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존 웨슬리 회심 277주년 기념 부흥성회 김흥규 목사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나효선 2015. 6. 2. 17:30

존 웨슬리 회심 277주년 기념 부흥성회 김흥규 목사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도봉지방 선교부 주최

‘존 웨슬리 회심 277주년 기념 도봉지방 연합 부흥성회’가

도봉감리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주제 :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일시 :  2015년 5월 10일(주일 저녁) ~ 13일(수요일 저녁)

          새벽 5시, 낮 10시 30분, 저녁 7시 30분

강사 : 김흥규 목사(중부연회 인천 내리교회)

 

          

          

찬양인도 : 도봉교회 찬양단

   

          

특별찬양 : 도봉지방 여선교회 찬양대

           

                  

설교 : 김흥규 목사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6:19-31)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존 웨슬리 목사는 1738년 5월 24일 밤 8시 45분 영국 런던의 올더스게잇이라는 거리에서 누군가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데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데 성령의 세례는 한 번만 받지만

성령 충만은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웨슬리 목사는 성령 충만을 받아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가고 성령 충만을 받으니 영국 성공회 신부였지만 교회 안에서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광산, 공동묘지 등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야외 설교를 해서 감리교 운동이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1. 선행 은총

우주적 은혜, 필연적인 은혜, 불가항력적 은혜는 누구에게나 흘러들어옵니다.

내 공로 없이 구원 받습니다.

미리 우리에게 흘러들어온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

내가 진심으로 회개한 순간에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가 나에게 덮어씌워져서(impartation)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게 됩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3. 성결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는 죄인이면서 의인이고, 의인이면서 죄인입니다.

시공간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에 의인이어도 죄인입니다.

‘이신득의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

너무 믿음으로 얻는 의를 강조하다보니 성화를 약화시킵니다.

존 웨슬리는 ‘믿음으로서의 의’와 ‘성화로서의 의’를 분별했습니다.

성결케 하는 은혜로 성화의 과정을 밟아나가야 합니다.

성화(sanctification)는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됩니다.

성결케 하는 은혜는 하나님과 동참케 합니다.

사람의 할 도리는 다 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결케 되어야 한다’ 이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메가 처치(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 Metropolitan Tabernacle 교회)의 찰스 스펄전 목사가 다른 곳에 갈 일이 있어서 외부 목사가 와서 설교하게 되었는데 뒤에 있던 수백 명이 떠나가려고 했습니다. 외부 목사가 지혜롭게 “스펄전 목사님을 섬기기 위해 교회에 오셨으면 나가도 되지만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오셨으면 예배드리기 바랍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예수님이 되셔야 합니다.

  

존 웨슬리 목사는 88세까지 살았는데 남들이 이룰 수 없는 일들을 많이 이루어 내신 분입니다. 실업자들까지 생각하여 자신의 장례식 때 실업자 6명을 고용하여 관을 운반하게 해서 1파운드씩 주라 하였습니다.

웨슬리 목사의 유해는 웨슬리 채플 뒤에 다른 감리교회 목사들과 똑같이 묻혔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남을 배려하고, 선행을 끼치는 감리교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 땅에서 호의호식 했던 사람이 지옥불로 떨어지고 거지였던 나사로는 천국으로 갔다는 비유입니다.

부자는 이름이 없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중 실명이 거론된 사람은 나사로뿐입니다.

막연한 추상적인 인물이 아니고 구체적인 실존입니다.

나사로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엘리에셀’입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헬라어로는 나사로입니다.

엘리에셀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나사로’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에 내리교회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수준을 보려면 의식주를 보면 됩니다.

부자는 자색 옷을 입었습니다. 자색 옷은 귀족, 왕족들이 입던 비싼 옷입니다.

1만2천 마리의 달팽이를 잡아야지만 겨우 1.4g의 보라색 염료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서민은 속옷을 안 입는데 부자는 세마포로 된 속옷을 입었습니다.

