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 속회 공과 14
웨슬리 속회 공과
김원경 목사 편
제 14 과
우리 자신의 영의 증거 (1)
성경 : 고린도후서 1:12절
(요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 이것이 신앙과 사랑에 머물러 있는 한,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모든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는다”(요 8:12) 그리고 빛을 지닌 동안 그는 거기서 기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 들였으니”(골 2:6), 그는 주 안에서 걷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행하는 동안 사도 바울의 권고가 영혼 속에서 날마다 들려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시오.”(빌 4:4) 그러나, 우리가 집을 모래 위에 짓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이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본질과 근거인가를 보이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그것을 여기 사도 바울에 의하여 기술된 바와 같이 양심(良心)의 증거에서 생겨나는 영의 그 행복된 평화, 그 고요한 만족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행 24:16)을 가지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바른 기초를 놓도록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도 이 기초 이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고전 3:11) 뿐만 아니라, 유념해야 할 것은, 산 믿음에 의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우는 이는 아무도 없기에, ‘내가 지금 몸으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가운데 사는 것’(갈 2:20) 즉, 나의 마음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 의해 살고 있다는 것을 그가 분명히 입증하기까지는, 아무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가 아닙니다.
믿음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그 증거, 확신, 실증입니다. 믿음에 의해 우리의 이해력의 눈이 열리고 그 속에 신의 빛이 부어지며,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탁월함과 순수함, 율법과 및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모든 계명의 높이, 깊이, 길이, 넓이를 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저 축복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질 수” 있는 것도 믿음 만에 의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다음의 은혜로운 약속이 성취되는 것은 믿음에 의해서입니다. “내 율법을 그들의 생각에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새길 것이다”(히 8:10) 여기에서 그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율법과의 온전한 일치가 만들어지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고후 10:5)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활은 물론이요 그 마음이 하나님의 계명의 표준에 온전히 따르고 있을 때에는 그 사실을 자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히 여러분에게 인간적인 지혜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솔직함과 진실함으로 행했다는 것이 우리의 양심의 증거요, 우리의 기쁨입니다.’
3. “우리는 행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대단히 넓고 우리의 모든 태도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 혹은 육체에 관계되거나 간에 내적, 외적 모든 상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과 말 모든 우리의 힘과 기능의 사용, 하나님과 사람에 관해서 우리가 받은 재능을 사용하는 방식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4.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했다” 즉, 불경건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이것은 비교적 적은 일일 것입니다) 악마의 자녀들 곧 악마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입니다. 이 세상의 신과 그의 모든 자녀들은 악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용허 容許되는 한도에서) 악을 행합니다. 그 아비처럼 언제나 잠복해 기다리거나 혹은,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벧전 5:8)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멸하기 위하여 부정수단 혹은 폭력, 비밀한 간계 혹은 노골적인 포학을 사용합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영혼을 향하여 싸움을 돋우며 옛 혹은 새 무기로써 또는 모든 종류의 책략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악마의 덫 속으로,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로 밀어 넣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5. 그러한 세상 안에서, 솔직함과 진실함으로 모든 것을 “행했습니다.”(고후 1:12)
첫째, 솔직함에 대해서 말합시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성한 눈”(눅 11:34) 이라는 이름 밑에 추천해 주신 것입니다. “너희 몸의 등불은 눈이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이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발언이나 행위에 있어서 몸의 눈에 해당하는 것은 그 외향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의 영혼의 눈이 성하다면, 당신의 모든 행위나 생활양식은 밝을 것입니다. 하늘의 빛, 성령 안에서 사랑과 평강과 희락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의 눈이 단지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을 때에, 모든 사항에서 우리가 시간과 영원에 걸쳐 하나님만을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분복, 우리의 힘, 우리의 행복, 우리의 매우 큰 보상으로 목적 삼을 때, 그 때 우리 마음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조성하고, 하나님의 복된 뜻을 행하고 받아들이는 단일한 의향(意向)이 우리의 전 영혼을 꿰뚫고 우리 온 마음을 채우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바람과 목적의 불변의 샘이 될 때 솔직함은 거기 있습니다.
둘째로, “진실함으로 행했습니다.”(고후 1:12) 솔직함은 의향 그것에, 진실함은 그 실천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솔직함으로 겨누는 표적을 실질적으로 맞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실제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전 생활에서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움직여 가며 그러면서도 성결의 공도(公道) 즉, 정의와 자비와 진리의 길로 일관되게 걸어갑니다. 이 진실은 신적 진실, 혹은 하나님의 진실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6. “육적인 지혜가 아니라” 마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연적인 이해력에 의해서도, 자연적으로 얻은 지식이나 지혜에 의해서도 이처럼 행할 수 없습니다. 좋은 지각, 좋은 성질, 훈육 등 어떤 힘에 의해서도, 이 솔직함을 얻거나 이 진실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타고난 모든 용기와 결단, 더구나 모든 철학의 가르침을 훨씬 능가합니다. 습관의 능력도, 인간 교육의 가장 세밀한 규칙도 우리를 이처럼 훈련시킬 수는 없습니다. 나 바울도 이미 향유하였던 모든 이점에도 불구하고 단지 육적인 생래적 지혜에 의해 추구하는 한, 그 상태에 도달하기는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율법의 의에 있어서는 흠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빌 3:6) 그러나 그것으로써 그는 저 솔직함과 하나님의 진실함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잃어진 노고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뼛속 깊은 데서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해로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 존귀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빌 3:7, 8)
7. 사도 바울이 여기에 도달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뛰어난 가치를 지닌 지식”(빌 3:8) 혹은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닌 다른 표현을 사용하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롬 3:24)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죄인인 내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이제 하나님과 화해되는 바로 그 거저 주시는 사랑 곧 아무 것도 요구하는 바 없는 자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오히려 “우리 속에서 활동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에게 의욕을 일으키시고 일하게” 하시는 성령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전자의 의미로서의 하나님의 은혜, 즉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이 우리 영혼에 나타나자마자, 후자의 의미로서의 하나님의 은혜, 즉 성령의 능력이 그 가운데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에게 불가능했던 일을 하나님을 통해 실행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르게 정돈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 사랑의 빛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육적인 지혜로서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이지만) “솔직함과 진실함으로 세상에서 행했다는” “양심의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연습문제]
1.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증거’를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유일한 선한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산 □□이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의 진실함과 솔직함에 대해 말해 보십시오.
3.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2가지로 나눠 설명해 보십시오.
4.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 인간에게 불가능했던 일을 하나님을 통하여 실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을 바르게 정돈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의 빛과 능력으로 □□ 것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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