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성령의 능력으로 열매 맺는 평신도”-2

나효선 2009. 2. 23. 00:15

올바른 인간관계를 위한 영성훈련

                                                                  이충범 교수 (협성대학교 신학과)

1. 조심해야 할 신자의 인간관계

신자로서 늘 우리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 우리 신자들이 실수하거나 주의해야 하는 몇 가지 유형을 잠시 검토해 보려고 합니다.

 

1) ‘복덕방형 인간관계’라고 부르는 유형입니다.

이런 유형의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변에 매우 여러 방면에 다수의 훌륭한 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친화력이 있다는 칭송을 듣게 되고 여러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를 갖는 유형의 사람은 성공적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친구들을 동일화”하는 착각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모든 대화가 결국에는 “내 친구, 동창, 선배 중에 누구는”으로 귀결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은 점차 사라져 버리고 타인, 친구, 지인들과의 관계성만 남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관계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덧 자신의 삶이 아니라 타인들과의 관계 챙기기에 몰두하게 됩니다. 일상은 늘 애경사 챙기기에 바쁘게 되고, 친한 관계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심초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아 고심하기도 하며, 수많은 모임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등 타인 때문에 생기는 복잡하고 바쁜 삶을 “자신의 삶”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기만의 내면생활은 사라지게 됩니다. 목사, 장로, 권사, 성도라는 타이틀은 친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될 위험에 처하게 되고 개인의 믿음생활보다 인간관계가 주(主)가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인간관계를 위해서 자신의 영성생활이 밑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친구가 많다고 신앙적으로 반드시 올바른 것만도 아니며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이 다 좋은 인간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아는 사람이 많으면 편리하지만 그만큼 소비해야 할 에너지도 늘어나게 되어 자신의 영적 생활에 투자해야 할 알곡 같은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게 됩니다. 그리고 내면의 삶을 위해서는 쭉정이 같은 힘만을 쓰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마르다보다는 마리아의 믿음을 더 높이 평가하셨습니다(눅 10:38-42).

 

2) 신자는 ‘자기 사랑형 인간관계’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인간관계에 익숙한 사람들은 공동체나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팔 걷어붙이고 실천하는 매우 능동적인 태도를 보이며 주변 사람들을 자상하게 배려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 조직이나 교회 밖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조직 안에서 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저는 교회 내에서 매우 친절한 분과 함께 버스를 탄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다른 사람에게 대단히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또한 이런 유형의 인간관계를 하는 사람은 조직을 떠나거나 거리가 멀어지면 타인에 대한 관심도 사라집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 모두 이러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단지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일까요? 이런 태도를 갖고 있는 우리의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 적극적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내면은 다른 사람들의 기쁨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사람일 경우, 우리의 체면과 관련되지 않을 경우에 우리는 종종 무관심하거나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고 자신에 대한 주변의 칭찬이 위협을 받을 때는 대단히 공격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은 자신이 희생하여 남을 돕고 타인을 배려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칭찬을 더 사랑하는 자기 사랑형의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유형입니다. 즉 이웃사랑으로 착각하는 자기 사랑의 인간관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이웃이 누구입니까? 알려주시면 제가 사랑 하겠습니다”고 묻는 율법사에게“그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라. 그럼 네가 그의 이웃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눅 10:36-37).

 

3) ‘의리형 인간관계’를 검토해 봅니다.

16세기 스페인의 영성가 아빌라의 테레사는 이러한 인간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어리석고 멍청하게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충절을 바치는 것이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흔히 있는 정신 나간 짓이었는데 지금도 나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미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기도의 삶”, 72쪽)

저 역시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에 보답은 못할망정 쉽게 잊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나 테레사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사랑을 잊어야 한다든지 아니면 배신을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녀가 비난하는 것은 주변의 정붙이들에 대한 과도하고 맹목적 의리가 가져오는 엄청난 폐해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져도 의리와 정 때문에 함께 가야만 하는 관계, 정 때문에 객관적인 참 사랑이 아닌 인간의 감정으로 밀착되어 있는 관계에 대한 성녀의 일갈입니다. 그러면서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나를 도운 것은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이 보낸 종들이었다.” 따라서 정말 주변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정들, 감정적으로 밀착된 관계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는 기도와 절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인간관계를 위해서

첫째 우리 주변을 적당히 정리해야만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비록 즐겁긴 하지만 우리 자신의 영혼에 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모임이나 친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친한 이들끼리 삼삼오오 몰려가서 떠드는 수다는 잘못하면 큰 설화에 휘말리거나 우리 영혼의 성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모임은 가급적 피하거나 아니면 볼 일이 끝난 후 곧바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엔 흉보던 주변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우리의 진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영적으로 성숙하고 거룩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는 것이 영혼에 큰 유익이 됩니다. 영혼의 성숙을 위하여 덕을 추구하고 싶은 의욕은 친구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에 거룩한 분들과 친교를 자주 갖거나 성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책 속의 성인들과 친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분들을 자신의 멘토(영적 지도자)로 삼아 신앙과 인생의 문제와 고민거리, 삶의 지혜 등을 함께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세 번째로 한 친구나 소수의 사람들에게 너무 깊은 사랑을 주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한 두 사람을 너무 깊이 사귀는 것이나 한 두 사람만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이 매우 위험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고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우리의 감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정적으로 너무 가깝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 섭섭함, 배신감, 외로움, 잘못된 신뢰 등이 고요한 영적 삶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관계도 소원하게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을 조심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관조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뒤죽박죽되어 올바른 관계까지 깨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나와 관련된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에게 고맙고 감사한 분이건 밉고 못된 사람이건 모두 하나님의 입장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그들이 다르게 보이고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기도가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태도를 확대하여 학연, 지연, 파벌, 의리, 친척간의 정, 인연 등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그들을 우리의 감정과 연민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참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2008 평신도 월례회 공과』

 

  거친 광야, 살얼음판, 야성의 밀림인 세상살이에서 생존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하려면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와 적절한 절제 능력이 필요하다.

속사람을 나날이 새롭게 하고, 살아있는 믿음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는 삶,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 되도록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