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22년 월례회공과 1월 하나님의 손길(1) 한국을 향하다

나효선 2022. 1. 24. 23:35

 

기독교대한감리회 2022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1월 하나님의 손길(1) 한국을 향하다

 

1단원 감리교가 들어오기까지

 

성경봉독 : 시편 37:3~24

요절 :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편 37:5)

 

 

 

 

2022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자랑스러운 감리교인으로서 거룩한 마음, 거룩한 삶을 세워가기 위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올해는 우리 감리교회의 역사 속에서 거룩한 마음, 거룩한 삶을 세웠던 믿음의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장면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본받아 선하고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는 자랑스러운 감리교인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들은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실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에게 계획보다 더 우선인 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태도입니다.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게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감리교회의 역사는 그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한국에 감리교회가 전파된 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개방과 개혁의 시대적 흐름, 안정과 보수의 전통적 흐름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이었던 1882, 한미수호조약의 체결로 한국과 미국 사이에 외교관계가 수립되었고, 18835월에 주한 미국공사로 푸트가 부임했습니다. 한국 측에서도 민영익을 단장으로 보빙사절단이라는 외교사절단을 미국으로 파견하여 양국의 외교관계를 확인하고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 제도를 살펴보도록 하였습니다. 사절단이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한 후 기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가던 중 이들 일행을 보고 먼저 대화를 시도한 미국인이 있었습니다. 볼티모어에서 목회하고 있던 30대 후반의 가우처 목사였습니다. 가우처 목사는 교육사업과 동양지역선교에 관심을 갖고 볼티모어에 흑인을 위한 모건대학과 여자대학, 중국 복주에 중서서원, 일본에 미감리회신학교, 아오야마학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사절단을 본 그는 서양인과는 다른 옷차림의 동양인에게 먼저 대화를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사절단장 민영익으로부터 교육분야에서 미국선교사들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가우처 목사는 한국선교의 때가 온 것으로 확신하고, 188311월 자신이 속한 미감리회 해외선교부에 선교비 2,000달러를 보내면서 한국선교를 정식으로 요청하였습니다. 미감리회 해외선교위원회는 가우처 박사의 2,000달러에 3,000달러를 보태 5,000달러를 한국선교비로 책정하고 일본선교부에 편입시켜 한국선교에 착수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일본 주재 선교부 책임자였던 매클레이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매클레이는 한국선교를 위해 곧바로 한국방문을 추진하였습니다. 가우처 박사만이 아니라 매클레이도 한국선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1896년 매클레이의 회고를 보면 가우처 박사의 편지를 받는 순간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소망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편지를 받자마자 저는 하나님의 소명을 강하게 느꼈으니, 이는 한국에 기독교 선교의 문을 여는 데 저를 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1848년 매클레이는 선교사로 중국에 도착한 직후 난파당해 중국 어부들에게 구출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국 어부들을 복주 거리에서 보고 선교적 관심을 가졌으나 중국선교개척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더이상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후 중국선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던 1872, ‘제너럴셔먼호사건에 대한 정치 군사적 응징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던 극동아시아 함대가 귀환하였는데, 이 함대는 신미양요라 불리는 강화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일으킨 함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클레이는 미감리회선교부에 군대 대신 선교사를, 무기 대신 복음을 보내자라며 한국선교를 촉구하는 글을 써서 보내고 언론에도 발표했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매클레이는 1882년에 일본 도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일본 정계의 유력인사 소개로 한국의 고위 정치인 김옥균을 만납니다. 김옥균으로부터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 김옥균을 비롯하여 일본에 도착한 한국 청년들은 매클레이 부인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만남으로 인해 매클레이는 한국선교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84년에는 또 다른 한국인 이수정을 만나 감리교 교리서인 미이미교회문답전도문서인 천도소원등의 한글판을 출판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국과 관련된 상황이 있었기에 1883년 말 미감리회 해외선교위원회의 한국선교 결정 사실과 선교 가능성 탐색 요청을 받았을 때 주저 없이 한국방문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북주에서 난파당한 조선 어부들을 보고 선교적 관심을 가진 지 37년 만에 한국선교 개척의 문을 열게 된 것입니다. 1883년 당시 미국교회는 로스와 루미스를 통해 만주와 일본에서 이루어진 한국인 개종이야기와 성경번역사업에 대한 정보를 접수했고, 한국의 마게도니아인으로 알려진 이수정이 미국 교회에 보낸 선교사파송요청 편지도 한국선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계획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감리교회가 전해진 것은 인간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가우처 목사가 기차 안에서 낯선 이방인보빙사절단 일행을 만난 것, 매클레이의 마음에 한국선교를 심어주신 것 역시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손길이었습니다. 매클레이의 내한으로 선교가 이루어졌고, 이 땅에서 복음선교와 사회개혁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우처와 보빙사절단이 기차에서 만난 때와 매클레이가 가우처의 편지를 받고, 미감리회 해외선교위원회로부터 한국선교결정을 통보받았던 당시는 이미 미국교회가 한국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한국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였습니다. 이렇듯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으므로, 우리는 그때를 위해 하루하루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찰을 위한 질문

 

1. 한국감리교회의 전래과정에서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느낀 것은 무엇입니까?

 

 

2. 우연히 겪은 어떤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느낀 경험이 있습니까?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 2022년 월례회 공과

 

자랑스러운 한국감리교회 열 두 가지 이야기

 

 

저자 유성종 목사

 

감리회본부 기획홍보부장

믿음의 땅 순례의 길저자

 

 

1883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보빙사절단의 공식 기념사진

(뒷쪽 중앙이 유길준, 아래줄 왼쪽 첫 번째가 홍영식, 두 번째가 단장 민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