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22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4월 이완용의 집에서 독립선언을! 태화사회관 이야기

나효선 2022. 4. 23. 04:23

 

기독교대한감리회 2022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4월 이완용의 집에서 독립선언을!

     태화사회관 이야기

 

2단원 뿌리내리는 감리교회

 

찬송 : 89장 샤론의 꽃 예수

성경봉독 : 사무엘상 7:5~14

요절 :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상 7:12)

 

 

 

 

봄기운이 완연한 4월입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자연의 봄기운처럼 나라와 민족이 새로워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1931, 지금도 삼일절로 지키고 있는 독립만세운동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군주 즉 황제가 중심이 되어 수직적인 질서가 주를 이루는 제국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국,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이루는 국가체제로 변화되었습니다. 물론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상황이었기에 임시정부를 수립할 수밖에 없었지만 민국으로의 변화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 독립만세운동의 중심에 태화관이 있습니다.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종로2가 종각역에서 조계사 방향, 인사동 쪽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태화복지재단 빌딩이 있습니다. 빌딩 입구에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라고 새겨진 커다란 표석과 독립선언서 전문이 새겨진 철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태화가 19214월 인사동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태화 안에 있던 별유천지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안의 명물이었습니다. 친일파의 상징적인 인물 이완용의 집이었고, 2년 전인 1919년 기미년 만세운동사건 때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미년 31일 정오, 독립만세운동 당시 태화관의 실소유주는 매국노의 상징이었던 이완용이었습니다. 그는 온 나라가 어지러울 때 권력을 이용하여 이곳을 차지하였으나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욕을 하고 침을 뱉으며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도심 한복판의 태화관을 요릿집 명월관에 세를 주고 변두리로 이사 가서 살던 중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니 이완용의 심정은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완용은 집을 내놓았고 마침 남감리회 여선교부에서 한국의 여성들을 위한 사회선교를 추진할 공간을 찾고 있었기에 매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한 곳, 그래서 민족의 성지로 불렸던 곳은 별유천지 6호실이었습니다. 태화관의 넓은 공간에 있는 집 중의 집, 경치 중의 경치였던 별유천지 6호실’. 1937년 새롭게 건축을 하면서 없어졌고 지금은 도시의 빌딩 숲 사이 아스팔트로 뒤덮여 아름다웠던 별유천지의 모습을 그려낼 수 없지만, 빌딩 입구의 기념비와 빌딩 로비에 걸려 있는 민족대표가 모여 앉은 기념 그림은 1919년 기미년에 별유천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아야 할 장면이 또 있습니다.

 

남감리회 여선교부가 이완용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잔금까지 지불하여 소유가 이전된 것이 192011월이었습니다. 소유가 이전되었지만 이전에 이완용과 전세계약을 맺은 명월관측에서 기간이 남았다며 집을 비워주지 않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삼일운동 이후 명소가 되어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며 장사가 잘되었으니 쉽게 집을 비워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계약이 된 9월부터 마이어스 선교사는 한국인 동료들과 방을 차지하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화장품 냄새 가득한 기생들과 술 냄새 풍기는 남자들을 선교사가 있는 방으로 보내어 조롱과 모욕으로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와 한국의 전도부인들은 흔들림 없이 견디며 싸웠습니다.

 

싸움이 장기화되자 양주삼 목사가 청년교인들을 동원하여 명월관 깃발을 내리고 교회 깃발을 내걸었습니다. 음식점이 폐업한 줄 알고 손님이 오지 않을 것을 기대했지만, 명월관에서도 직원들을 동원하여 교회 깃발을 내리고 다시 명월관 깃발을 내걸었습니다. 며칠 동안 밤새 깃발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양주삼 목사가 별유천지의 새 소유주인 남감리회 여선교부가 미국 국적임을 내세워 성조기를 내걸자 명월관 측이나 그동안 드나들던 고관대작들도 미국이 관련된 외교적 사건으로 커질 것을 두려워하여 떠났습니다. 1920년 성탄절, 마이어스 선교사와 리숙종, 박정화 등 명월관 측과 싸우며 자리를 지켰던 3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성탄절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세조의 조카사위인 능성부원군 구수영의 저택이 있던 곳, 그 후 여러 왕족과 권력 있는 신하들이 들어와 살았던 곳, 광해군 때 반정을 일으킨 인조가 왕이 되기 전 살았다 해서 잠룡저(潛龍邸)로 불렸던 곳, 조선 말기 헌종 때 귀빈 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순화궁으로 불렸던 곳, 1908년 궁내부대신 이윤용의 소유였던 곳, 1910년 한일합병 직후 그의 형 이완용의 소유에서 장안 제일의 요릿집이 되었던 곳, 그리고 삼일운동 때 독립선언식이 거행됨으로써 민족의 성지가 되었던 태화관이 19214태화여자관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마이어스 선교사가 건물의 옛 이름 태화관(太華館)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한자를 泰和로 바꾼 이유는 봉건시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억압과 멸시를 받아온 한국 여성들이 기독교복음을 받아들여 큰 평화를 누리고 봉건사회에서는 함께 할 수 없었던 양반과 천민, 부자와 가난한 자,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나고, 나누고, 도와주면서 하나님 나라의 큰 조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큰 평화(Great Peace), 아름다운 조화(Great Harmony)’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태화여자관은 우리나라 근대복지의 시작입니다. 태화를 빼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태화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조화를 보여주는 우리 감리교회의 자랑이자 블레셋과 싸워 이기게 하신 하나님, 에벤에셀의 증거입니다.

 

 

성찰을 위한 질문

 

1) 태화사회관(현 태화빌딩)과 관련된 사건을 말해보세요.

 

 

2) 감리교회가 시작한 사회사업기관을 아는 대로 말해보세요.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 2022년 월례회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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