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의 실제
영성생활(靈性生活, Spiritual Life)과 단순생활(單純生活, Simple Life)
홍성주 목사님
신자들조차도 이성과 정신, 몸과 육체라는 단어에는 익숙해도 ‘영성’이란 단어는 뭔가 낯설어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가 영성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증명하며, 그만큼 영성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불과 몇 년 전에야 비로소 건강의 개념에 영적인 면(영성)을 추가했습니다. 정신없는 인간을 생각할 수 없듯이, 영성 없는 인간, 특히 영성 없는 그리스도인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영성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그 첫 인간의 코에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영 또는 생기로 말미암아 인간은 생령(生靈)이 되어 하나님과의 영적교제가 가능하게 된 관계형성 능력을 말합니다. 그 후에 인간이 타락함으로 영성은 죽었으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은 그 영성이 비로소 회복되고 영성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신자면서도 여전히 불신자처럼 사는 사람은 영성이 병들었거나 영성이 왜곡된 신자입니다.
본 단원의 주제는 ‘영성생활의 실제’입니다. 성령님이 불신자를 거듭나게 하시고, 신자의 영성생활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나 신자는 아직 부족하고 미성숙하여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잘 깨닫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적 원수인 마귀와 죄와 세상으로부터 공격과 유혹을 받기도 하고, 자신의 육적 자아의 영향을 받아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롬 7:24)고 한탄하기도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성생활과 사역의 승리를 위해 말씀을 비롯한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여러 가지 대비책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 대비책 중에 우리의 육적 자아와 영적 원수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영성생활에 방해가 되는 죄와 욕망을 제어하는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성령님의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도움을 주어 영성생활에 활기를 주는 단순생활, 고독 속의 침묵기도, 자기성찰기도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영성생활(靈性生活, Spiritual Life)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의 신앙생활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부분이요, 다음은 그 신앙의 생활화 부분입니다. (신앙의 생활화는 개인적인 도덕생활과 공동체적인 윤리생활을 말하는 것으로 다음 단원에서 공부할 것입니다.) 본 단원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잘 섬기고 그 분과의 영적 교제는 어떻게 잘 할 것인지를 공부하는 신앙부분만 다룹니다. 요즘에는 신앙 생활하는 것을 ‘영성생활’이라는 말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라 하면 우리 인간이 어떤 인위적인 힘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으로 착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성생활이라 함은 삼위 하나님, 특히 성령님의 주도하에 우리의 구원과 신앙이 시작되었듯이,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영성생활도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로만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신자들의 영적 노력과 애씀도 필요하고, 이것 역시 성령님께서 주관하시지만 말입니다.
많은 신자들은 교회생활과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영성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런 생활들이 어느 정도 그들의 영성생활에 도움은 주지만 실질적인 도움과 변화는 주지 못했습니다. 시행되고 진행되는 프로그램과 교육내용을 살펴보면 아실 것입니다. 또한 교회 다닌 지도 오래되었고 거듭 난지도 한참 지났지만, ‘나는 얼마나 성화 되었나’를 살펴보면 영성생활을 잘하였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천국 갈 것을 믿는 신자는 꽤 많이 있어도, 막상 그 천국 사람들과 어울려 살만한 건강하고 온전한 영성을 갖춘 신자는 얼마 안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영성생활’이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는 생활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과 아울러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성화의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모든 일을 성령님께서 주도하시기에, 또한 잘 주도하시도록 신자들은 영성생활의 중심인 기도와 여러 가지 영적 노력으로 협력해야만 합니다. 그런 뜻에서 보면, 영성생활이란 지금까지 해온 신앙생활에다 한 가지를 덧보태는 것이 아니라 일대전환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세워놓은 어떤 목표 -공부와 진학, 사업성공과 출세 -를 이루기 위해 예수님과 교회와 기도 등을 동원하다시피 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영성생활을 살펴보겠습니다.
2. 영성생활은 “단순생활”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신자들은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에 있어서 순종과 겸손이라는 덕목의 중요성에 대한 설교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순종과 겸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20세기 미국의 대 영성인(靈性人)이었던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영성생활을 하고 싶다면 삶을 단일화해야 하며, 삶을 단일화 하기 위해서는 갈망을 단일화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욕망덩어리입니다. 신자가 된 후에도 욕망은 금방 사라지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와 세상 것이 별로 없을 때에는 순종도 잘하고 겸손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인 지위와 물질이 풍부해진 후에는 왜 순종과 겸손한 생활이 잘 안된다고 생각합니까? 단순생활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영성생활과 단순생활의 모범이십니다. 예수님은 집과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으셨지만(단순생활),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평안이 넘치는 삶(영성생활)과 남을 위한 삶(사역생활)도 활기가 넘치셨습니다.
