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3번 유형 : 야곱
1.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야곱
세계적인 비평가 노스롭 프라이는 성서를 ‘Great Code’라 이름을 붙여 책을 쓴 일이 있다. 그 뜻은 ‘위대한 경전’도 되고, ‘위대한 암호’도 된다. 이를테면 재미있는 말장난을 한 셈이다. 어쨌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서에는 풍부한 상징이 있다. 은유와 이미지와 비유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런 상징적 언어가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직설적 표현보다 더 리얼리티를 잘 드러낸다.
예를 들자면, 야곱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쌍둥이 형인 에서와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고 기록(창 25:22)되어 있는 것이나, 야곱이 나면서 ‘그의 손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어서,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였다’는 것 등이 앞으로 그 둘의 관계가 어떠할 것인가를 미리 내다보게 하는 면이 강하다.
또 한편으로 생각할 것이 성서는 위대한 구속사 드라마라는 점이다. 구원의 역사가 도도한 물결을 이루며 흐를 때,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이 대서사시로 이어지는가 하면, 믿음의 조상이란 사람들의 치부 또한 가차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성서는 위대한 역설이기도 하지만, 믿음의 조상들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통하여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만드는 힘도 대단히 강하다.
아마 에니어그램의 기초를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야곱의 이름을 떠올리면, 얼른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을 떠올릴 것이다. 3번 유형은 외모에서부터 성격의 특징까지 가장 눈에 잘 띄는 성향이 있다. 항상 ‘날 좀 보소’ 하는 신호를 무의식적이라 할 만큼 자동적으로 내보낸다. 이는 자기가 세운 목표나 뜻을 이루려는 의지가 강해서 그럴 뿐 아니라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기 확장 의지’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능률과 성공이 강박관념으로 작용하거나 함정이 되기도 한다. 목표 지향적이기 때문에 한번 마음먹으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성취해야 된다. 흔히 말하듯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밀어붙이기 식으로 나갈 때 소위 ‘드라이브’가 강하다고 한다.
3번 유형이 이토록 목표를 향하여 그야말로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리는 스타일이 될 때, 주변 사람의 이목이나 더욱이 관계 당사자의 사정 같은 것은 별로 고려의 대상이나 관심거리가 안 되기 쉽다.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나 스케줄도 자기중심적으로 짜여 지기 십상이다.
이런 심정이 될 때, 성공은 해야겠고 실패는 피해야겠다고 강력히 자기 암시를 하다보면, 3번 유형의 격정인 기만에 사로잡힌다. 자기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 남을 속이면서도 스스로는 정당화시키며 알리바이를 찾는다. 이는 남에게 변명을 하기 위해서만 아니라 자기를 달래면서 합리화시키려는 격정이 작용하는 것이다.
야곱의 이름이 지닌 뜻 자체가 형의 ‘발뒤꿈치를 잡다’라는 것이며, 동시에 ‘속이다’라는 것을 생각할 때 창세기 기자는 야곱이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이라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에니어그램의 체계에 비추어 보자면, 성격 유형은 만 여섯 살에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어떤 특징을 묘사하기 위하여 드라마틱하게 상징성을 동원하는 것을 동시에 생각한다. 어쨌든 야곱의 일대기는 창세기 절반에 걸쳐서 펼쳐지니까 3번 유형의 변화와 성숙을 추적해 볼 일이다.
2. 꿈꾸는 야곱
꿈꾸는 사람을 말하면 사람들은 요셉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야곱도 실은 기묘한 꿈을 꾸었다. 일생일대의 꿈이다. 성서는 숨김없이 야곱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드러내는데, 그러면서도 그가 꾼 희한한 꿈을 특별히 다룬다.
실은 모두가 속임수를 쓸 가능성이 있다.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서도, 유독 야곱만 속임수를 쓴 것은 아니다. 믿음의 조상들 모두 예외가 아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속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만 성서가 거룩한 경전이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숨김없이 싣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만큼 솔직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인생과 인성에 대한 리얼리티를 드러내고 있음을 뜻한다.
