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 속회 공과 19
웨슬리 속회 공과
김원경 목사 편
제 19 과
애통하는 자 (1)
성경 : 마태복음 5:4
(요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러나 우리 속에 남아있는 작은 죄에 대한 느낌은 날이 갈수록 점점 심화되어, 우리가 은혜 아래서 성장할수록 우리 마음의 절망적인 사악성도 더욱 심각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사랑이 증진할수록,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더욱 멀어지고 원수가 되어, 우리가 의와 참된 거룩한 성품으로 완전히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의 천국에 대하여 초보의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그는 평온무사할 때에는 “나는 요동치 아니하리라. 주님, 당신께서 나의 입각지(立脚地)를 견고케 해 주셨나이다.” 라고 자신 있는 고백을 합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그는 죄가 완전히 정복된 것으로 여겨져 죄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고 믿으며, 시험도 멀리 떠나 감히 접근하지 못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는 희락과 사랑의 수레 위에 드높이 앉아 있는 느낌을 가지며, 독수리의 날개를 타고 허공을 나르는 것 같은 기쁨에 삽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승리의 상태가 오래 가지 못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그러나 이 약속이 오직 어떤 세속적인 이유 때문에 애통하는 이들 - 단지 어떤 세속적인 곤란이나 낙담 등, 예컨대 명예의 실추나 친구의 상실 또는 재산의 손상 때문에 애통하는 이들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속적인 악을 두려워해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 혹은 ‘마음을 병들게 하는’(잠 13;12)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걱정근심이나 욕망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예수님의 약속이 거의 해당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주님께로서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생각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그림자 같이 다니며 헛된 일에 분요한”(시 39:6) 사람이며, 주님이 “너희가 내손에서 얻은 것은 이것이다.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사 50:11)고 말씀하신대로 그런 운명에 처할 것입니다.
2. 주님이 말씀하는 “애통”은 우리에게 선한 일과, 사유의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 하심으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게 하심으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게 하신 하나님을 갈망하여 가지는 애통(안타까움)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그의 얼굴을 숨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두운 구름으로 가리어져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서 떠난 줄 믿었던 유혹과 죄는 다시 닥쳐오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영혼이 우리 속에서 불안하고 중압감에 고민함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큰 원수는 이러한 기회를 포착하여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그대의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그대가 말하던 그 축복 즉 천국은 어디 있는가? 그대가 믿는 그 하나님이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했다지! 하나님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다만 그대의 환상이요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그대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면 그대는 왜 그 모양인가? 용서 받은 죄인이 그렇게도 거룩하지 못해?”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 호소하는 대신 우리보다 지혜로운 그 유혹자와 상의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과 영혼의 중압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다시 광명을 비추시어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모든 회의를 제거해 주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만큼, 앞에 닥쳐 올 시험과 난관을 예상하면서, 무엇보다 머리 숙였던 내심의 죄가 되살아나 우리를 넘어뜨리려 달려들 때 우리는 이렇게 부르짖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공포에 떨고 있네
내 삶의 마지막 올이
다 짜여졌을 때
이 바닷가에서 숨을 거둘까 봐.
신앙의 난파를 당하여 나의 마지막 상태가 처음보다도 더 비참하여 이런 비탄의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서러운 운명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생명의 떡이 다 진한 이후,
나는 그대로 지옥에 굴러 떨어질까 두려울 뿐일세!
3. 이러한 괴로움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鍊達)한 자에게는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히 12:11)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찾아오심이 더디다고 방심하고 탈선적 행위를 하거나, 세상의 환락에 도취하지 말고, 세상 모든 죄악의 기쁨과 어리석음과 허영과 유흥과, 우리 영혼을 마비시키는 향락 생활을 단연코 버리십시오.
이런 애통에는 반드시 주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를 알기에만 전심하고 세상의 다른 위로를 거절한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속에 새삼 부각되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다시 받으심이 되어 다시는 철회되지 않으리라는 확증을 얻어, 성령의 참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확고부동의 믿음의 확증은 모든 회의와 공포를 추방하고, 영원한 기업의 소망과 은혜로 말미암는 참된 위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한번 빛을 비췸을 받고 … 성령에 참여한”(히 6:4) 사람들이 다시 타락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그들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러 있는 만큼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습니까? …… 그밖에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5-39) 라는 말씀이 충분히 대답이 되는 것입니다.
[연습문제]
1.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애통”에 관하여 다음의 사실들을 얘기해 봅시다.
1) 죄와 유혹
2)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완전히 새로워져야 할 필요성
3)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우심
4) 사탄의 유혹
5) 연달
6) 성령의 참된 위로 (믿음의 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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