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17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3과 기독교 대학설립에 앞장선 교육가
존 에모리 John Emory
* 성경봉독 : 잠언 9:9~10
* 참고성경 : 빌립보서 2:5~11
* 요절 :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잠언 9:9)
존 에모리는 기독교 교육사업에 눈을 돌려서 신앙적 인재양성에 힘쓴 교육자입니다. 그는 대학교육이 신앙 안에서 이루어질 때 복음으로 많은 인재들을 양성하고 사회를 기독교적 이념으로 바꿀 것이라는 신념으로 기독교 대학 설립에 나섰습니다. 이런 교육관은 학교를 세워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신앙을 가진 올바른 사회인이며 지도자로 양성해야 한다는 존 웨슬리의 사상을 이어 받은 것입니다.
존 에모리는 1789년 메릴랜드 주 퀸 앤 카운티에서 경건한 감리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17세에 신앙을 받아들였고, 21세에 감리교 순회 목사제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순회설교자가 되어, 3년 동안 메릴랜드 전역을 말 타고 순회하며 설교했습니다. 에모리를 순회설교자로 임명한 프랜시스 애즈베리 감독의 기록 노트에는 에모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존 에모리는 전통적이고 경건하고 재능이 많으며 남을 돕기 좋아하고 독서에 열중한다.”
1813년 초에 에모리는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그리고 워싱턴의 중요 교회 사역자로서 사무를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빌 클린턴 부부가 예배드리는 파운드리교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에모리는 봉사를 통해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특히 미국 중부 전역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는 1816년 감리회 총회 멤버로 선출된 이래로 감독직에 선출된 1832년까지 총회 대표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1820년 영국 웨슬리안교회 회의에 미국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이때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영국 웨슬리안교회와 미국교회의 보다 친밀한 관계형성이었습니다.
에모리는 1824년 뉴욕 시에 있는 감리교 출판사에 판매와 편집인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감독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출판사 운영에 관심을 가졌고 그의 관리로 빚을 모두 갚았을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 매우 탄탄해졌습니다. 특히 그는 감리교회 문헌 발전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여 「감리교 계간지」(Methodist Quarterly Review)를 발간하였습니다.
특히 에모리는 꾸준히 배웠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를 순회하면서도 말등에 앉아서도 책을 읽을 정도였습니다. 에모리는 코네티컷에 웨슬리의 전통을 잇는 대학교를 설립하는 데 일조했고, 19세기 중반 감리교 순회사역자들에게 요구되는 교육의 표준을 세우는 데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나아가서 정신적 향상을 위해 공부의 중요성을 절감한 에모리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교육에 강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에모리는 유능한 토론자였습니다. 1817년, 그는 <개신교 감독 교회>의 감독인 화이트에 대항하여, 자신의 문학적 무기들을 동원해서 논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감리교 개신교 교회> 설립의 계기가 되었던 1828년의 논쟁에서는 기존의 감리교 정책의 주요 방어자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생각의 논리적 전환에 능했고, 명료하며 활발한 스타일의 지도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감독으로서 에모리는 현재의 <감리교 감독 교회> 의 「교리와 장정」 출판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에모리의 업적 중 가장 탁월한 것은 감리교 계열의 대학들을 많이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는 뉴욕대학교와 웨슬리안대학교 설립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감리교 학교인 디킨슨대학 설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대학의 총장직을 제안 받았지만 체력의 한계를 느낀 그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에모리는 1832년 총회에서 감독에 선출되었고, 2년 뒤에는 조지아 주 워싱턴에 가서 조지아연회를 주재하였습니다.
1835년 12월 16일 메릴랜드 집 근처에서 에모리 감독은 차 사고로 서거했습니다. 길고 가파른 언덕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 에모리 감독의 시신은 볼티모어에 있는 올리벳 산 공동묘지에 프랜시스 감독과 베벌리 와우 감독 무덤 가까이에 안장되었습니다.
에모리 감독의 지도력과 성품은 조지아연회에 속한 감리교도들에게 깊고도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서거 후 1년이 지나서 감리교도들은 그를 기념하여 조지아 옥스퍼드에 에모리대학을 설립했고, 버지니아 남서쪽에는 에모리 앤드 헨리(Emory and Henrly)대학을 설립했습니다. 산호세에 있는 태평양대학교는 에모리를 기념하여 인근 거리를 ‘에모리 거리’로 명명했습니다.
존 에모리는 기독교대학교를 세워서 신앙의 인재를 기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감리교회 감독이었습니다. 에모리는 지금의 교회가 아무리 융성해도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면 교회의 미래는 없다는 신념에서 교육에 힘썼던 분입니다. 특히 그는 웨슬리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믿었습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기독교학교에서 신앙적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 교회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2.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인재 양성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 『2017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웨슬리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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