누구나 다 목표 달성에 집착하거나 특히 결과에 집착하다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그렇게 되면, 설령 속임수를 쓰게 되더라도 스스로 합리화시키면서 양심의 가책도 안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속임수를 쓴다는 사실을 못 느끼거나 굳이 안 느끼려고 애써 외면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목표 달성에만 집중하면 남의 눈에는 보이는 진실이 자기 눈에만 안 보이게 된다. 누구나 이런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에니어그램으로 보면, 3번 유형이 두드러지게 이런 면이 강하다.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탐내며 눈독을 들인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드디어 절호의 찬스가 찾아온 것이다. 눈에 불을 밝히고 찾는 사람이 아니면 기회가 와도 못 보기가 쉬운 법이다. 그러나 야곱처럼 목표 달성과 성공에 대하여 남달리 집념이 강한 3번 유형은 기회를 만들지언정, 제 발로 굴러들어 온 기회를 놓칠 일이 없다.
그렇게 얻은 기회를 잡아 멍청한 에서에게서 팥죽 한 그릇을 주고 그 어마어마한 장자의 상속권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 일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아야 형이 받을 복을 가로채는 일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그러자니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다. 어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야곱이 한 짓이다.
일차적인 목표를 달성한 야곱이 그 다음 단계에는 에서가 두려워졌다. 그래서 에서의 죽일 음모를 피하여 야곱이 달아난다. 형의 분노가 풀릴 시간도 벌 겸, 부모의 권유를 따라 아내감을 얻으러 밧단아람으로 길을 떠난 야곱이 하란으로 가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꿈을 꾸었다.’(창 28:11-12)
꿈속에 그가 보니 하늘에까지 닿은 사다리가 보였다. 천사들이 그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보였다. 하나님께서 그 사다리가 닿은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창 28:13-14)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의 생각이나 이해심을 넘어선다. 야곱에게는 은총이 주어진 것이다. 꿈이 계시의 경로가 됨을 동시에 확인한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꿈을 통하여 받았다. 꿈에서 깨어난 야곱이 어떻게 하였는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곳을 벧엘이라 이름하고 하나님께 섬김과 십일조를 서원하였다. 이 장면 하나만 놓고 보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야곱의 인성 즉 성격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숙하는가를 지켜보는 눈에 비친 모습은 우리에게 두 번 생각하게 만든다.
3. 장엄한 패배
나면서부터 경쟁적인 사람으로 생각되는 야곱은 이름부터가 ‘발뒤꿈치를 잡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남이 앞서 가는 것을 못 보는 사람은 ‘딴죽을 걸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그런데 사람의 성격을 말하자면, 사실은 타고나는 유전 인자보다도 환경 인자가 더 크게 작용한다.
에니어그램의 체계에 입각하여 말하면, 만 세 살부터 성격이 형성되면서 만 여섯 살에 그 유형이 확정된다. 그러니까 야곱이 경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시킬 때는 거기에 부합되는 에피소드가 연결된다. 탄생의 이야기도 그런 연결고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야곱은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되어서, 주로 집에서 살았다’(창 25:27)고 기록되어 있음을 주목한다.
현실 속에서 관찰하며 얻는 상식으로 보더라도, 어릴 적에 몸이 튼튼하고 밖에서 잘 뛰놀며 또래들 가운데서 힘자랑이나 하는 어린이는 그만큼 머리를 써야 할 필요를 덜 느낀다. 반면에 몸이 작거나 약한 어린이는 또래들 가운데서 자기 위치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생각을 그만큼 더 하고 지혜를 키우기 마련이다.
나면서부터 털투성이어서 에서라는 이름을 붙인 것처럼, 그가 자라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서 들에서 살았다’(창 25:27). 이와 대조적으로 ‘야곱은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창 25:28). 사람의 성격은 워낙 복합적이기 때문에 웬만한 속성이나 성향은 공유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성격 유형이 확정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경험이다.
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유아기 기원은 부모가 어떻게 사랑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어린 자녀가 어떻게 부모의 사랑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경험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야곱은 3번 유형으로 자란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어머니와 적극적인 관계로 자란 사람이 3번 유형이다.
다 자란 뒤에도 어머니와 공모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이며 축복 기도를 받는 것을 보아도 야곱이 어머니와 적극적이며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온 것을 짐작케 한다. 이미 지적한 3번 유형인 야곱의 특성이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과 함께 살면서 벌이는 성공 드라마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라반의 집에서 재산과 두 아내와 자녀를 비롯하여 얻을 것을 다 얻은 야곱은 이제 성공한 사람으로서 귀향길에 오른다. ‘야곱이 길을 떠나서 가는데,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 앞에 나타났다.’(창 32:1) 이토록 천사들의 환영과 아울러 도움을 받은 야곱이지만 에서를 만날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그 때에 역시 목표를 앞에 놓고 빠른 두뇌 회전과 용의주도함이 3번 유형의 특징으로 발휘된다.
