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16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1과 신앙 생활의 모범
안만천 장로
* 성경봉독 : 요한복음 1:10~13
* 참고성경 : 마가복음 13:24~27
* 요절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서론
2016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함께 하사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빕니다. 올 한 해도 2013년부터 계속해온 자랑스러운 감리교 평신도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을 혁신하고 내일의 희망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감리교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할 사명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그 첫 번째 인물은 성연교회의 안만천 장로입니다. 그는 뒤늦게 주님을 영접했지만 자신의 생을 헌신한 인물입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님을 믿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준 모범적인 인물입니다.
본론
안만천 장로는 1902년 충남 서산에서 7남매 중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가업인 농사를 지으면서 남의 부러움을 받는 부유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교인이 된 후에는 주일예배를 비롯한 모든 예배와 새벽기도회까지 빠지지 않았고, 교회를 운영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또 예배당 건축도 주도하여 아름다운 예배당을 봉헌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1959년 말, 안만천은 동생에게서 전도책자를 받았습니다. 동생은 국회의원을 역임한 인물인데, 덴마크 등의 유럽 시찰을 하면서 예수 믿는 나라는 잘 살고, 예수 믿지 않는 나라는 못 산다는 것을 깨닫고 잘 살기 위해서라도 예수를 믿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후 당시 부흥사로 이름을 떨치던 박용묵 목사의 설교집을 읽은 후 은혜를 받고 『부흥전도설교집』 등 전도책자 3권을 구입하여 형에게 전달한 것이었습니다.
안만천은 전도책자 속에 깊이 빠져들었고, 밤을 새우면서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담배를 끊기로 하고 담뱃대를 꺾어 아궁이에 불살라 버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 명절을 지내기 위해 섣달그믐에 일곱 남매가 모두 모이자 안만천은 “앞으로 모두가 예수님을 믿기로 하고 교회에 출석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열띤 토론을 거쳐 맏형만 부친이 별세한 후 첫 제사까지만 모시고 교회에 출석하기로 하고 나머지 가족은 새해 첫 주부터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의 교회로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안만천은 1960년 첫 주일(음력)에 자신뿐 아니라 가족을 모두 이끌고 성연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갑자기 교회로 찾아온 그 가족들로 인해 예배당은 단번에 꽉 차는 듯했습니다. 그는 이미 가족들에게 “새해부터 우리 집은 주일을 교회 가는 날로 정한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주일은 교회 나가 예배드리자”고 천명한 터였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던 날부터 그는 철저히 주일을 성수하는 고집스런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요예배, 금요속회, 새벽기도회를 가족과 함께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고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당시 그는 성연면에서 소문난 부자로 머슴을 셋이나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머슴들도 주일을 지키게 하였고 주일에는 일을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가령 소를 먹이기 위한 꼴도 토요일에 미리 베게 하였습니다. 비올 때의 시급한 논두렁 관리도 주일에는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신앙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해 12월 12일에는 지방 감리사 이강산 목사에게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고 정식 교인이 되었고, 유사(재무부원)로 역할하며 교회 운영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성연교회 예배당이 국유지 산자락에 초라하게 지은 초가집이었고, 예배당 바닥은 그냥 땅을 고른 후 가마니를 깔아서 먼지도 많이 나고 습기와 냄새도 심하였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매우 송구스러웠습니다.
마침 1962년 초에 열린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마지막 날 새벽에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고 바닥에 뒹굴면서 과거의 삶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새 사람이 된 것을 기념하여 예배당을 새로 건축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선 자기 집을 건축하려고 준비했던 목재(소나무 200주)를 교회에 헌납하였습니다. 250평의 교회 부지도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가난한 농촌교회였기에 이것만으로는 예배당을 건축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동산을 평가하여 십일조를 금액으로 환산한 후, 그 가치에 해당하는 가장 좋은 문전옥답 세 마지기를 팔기로 작정했습니다. 가뭄이 들어도 물 걱정을 하지 않는 논이니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고, 땅을 내놓은 그 날로 팔렸습니다. 이 일로 동네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부자가 예수 믿더니 갑자기 문전옥답을 팔았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여 성연교회는 성연초등학교 뒷산 자락(평리)에서 1962년 왕정리의 전망 좋은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는 동안 예배는 자신의 집에서 드리게 배려하였습니다. 온 교인들이 힘을 모아 터를 닦고 기초를 놓으며 새 예배당을 건축하는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결국 안만천을 비롯한 교인들은 예배당(27평)과 사택 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봉헌하였습니다. 1963년 12월 17일 거행된 봉헌식에는 윤창덕 전도국 총무와 신도열(G. L. Sidwell) 선교사 및 윤춘병 서산동지방 감리사, 인근 교회 교인들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이 날 성연교회 교인들은 매우 감격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안만천 유사는 교회의 자랑스러운 모범 교인으로 교회를 섬겼고 1966년에는 장로로 선택되었으며 1969년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의 여섯 자녀들도 모두 아버지 안만천 장로의 뒤를 이어 교회를 섬기는 데 앞장섰습니다. 큰 아들 안상진 장로는 남부연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아들 안창환도 장로로 선임되어 삼대 장로 가정이 되었습니다. 특히 안상진 장로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원로장로회가 수여하는 ‘제1회 신앙의 명문가 상’(2012년)을 수상하였습니다. 안만천 장로의 형제들도 모범적인 믿음의 명문가가 되었습니다. 길지 않는 이 가정의 신앙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목사 34명, 장로 31명이 한국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결론
안만천 장로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편안한 생활을 했지만 말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변화시킨 말씀을 항상 기억하면서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 같은 나누고 섬기려는 모습은 가족, 친척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가문 전체를 변화시켜 주님께 헌신하는 신앙의 명문가가 되게 하였습니다.
생각을 위한 질문
1. 2016년을 믿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 주님이 올 한 해 나 자신과, 우리 선교회,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은 무엇일까요?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2016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감리교회를 빛낸 평신도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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