서민은 울타리 없는 집에서 살았는데 부자는 문이 있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나사로는 간신히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는 겉옷만 입었습니다.

나사로는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해 개들이 그의 헌데를 핥을 정도였습니다.

20-26절은 세상을 떠나간 후의 이야기입니다.

때가 되면 언젠가는 죽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먼저 죽어 아무데나 시체를 유기했는데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부자는 최고급 명당자리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음부, 하데스 불이 확 일어나는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불길 속에 있으니 목이 얼마나 타겠습니까? 지옥에 있는 부자가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자기에게 보내서 ‘물을 적시게 해 주십시오’ 라고 아브라함에게 간청합니다. 물 한 사발, 물 한 양동이가 아니라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염치가 없다는 것이죠.

           

부자의 절박한 부탁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간청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를 밝힙니다.

1. 부자는 살아있을 때 온갖 호사를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다.(25절)

26절이 중요합니다.

2.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갈 수 없다.

심연의 간격으로 막혀 있다. 구렁텅이는 살아있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건널 수 없는 심연은 이미 지상에 있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랐습니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죽은 후에 정반대 결과로 돌아온 것입니다.

부자가 나사로를 업신여기거나 학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무관심’했습니다.

자기 대문 밖에 거지 나사로가 있었다는 것에 ‘무관심’했습니다.

 

인생에 두 가지

1. 장벽을 쌓는 사람

2. 다리를 놓는 사람

우리는 얼마나 구렁텅이를 만들고 있습니까?

학력, 재력,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서 오갈수도 없고, 대화도 안 되고, 서로 교통할 수 없다면

죽은 다음에 부메랑이 되어 반대의 결과로 돌아오게 됩니다.

 

27-31절 예수님의 비유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악센트는 후반부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운명의 역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살아있는 다섯 명의 형제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사랑의 이중 계명만 실천하면 지옥에 갈 일이 없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 다섯 형제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이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라고 구합니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이 비유의 주인공이 누구일까요?

부자의 다섯 명 형제들입니다.

 

목사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학식 있는 자와 학식 없는 자, 경제력이 있는 자와 경제력이 없는 자가

서로 교통해야 합니다.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이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평안해야 합니다.

피부가 달라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예수 정신의 바른 실천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자는 자기가 죽은 다음에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에 살고 있는 다섯 명의 형제는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고 끝까지 찾으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여덟 번 식사초대를 받으셨는데 다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인 세리, 죄인들에게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에게 필요합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고, 남을 격려하고, 서로 북돋워주는 사람이 됩시다.

부자의 다섯 명의 형제 같이 구원 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오늘도 혼자 오셨습니까?’

‘오늘도 혼자 가시렵니까?’

예배당을 떠날 때는 항상 주님과 동행하기를 축원합니다.

 

 

가슴마다 파도친다

 

1.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의 젊은이

눈동자에 어리운다 우리들의 푸른 꿈

주의 말씀 주의 행함 길과 진리 되시니

우리 평생 한결같이 주만 따라 살리라

 

2.하늘같이 높푸르자 우리들의 젊은이

바다같이 넓고 깊자 우리들의 사랑이

우리들은 주의 자녀 부름 받은 한 형제

몸과 마음 다 바쳐서 주 뜻대로 살리라

 

3.화산같이 타오르자 우리들의 젊은이

폭포같이 줄기차자 우리들의 붉은 피

할 일 많은 이 나라에 우리 태어났으니

복음 들고 앞장서서 충성되게 일하자

 

4.대지같이 광활하자 우리들의 젊은이

산과 같이 우람하자 우리들의 기상이

십자가를 높이 들고 노래하며 나가자

하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질 때까지

 

       

네팔 지진 복구를 위한 헌금

            

              

선교부 총무 : 문창수 목사(열매교회)

                 

            

폐회선언 : 김영복 감리사(갈릴리교회)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

이제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