
2. 제비 뽑힌 요나
예후가 임금이 된 뒤에도 거대한 제국 앗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쳤던 것을 잘 알고 있는 요나가 그 제국의 수도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 한 것은 동정을 살만한 일인지 모른다. 주변의 약소국을 못살게 구는 강대국의 횡포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욱이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관력이 남달리 높은 요나는 먼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성격이다. 더욱이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뜻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을 때, 근본적으로 자기 이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따라서 희망이 없다고 느끼면 쉽게 절망에 빠질 수 있는 성향을 드러낸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자신이 부적절하다고 느끼면, 자신에게 흠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움츠러든다. 4번 유형은 속상하거나 너무 긴장하면 무결주의에 빠진다. 주변 여건이나 조건들 때문에 좌절감을 쉽게 느끼는 만큼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비현실적인 기대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기필코 이루실 일이라면 이루시리라 하는 마음도 들 수 있다.
누구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직관력이 있는 요나에게 하나님의 낯을 피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생각이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시편 기자가 말하듯이 하나님을 피하여 어디로 간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도망치겠는가?(시139:7-10) 동쪽으로 수천 리 떨어진 니느웨로 가라니까 서쪽 끝 수천 리 떨어진 다시스 곧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한다. 그야말로 시편을 누구보다 잘 알 요나가 시편의 진실을 거꾸로 살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요나가 격정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이 요나도 격정에 사로잡힌 모습을 남들은 봐도 자신은 못 보는 것이다. 이쯤 되면 자신이 평소에 잘 알고 믿고 행하던 것을 몽땅 뒤집어서 거꾸로 산다.
동으로 갈 명령을 뒤집어서 서쪽으로 도망가려고 스페인으로 가는 배를 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다 위로 큰 바람을 보내시니, 바다에 태풍이 일어나서,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다.(욘1:4)’ ‘포세이돈 어드벤처’나 ‘타이타닉’을 본 사람들이 쉽게 연상할 장면이 연출된다.
배가 태풍에 밀려 부서지기 직전에 배에 탄 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저마다 저희 신들에게 부르짖고’ 배를 가볍게 하려고 별별 짓을 다한다. 그런데 ‘요나는 벌써부터 배 밑창으로 내려가 누워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욘1:5).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현실을 외면하며, 스스로 방종적인 심미주의자가 되어서 상황의 요구나 필요로부터 자신은 면제된 것처럼 환상에 빠져든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광경을 목도한 선장이 놀라서 ‘소리를 쳤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잠을 자고 있다니!’ 급기야 뱃사람들이 서둘러서 제비를 뽑기에 이른다.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내리는지’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결국 제비는 요나에게 떨어졌다. 요나는 ‘자기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고 이실직고하게 되었다.
3. 큰 물고기 뱃속의 요나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한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은 고통에 대하여 민감하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남달리 예민하게 고통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완전한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몸 여기저기가 불편한 곳이 대개는 있다. 그런데 4번 유형은 더욱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아픈 곳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웬만큼 건강이 안 좋으면, 또래들한테 ‘병주머니’란 소리를 듣는다. 좀 커서는 친구들이 ‘종합병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픈 곳이 많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4번 유형은 고통을 느끼며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두통을 앓는다.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하거나 육체적으로도 과로하거나 긴장이 높으면 편두통을 앓기 쉽다. 정신의학에서나 심리학에서도 스트레스는 불안과 공포와 우울증과 함께 사촌간이라 부를 만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아주 심하면 우울증에 빠진다. ‘빠진다’는 말을 쓰는 만큼 깊은 속으로 들어간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예수께서도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면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땅 속에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있던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렇듯 깊은 곳에 들어가 있는 것을 현대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의 술어로 말하자면 내면의 심층에 있는 것이나 무의식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을 시편(130:1) 기자는 말한다. ‘주님, 내가 깊은 물 속(구렁: 공동번역)에서 주님을 불렀습니다.’(표준새번역 개정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첫 대목도 이와 흡사하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 주님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님께서 내게 응답하셨습니다.’(욘 2:2).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나가 아직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상황인데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표현이다. 4번 유형이 평상심을 회복하며 소외감과 우울증으로부터 탈출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적 기질을 살린다. 그러면, 아직은 고난과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고통을 이상화시키거나 환상적으로 대하면서 승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요나의 기도는 4번 유형이 하나님과의 일치를 지향하며 회개할 때 정서적 균형과 침착성을 회복한 상태를 반영한다. 고통과 고난을 두려워하며 피하면서 스스로 면제받는 것처럼 환상 속에 빠져들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고난을 직시하며 그 속에 잠겨있는 깊은 뜻을 끌어올린다. 이 과정에서 4번 유형은 창조적인 힘을 발휘한다.
