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 속회 공과 18
웨슬리 속회 공과
김원경 목사 편
제 18 과
심령 천국
성경 : 마태복음 5:3
(요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요컨대 “심령의 가난”은 우리 앞에 놓인 경주장을 달리는 데 있어서의 제1보인 만큼, 이것은 우리가 안과 밖의 죄를 의식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무력을 느끼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마음을 “겸손의 덕”이라고 터무니없이 생각하여, 우리 자신이 저주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아는 것을 자랑하도록 가르치나, 우리 주님에게 있어서는 이 마음은 다만 나 자신의 부족과 죄와 정죄 받은 인간임과 가장 불행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1. 사도 바울이 죄인을 하나님에게 인도하기 위하여 한 그의 말은 예수님의 사상을 뒷받침해 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를 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롬 1;18) 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이교도에 대한 고발적인 말로써 그들의 불의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사실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도 이교도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이교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고상한 겸손의 덕에 이르도록 하려고 함이 아니라 “인간들의 변명하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의 심판에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롬 3:19)
바울은 계속해서 그들은 다 함께 정죄를 받은 인간들일뿐 아니라 자력(自力)으로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는 무능력자임을 나타내려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요컨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하나도 없는”(롬 3:20)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는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 없이,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라고 바울은 천명했습니다.
이 모든 표현은 결국 한 목표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로 그들의 교만을 꺾고, 티끌에까지 낮추며, 자기들이 겸손의 덕을 가졌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게 함과 동시에, 자신들은 전적인 죄인으로서 정죄를 받은 인간임과 무력자임을 자각케 하여, 자신들의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리의 의가 되시는 강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달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2. 죄인이여, 깰지어다! 그대 자신을 알라! 그대는 죄악 중에 지어졌으며, 모친이 죄 중에서 그대를 잉태하였음을 알고 느낄지어다. 그리고 그대가 선 · 악을 분별할 수 있기 전부터 죄 위에 죄를 쌓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지어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능(大能)의 손아래 고개를 숙이고 영원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모든 망상을 던져버리고, 포기하며, 몸서리치도록 미워하시오!
친히 나무에 달려 그의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그의 전능하신 성령으로 새로 남을 얻을 것을 당신의 모든 소망이 되게 하시오. 그러면 그 때에 비로소 그대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고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3. 이것이 곧 우리 속에 있는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로서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인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인간 영혼 속에 깃들이는 하나님의 생명”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마음”이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로워지고 마음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그 근원을 하나님께 둔 사랑의 나라로써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사랑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 평강은 하나님의 평강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으심이 된다는 확신 아래 우리 심령이 누리는 즐거운 평정을 뜻합니다. 이러한 평정에는 하늘 아버지를 거스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일체의 두려움은 없습니다.
이러한 내적(內的) 천국은 성령 안에서의 기쁨도 의미합니다. 우리의 지난날의 지은 죄를 사유(赦宥)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돌리심으로 우리 마음에 ‘예수 안에 있는 속량(贖良)’을 인치시고, 그 날에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리실 면류관을 우리가 받을 것을 보증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늘나라라고도 하는 것은 우리 심령 속에 하늘이 이미 열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솟아나는 기쁨의 강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4.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심령의 가난”을 받아서 자신이 잃어진 상태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에 의하여 하늘나라를 받을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어린 양의 피를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천국의 바로 옆에 서 있음을 아십시오.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당신은 의와 평강과 기쁨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전적으로 죄인입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은 전적으로 거룩하지 못한 존재입니까? “아버지 앞에서의 우리의 대언자인,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당신은 조그만 죄도 속량할 수 없는 존재라고 보십니까? 그리스도는 당신의 모든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십니다.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모든 죄는 도말됩니다. 그대가 만일 영육간에 전적으로 부정한 존재입니까? 여기에 그대의 모든 죄와 부정을 씻어 줄 샘이 있습니다. 일어나, 그대의 모든 죄를 씻어버리십시오.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더디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감히 믿으십시오! 지금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다음과 같이 부르짖으십시오!
당신의 피의 외침을 듣고
예, 나는 항복합니다.
마침내, 나는 항복하나이다.
내 모든 죄와 함께,
나 자신을 나를 속죄하시는
하나님께 던지나이다.
5. 그 때에 그대는 주님을 배워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겸손인 것이니, 이러한 겸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화해가 이룩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데서부터 흘러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심령의 가난”은 죄책감과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는 마음이 사라질 때 비로소 생깁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우리가 가진 모든 선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하나님이 분초마다 물 주시어 가꾸심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 절대로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한 편, 모든 칭예는 하나님께만 귀속됨을 알아 인간의 칭예를 거부하는 태도와 통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동시에 하나님이 이미 용서해 주신 지난날의 죄과나, 또는 우리가 정죄 받을 만한 큰 죄과는 아닐지라도,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지는 수치감도 포함됩니다.
[연습문제]
1. “심령의 가난”은?
(1) 사람들로 그들의 교만을 꺾고 티끌에까지 낮추며, 자기들이 □□의 덕을 가졌다는 생각을 버리게 함과 동시에
(2) 자신들은 전적인 죄인으로서 □□를 받은 인간임과 □□□임을 자각케 하여
(3) 자신들의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리의 □가 되시는 강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달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2.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늘나라를 설명해 보시오.(롬 14:17)
(1) 의
(2) 평강
(3) 희락
3. 참으로, 진실 된 그리스도인의 겸손 곧 “심령의 가난”은 □□□과 하나님의 □□를 느끼는 마음이 사라질 때 생깁니다.
4. 그리스도인의 “심령의 가난”은 어떠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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