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남한산성도립공원

나효선 2010. 10. 15. 23:50

전철 유람41

남한산성도립공원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12년(AD672)에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성으로 축성하고 주장성(晝長城) 또는 일장성(日長城)이라 하였다.

성벽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비해 성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균고도 350m 내외의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루고 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조선왕조 시대에는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 2호선 잠실역 ⇒ 8호선 산성역

산성역에서 9번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로타리에서 내렸다.

 

산성종로(로타리) - 북문(전승문) - 서문(우익문) - 수어장대 - 남문(지화문)

 

북문(전승문)

 

 

성벽 바깥쪽

 

노송지대

 

 

 

서문(우익문)

 

까마귀들이 한바탕 날아오른 뒤에는 까치들이 날아 오르내렸다.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병암남성신수비(屛巖南城新修碑)

건축실명제. 금석문 : 정조 3년(1779) 남한산성 증·개축

 

수어장대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

인조 2년(1624) 단층으로 지은 것인데

영조 27년(1751)에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

 

 

매바위

 

제6암문(서암문)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 일종의 비밀 통로.

인조 15년(1637)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병을 크게 물리친 곳

 

 

 

남문(지화문)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지화문이라 칭하였다.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을 버스로 올라가는 길이 굽이굽이 고갯길이다.

옛날의 ‘얼룩 고무신’ 노래가 생각났다.

 

얼룩 고무신

                                                     -둘 다섯 -

굽이굽이 고갯길을 다 지나서

돌다리를 쉬지 않고 다 지나서

행여나 잠들었을 돌이 생각에

눈에 뵈는 산들이 멀기만 한데

구불구불 비탈길을 다 지나서

소나기를 맞으면서 다 지나서

개구리 울음소리 돌이 생각에

품속에 고무신을 다시 보았네

어허 허 허이 우리 돌이

우리 돌이 얼룩 고무신

어허 허 허이 우리 돌이

우리 돌이 얼룩 고무신

 

노래와 구색을 맞추어주느라고

집 가까이 와서 전철역에 내리니 소나기가 왔다.

일기예보는 ‘맑음’이었는데…

복장을 잘 갖춰서 청바지만 조금 젖었다.

감기가 아직 덜 나았지만 일정에 맞추다보니

가시거리도 좋지 않은 날에 나갔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한산성은 전철유람으로 처음 간 길이지만

두 번째이다.

초등학교 동창들을 봄에 만나느라 찾아본 앨범에

‘수어장대’를 배경으로 찍은 학급 단체 사진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한산성에 간 것이다.

내 기억에는 영화배우와 함께 사진을 찍은 기억은 어렴풋하게 난다.

 

초행길은 설렘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긴장감이 더 크다.

그러나 새로운 곳을 개척해서 새 카메라로

새로운 풍경을 담아서 흐뭇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시편 126편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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