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산 정약용 유적지 · 실학박물관

나효선 2011. 12. 21. 00:40

 

전철 유람 83

다산 정약용 유적지 · 실학박물관

 

 

다산 정약용 유적지에 가려고 중앙선 팔당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창 밖으로

큰고니(백조)가 보여서 팔당댐에서 내렸다.

저번보다는 백조의 수가 조금 줄었다.

 

 

가마우지

민물가마우지는 뺨이 하얗고 몸길이가 100cm 정도까지 자란다.

 

 

 

큰고니(백조) 천연기념물 제201호

 

 

 

 

인간백조가 온 것을 알아본 백조!

 

 

청둥오리들과 백조

 

 

능내역

 

 

다시 버스를 타고 능내역에서 내려서 다산 정약용 유적지로 걸어갔다.

 

 

고개를 다 올라가서 뒤돌아본 풍경

 

 

앞으로 가야할 고개 아래의 풍경. 멀리 한강이 보인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다산은 1762년(임오년 영조38년) 음력 6월 16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아버지 나주정씨(羅州丁氏) 재원(載遠) 과 해남윤씨(海南尹氏)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다산은 23세 때 (1783년)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여러 차례의 시험을 통해 뛰어난 재능과 학문으로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았다.

 

 

다산 정약용 유적지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선생의 유적지

다산 정약용선생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조선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결국은 오랜 유배생활 끝에 고향인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배생활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많은 저서를 남겨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로 평가 받고 있다. 유적지 내에는 그의 생가인 여유당(與猶堂)과 선생의 묘, 다산문화관과 다산기념관이 있다. 다산문화관에는 많은 저서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으며, 다산기념관에는 수원성 축조 과정에 쓰였던 거중기, 녹로 그리고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 다산초당의 축소 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왼쪽 : 다산문화관                  

오른쪽 작품명은 ‘꺼지지 않는 불’ : 작가 박철우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저술한 약 500여권에 이르는 서책과 그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는 실학사상의 정신을 조형물로 형상화

 

목민심서(牧民心書)

 

 

실학(實學)에 뜻을 두거라

 

 

여유당(與猶堂)

 

 

 

당호(堂號)인 여유(與猶)는 선생이 1800년(정조 24년) 봄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은 것.

≪ 여유당기(與猶堂記)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智謀)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 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 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담겨 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한다.(중략)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니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老子)의 말에 “여(與) 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 여!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거라”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 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들어와 뼈를 깍는듯 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중략) ≫

 

 

앞쪽 : 다산 정약용 생가 뒤쪽 : 실학박물관

 

 

과학사상(科學思想)

 

 

교육사상(敎育思想)

 

 

시(詩)는 나라를 걱정해야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다산기념관(茶山記念館)

 

 

거중기

1792년(정조 16) 다산 정약용이 서양의 기술과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창의적으로 만든 기구.

높이 4.4m, 너비 1.7m

거중기를 이용하여 노동자 두 사람이 약 10톤 또는 그 이상의 무거운 자재를 높은 곳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 축조에 사용하였으며

다산선생의 과학사상과 앞선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전시모형은 1:1로 제작되었음)

 

 

홍이포(紅夷砲)

실학박물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9년에 중국 북경에서 복제해온 것

 

 

실학박물관

≪ 경기도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다산 유적지 바로 옆 4천75㎡ 부지에 18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1층, 연면적 2천38㎡ 규모로 건립한 실학박물관은 상설전시실 3곳과 기획전시실, 80석 규모의 강당, 부대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실에는 실학의 형성 및 전개 과정을 볼 수 있는 각종 자료와 함께 실학과 관련된 천문관측 기구나 책력, 지도류 등이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이 별자리 찾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돼 있다. ≫

 

 

유금의 아스트로라브(Astrolabe 1787년 정조 11)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아스트로라브로는 유일한 유물이다.

동양의 혼천의에 해당하는 서양의 천문관측기구

 

 

혼천의

태양계의 행성 등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기구.

 

 

천구의(天球儀)

하늘의 별을 별자리로 묶어서 둥근 구면에 그려 놓은 기기.

하루 밤의 시간과 1년의 계절을 측정하는 기기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

정상기(1678~1752)가 만든 대형 조선전도.

대동여지도보다 100년 앞서 만들어져 조선전기 지도에서 조선후기의 정확한 지도로 발전하는데

전환점을 이루었다. 이 지도의 우수한 점은 ‘백리척’(약 1:50만)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토를 원형에 가깝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

 

 

대동여지도 목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인쇄하기 위해 제작했던 목판 중 일부

 

 

 

 

1708년 조선, 세계지도를 그리다.

 

1708년 회화식 <곤여만국전도>

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1645년 선교사 아담 샬로부터 서양식의 세계지도를 받아

조선에 들여왔다. 그 세계지도가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였다.

조선은 이를 바탕으로 1708년(숙종 34) 8폭 병풍의 세계지도를 제작하였다

 

 

일본에 전래된 서양 지구의(1700년)

 

 

하백원의 만국전도

실학자가 그린 서양식 세계지도로 유일한 것

 

 

알레니의 만국전도

 

 

최한기의 지구전후도(1834년)

 

 

만국총도(萬國總圖) · 각국 인물도(各國人物圖)

1645년 시모노세키 조후박물관

 

 

각국 인물도(各國人物圖)

총 40개 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소인국, 거인국, 식인국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17세기 중반 일본인들의 세계에 대한 정보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데비트의 세계지도(18세기)

 

 

동아시아 세계지도 연표

 

 

수레(Wagon)

 

 

마재마을 답사길

 

 

마재(馬峴)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곳에 있는 마을이다.

 

초천1에서 한강을 보니 두물머리에서 보이던 풍경이 여기서도 보인다.

왼쪽이 족자도 일부. 신양수대교가 보인다.

 

 

족자도 저 너머에 두물머리가 있다.

 

 

뽈논병아리

몸길이는 48cm로 몸 빛깔은 회색이고 여름에는 머리 옆이 뚜렷한 밤색, 귀깃은 검다. 겨울에는 머리 위가 검은색이고 목은 흰색이 된다.

 

 

동화 속에서 나온 집

‘저녁바람이 부드럽게’에서 굴림만두떡국을 먹었다.

 

 

56번 버스를 타고 운길산역으로 가서 전철을 탔다.

 

백조도 다시 만나고, 볼거리도 많고, 먹거리도 좋고~

행복한 날! 12월 12일.

 

여유(與猶)

내가 사회생활을 할 때는 여유(與猶)에 유념했다.

내가 잘 해도 남에 의해 어려움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에~

 

명퇴를 한 후에는 여유(餘裕)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얽매일 것이 없기 때문에 ‘나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

 

요즘은 다시 여유(與猶)에 유념한다.

내 안의 나를 조심한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디도서 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