보통 사람들은 고난이 그치면, 그제서야 하나님께 감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남달리 격정에 사로잡히기도 잘 하지만, 또한 격정을 사로잡으며 거기서 놀라운 힘을 끌어내는 천재성을 지닌 4번 유형은 고난의 한가운데서 이미 감사와 찬양을 올리는 독특성을 보인다. 물고기 뱃속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쳐서 절박함을 느끼면서도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침착성을 드러내는 요나를 우리는 동시에 본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4번 유형이 상처를 잘 입고 또 상처에 민감하지만, 상처로부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며 남다른 능력을 드러내면 감동을 주는 특징을 우리는 요나에게서도 재발견한다.
4. 회개를 외치는 요나
누구나 죄를 지으면 마음에 그늘이 생기고, 양심에 가책을 받고, 움츠러들게 된다. 성서적으로 보나 교리적으로 보나 죄는 따지고 보면, 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격정에 사로잡힌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자아의 포로’라 말한다. 이는 곧 격정의 포로임을 뜻한다.
요나가 격정에 사로잡혔을 때는, 비록 그의 참된 인성 즉 본성이라 할 속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였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겉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숨고, 도망치며 불순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큰 물고기 뱃속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요나는 회개한다. 격정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서 격정을 사로잡고 특유한 덕목을 살리는 쪽으로 변환 또는 전환되는 것이 회개 conversion이다. 버전이 바뀐다는 말이다.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은 격정에 사로잡힐 때 자신도 모르게 방종이 증가하여 하나님이나 사람들로부터 후퇴하고 숨는 버릇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번 유형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이며,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때문에 더 이상 퇴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또 자신에게 스스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를 알 정도로 자신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이나 좌절을 경험할 때 회개하고 변화되면서 놀라운 통찰과 비전을 보며 일어날 힘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뜻을 재확인하는 요나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명령이 들려온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욘 3:2). 요나가 회개하여 건강해지면 자기 계시적인 사람으로 개성이 뚜렷해지며 직관력이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이런 상태에서 요나가 회개를 외친다. 통합된 건강한 4번 유형은 설득력이나 호소력이 클 뿐 아니라 감동적이다.
요나가 ‘그 성읍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욘 3:4). 감정의 균형이 잡히고 정서가 풍부하고 감동적인 4번 유형은 아무 말 안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을 움직일 만큼 직관력과 텔레파시가 강한 사람이다. 이런 요나가 회개를 선포하니까 니느웨의 임금으로부터 온 백성과 심지어 가축까지 회개하기에 이른다. 회개의 큰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회개를 선포한 결과로 ‘그들이 뉘우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욘 3:10). 요나는 이 일이 못마땅하여 화가 났다(욘 4:1). 요나가 다시 한 번 격정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토록 건강해졌던 사람도, 잠시 방심하다가는 또 다시 격정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서 전체를 통해서 ‘늘 깨어 있어라’ 하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주어진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도, 사도 바울도 늘 되풀이하여 말씀하셨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며 수련을 계속하며 정진하는 뜻도 실상은 따지고 보면, 이 한마디 말씀에 담겨 있다. ‘늘 깨어 있어라!’ 요나가 회개하고 변화하여 건강해졌어도, 4번 유형의 특유한 격정이 ‘시기’로 터져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라도 멈춤이 없다. 그래서 에니어그램은 ‘영속적 운동성’이라는 뜻을 언제나 명심하여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누구라도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다 넘어질까 염려하라’는 말씀도 실은 ‘늘 깨어 있어라’하는 말씀에 다름 아니다.
출처 : 공동체성서연구원 김영운 목사님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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