단순생활이란 하나님만을 찾고 만나기 위한 순박하고 조촐한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으로 유명한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 Kempis)는 인간을 지상적인 것들 위로 끌어 올려주는 두 가지-단순성(단순생활과 동의어)과 순수성-를 언급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단순성은 신자의 의도를 고무시키며, 순수성은 그의 애정을 고무시킨다고 하였습니다. 단순성은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쓰는 것이며, 순수성은 하나님을 발견하며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는 것을 뜻합니다. 과연 우리에게 이런 단순성과 순수성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린이 같은 단순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머리와 생각과 삶은 세상 것으로 너무나 복잡합니다.
또한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 우리의 정과 욕심을 못 박은 즉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자들인데도 말입니다. 성경본문에 나오는 마르다 같이 우리의 삶이 단순하지 못하고 복잡하고 바쁘다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기도하지 못할 정도로 분주하고 복잡한 것은 죄입니다. 영성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런 삶을 청산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감리교인으로서 ‘의도의 순수성’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신자는 이제 내 의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목적만이 중요합니다. 삶과 모든 것의 목적과 의도가 순수해야만 합니다. 예수님만을 위해서! 의도가 단순하고 순수한 신자는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처럼 당연히 예수님과 하나님만을 찾는 단순한 삶도 살게 됩니다.
3. 단순생활의 훈련과 실제
미국의 영성신학자 리차드 포스터(Richard J. Foster)에 따르면 단순생활은 헌신된 소수자-수도사나 목회자 등-에게 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그는 그 어느 것도 하나님 나라와 단순생활을 향한 욕망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가 첫 번째로 항상 우선시되고 유지된다면 다른 모든 것은 순서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 의식주에서부터 단순생활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음식은 욕심내지 말고 정도껏 먹고, 과식하거나 폭식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남기는 음식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의복과 주택도 경비를 최소화해서 살아야 합니다. 단순생활의 최고 모델은 예수님이시고, 우리나라에서는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운 김용기 장로입니다. 지금이 어떤 때입니까? 인류 역사상 낭비가 가장 극대화된 시대입니다.
2) 이런 단순생활의 훈련은 가정 안에서 어릴 때부터 훈련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신자들은 세상 욕심 안 부리고 자연히 하나님만을 찾는 거룩한 사람들이 됩니다.
3) 새 물건을 사기보다는 중고품을, 폐기하기보다는 재생을,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합시다. 주일만큼은 신자들부터 솔선하여 자가용 승용차 운행을 중단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공해방지에 적극 동참합시다.
4) ‘지금 사고, 나중에 지불하라’는 구매방식을 폐기합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각종 신용카드의 사용료로 매년 수천 억 원이 해외로 빠져나갑니다. 소비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예전처럼 검소와 절약을 미덕으로 하는 존재지향적인 삶을 삽시다.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2007 평신도 월례회 공과』
나는 비교적 단순생활 실천을 잘하고 있다.
교사생활을 할 때 회식이 있는 날은 내 생일상을 받는 것 같았다. 음식 절제를 하지 못했다. 지금은 하루 두 끼 식사를 하고, 소식을 하고 있다.
명퇴 후 살이 빠져서 바지들은 죄다 수선해서 입고 있다.
대전에서 흔들의자를 폐기물 스티커를 부착해서 내놓으려다가 혹시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지 몰라서 그냥 내놓았더니 누가 가져갔다. 그릇, 화장품 냉장고, 체중계, 가방, 철제 옷걸이 등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서 기분이 좋다.
‘벼룩시장’처럼 좌판을 벌여서 내놓았으면 조금이나마 수익이 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폐기물로 버려지지 않고 필요하신 분들이 바로 가져가서 다시 유용하게 쓰임 받게 되어서 기쁘다.
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라서 학교생활만 했기 때문에 세상의 복잡함을 모르고 단순하게 살았다. 학교생활이 복잡하다고 생각했는데 명예퇴임을 하고난 후 겪은 세상살이는 무척 복잡하다. 세상과 많이 접할 일은 없지만 그 많지 않은 경험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함을 느꼈다. 뉴스나 드라마를 통하여 겪는 간접경험은 더욱 복잡하고, 살벌하고, 무섭다. 저렇게 복잡하고 흉악한 세상살이인가? 내가 저런 상황, 저런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살까? 생각이 많아진다.
세상 것으로 복잡하게 채워지지 않도록 나의 생각과 삶을 단순화하도록 노력하지만 ‘어린이 같은 단순성’만 가지면 세상살이에서 실족할까 염려스럽다.
세상 사람들의 정신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도록 간접경험으로 삶의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장 16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는 생활과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성화의 삶인 ‘영성생활’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고, 신앙생활의 연조가 길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50년이 지나서야 성령님의 임재를 느꼈다.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하는 생활과 내 안에서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지혜롭고, 평안이 넘치는 생활을 하여 ‘영성생활’을 올바르게 잘 하도록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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