아직도 결과에 집착하며 속임수를 쓰는 야곱이 결국은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만나서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였다. 엉덩이뼈를 다칠 만큼 목숨을 건 씨름이었다. 이것은 에니어그램의 체계로 이해하자면, 영성의 세계에서, 내면의 세계에서 겉사람과 속사람 사이에 벌인 ‘성전’이었다. 야곱이 경험한 장엄한 패배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장엄한 패배를 통하여 사기꾼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게 하신다. 평생을 경쟁과 기만의 격정에 사로잡혀 살기를 잘하던 야곱이 ‘불경쟁 선언’을 하는 이스라엘이 되게 하신다.
4. 이스라엘이 된 야곱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더불어 씨름한 경험(창 32:28, 35:10) 이후로 이스라엘의 출현은 개인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민족을 의인화한, 새로운 백성의 출현을 의미한다. 오늘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영적 이스라엘의 출현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이스라엘은 ‘불경쟁 선언’의 큰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창 32:28) 그러므로 다시는 사람과 더불어 겨루지 않는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본다. 에니어그램 성격 유형 3번은 평균 상태에서 늘 경쟁심이 강하고, 남과 경쟁하며 지위를 추구하며 이미지 투사와 관리에 꽤나 신경을 쓴다.
야곱이 얍복 나루터에서 장엄한 패배를 경험하고 새 사람이 되기 이전의 모습이 주로 그러하였을 뿐 아니라 한층 더 스트레스를 받고 목표와 결과에 집착하며 살던 때에는 형도 속이고, 어머니와 공모하여 아버지도 속이고, 자기 형성과 성취의 바탕이 된 외삼촌도 속였다. 그의 목적과 목표에 대한 집착 앞에서는 누구라도 못 속일 사람이 없었다. 기회주의와 이중성이 극히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와 더불어 씨름하는 사건은, 야곱이 자기의 거짓 인성을 깨닫고 겉사람의 습관적이며 기계적인 속성으로서의 기만의 ‘환도뼈(엉덩이뼈)’가 부러지는 사건이었다. 3번 유형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결단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신실의 덕목을 갖추게 된다.
온전함의 영성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이 투명의 영성과 초연함의 영성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특히 3번 유형이 회개와 변화를 거치며 드러내는 덕목은 모두에게 탁월한 모범이 된다. 그것은 영성 수련의 전통으로 이어오는 가르침을 훌륭하게 대변한다. 즉, ‘결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하라’ 하는 것이다. 동방의 지혜로 ‘진인사 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을 재확인하게 된다.
균형 잡힌 3번 유형이 6번 유형을 향해 통합의 방향으로 갈 때, 이스라엘이 된 야곱이 드러내는 것처럼 비로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견실하며 헌신적인 사람이 된다. 자신을 더 깊이 발전시키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경쟁심이란 무기를 내려놓은 무장해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지원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스라엘이 된 야곱이 마침내 형 에서와 더불어 화해하는 모습(창 33장)은 그 뒤로 끊임없이 이스라엘이 내적 지향성을 강화시키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스스로 속사람이 진정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수행하는 여생의 과정을 미리 보여 주듯 한다.
이스라엘이 된 야곱이 열두 지파를 이룰 아들들에게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면서 예언과 축복을 남기는 장면은 신실한 사람의 예지와 확신을 엿보게 하는 장엄한 모습이다. ‘그는 아들 하나하나에게 알맞게 축복하였다’(창 49:28)는 기록을 보면서, 에서를 속이던 것도, 요셉을 편애하던 것도 다 뛰어넘은 신실한 사람이 마지막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로 보여주는 진정한 사람의 뛰어난 모범을 다시 확인한다.
격정에 사로잡히던 사람이 변화하여 격정을 사로잡게 될 때, 거기에서 나오는 최상의 에너지가 비전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최선을 다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는 신실이 3번 유형의 아름다운 덕목이 되는 것을 이스라엘에게서 찾는다.
출처 : 공동체성서연구원 김영운 목사님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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