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22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8월 아! 마시지 말라! 그 술

나효선 2022. 8. 5. 19:25

 

기독교대한감리회 2022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8월 아! 마시지 말라! 그 술

절제운동이 민족운동으로

 

3단원 나라와 민족을 세우는 감리교회

 

찬송 : 532장 주께로 한 걸음씩

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9:19~27

요절 :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린도전서 9:25)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새벽마다 온 동네에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붕을 개량하고 길을 넓히며 생활환경을 바꾸는 새마을운동은 도박, 음주, 퇴폐향락 등의 문화로부터 건강한 삶을 이끄는 계몽운동이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 초기 역사 속에 삶의 변화를 이끌며 나라와 민족을 새롭게 하는 절제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은 감리교회로부터 시작된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하는 움직임이었는데, 전국으로 퍼져나가다가 자연스럽게 민족운동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신앙 운동으로서의 절제운동이 민족운동이 되었을까요?

 

 

현재 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오래전 사용하던 찬송가에는 금주가(禁酒歌)’가 있었습니다.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말라 건강지력 손상하니 천치될까 늘 두렵다 아 마시지 말라 그 술 아 보지도 말라 그 술 조선 사회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있느니라.” 1920년대 이화여전(현 이화여대)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임배세가 작사·작곡한 찬송가로 주일예배, 사경회, 부흥회 때 자주 불렸습니다. 술을 마시지 말고 보지도 말라는 금주에 관한 가사가 1절이지만 2절부터 4절은 금주해서 남은 돈으로 학교를 세워 자녀교육 시키자는 것술로 몸을 망치지 말고 건강하여 나라 위해 몸 바치자라는 내용으로, 민족계몽운동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1930~40년대 교인들은 금주가를 마치 독립운동가처럼 생각하여 즐겨 불렀습니다. 이런 이유로 1942년에 남궁억 선생님이 작사·작곡한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과 함께 금지곡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금주운동이 일어난 것을 1900년 이후로 보기도 하지만 감리교회는 이미 1897년 연회에서 금주를 공식적으로 결의하였습니다. 당시 감리교회는 음주행위를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 교회법을 어기는 일, 부모형제 처자에게 광언지설하는 일, 자기 몸을 망하게 하는 일로 규정했습니다. 금주, 금연운동은 윤리적인 절제운동이었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로부터 불손한 운동으로 치부 당했습니다. 담배처럼 술도 전매사업이어서 그 수익금이 총독부 재정의 큰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절제운동은 일제를 향한 경제적 저항운동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금주, 금연운동은 1930년대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회운동이 되었습니다. 19193·1운동 직후 일제는 1910년 한일합방 후 실시했던 강압적인 무단통치에서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를 허락하여 불만을 해소하는 문화통치를 실시했는데, 외적으로는 자유를 허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보다 철저한 방법으로 우리의 민족정신과 독립의지를 말살하려는 문화적 침략정책이었습니다.

 

총독부가 일본인 학자를 동원하여 일선동조동근론(日鮮同祖同根論, 일본과 조선의 역사의 뿌리가 같고 조상은 하나라는 의미)’을 내세우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일본보다 열등한 것으로 왜곡하거나 소멸시키는 한편 일본문화를 도입하여 우리 민족의 일본동화정책을 펼친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이 정책으로 인해 일본의 퇴폐문화가 들어와 청년과 학생들이 오염되고 우리의 문화적 전통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술과 담배, 아편, 성매매 같은 퇴폐문화의 폐해가 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개된 절제운동이었고 그 중 금주운동이 핵심이었습니다.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에서 파견된 강사 틴링(C.I.Tinling)이 전국을 돌며 금주강연회를 열었는데 통역으로 참여했던 이화학당 교사 손메례는 감리교와 장로교의 여성지도자들을 모아 19248월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를 창설합니다. 이것이 현재의 대한여자기독교절제회의 시작입니다.

 

상동교회 출신으로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교사로 활동하다가 금주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교사직을 사임하고 절제회의 총무가 되어 금주강연회를 열었는데, 손메례는 청중들 앞에서 계란에 알코올을 부어 그것이 익는 광경을 보여주면서 술의 독성을 증명하였고, 당시 한 가구당 연소득이 360원도 안 되었는데 매년 술에 대한 세금으로 총독부에 들어가는 돈이 8,400만원이라는 통계를 제시하며 민족감정을 자극했습니다. 실제로 금주운동을 민족운동의 하나로 본 것입니다. 1930430일자 기독신보에 손메례가 쓴 기사가 있습니다.

 

술은 사실 탄환없는 대포와 갓흔데 도로혀 용기를 준다구 밋게하엿다. (중략) 조선의 금주운동은 모든 운동 중에 가장 큰 운동이다. 육을 살니는 운동이며 죽어가는 조선을 살니는 운동이다. 여러분은 때때로 왜 이 금주운동을 니저버리는가?” 손메례의 강연은 일본 경찰의 감시와 방해를 받았습니다. 강연장에는 경찰이 입석하여 내용을 점검하였고, 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요시찰 인물이 되었습니다.

 

 

절제란 알맞게 조절하고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감성적 욕구를 이성으로 제어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한다고 했습니다. 초기 교인들에게 절제는 신앙으로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구원의 확증이었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민족을 일깨우고 바로 세우는 민족계몽운동이었습니다. 존 웨슬리도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모든 술을 세상에서 깨끗이 사라지게 만들겠다라고 하며 금주라는 절제를 통하여 신앙인의 생활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영국에서 감리교인은 금주운동가 내지는

금주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합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의 절제생활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아계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나라와 민족을 복음으로 새롭게 세우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우리의 초기 감리교인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성찰을 위한 질문

 

1) 예수를 믿은 후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2) 절제가 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 되는지 말해보세요.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 2022년 월례회 공과

 

자랑스러운 한국감리교회 열 두 가지 이야기

 

 

금주가 (192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