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21년 월례회공과
12월 감리교인의 사회 생활 - 사랑의 불꽃
제 4단원 거룩한 삶
성경봉독 : 마태복음 5:13~14
요절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4)
12월은 아기 예수의 오심을 고대하는 대강절과 주님의 오심을 경배하는 성탄절이 있는 달입니다. 왜 주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죄로 얼룩진 인간의 삶의 자리 가운데로 친히 찾아 오셨습니까? 바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썩어져가는 세상에 소금으로 오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고,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말씀임과 동시에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천명해 주시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빛 그 자체가 아니지만, 빛이신 하나님께로부터 그 빛을 조명받아 이제는 그 빛을 발하는 빛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8세기 감리교운동은 세상의 빛과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던 명실공히 크리스천 운동이었습니다. 감리교운동은 내적 성화를 통한 외적 성화 운동이었습니다. 내면에 거룩한 사랑으로 마음의 할례를 하고, 세상 속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운동이었습니다.
웨슬리의 복음주의 운동은 다른 복음주의 운동과 그 궤를 달리합니다.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이나 개신교의 복음주의 운동은 구체적인 사회변화와 사회개혁까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이고 내적인 경건과 영혼 구원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은 처음부터 세상 한복판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을 돌보는 사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면에서 웨슬리는 독일 경건주의자들과 결별하게 됩니다.
웨슬리는 당시 귀족화된 영국성공회 안에 갇혀 있는 사제들과는 다른 길을 갔습니다. 웨슬리는 교회 밖으로 나와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웨슬리는 1741년에 병자 방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4,000명의 런던 감리교인들을 모아놓고 누가 병자를 방문할 것인가 물었습니다. 수많은 감리교인들이 기쁨으로 지원하였으나 웨슬리는 46명만을 선출하여, 런던시를 23개 지역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세 번씩 각 지역 병자들을 돌보게 하였습니다. 또한 웨슬리는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1747년 『원시 의학』이란 책을 저술해서 국민건강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병, 증상, 상처를 알파벳 순서에 따라 명시하고 289가지 표제들로 정리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다음의 네 가지를 강조하였습니다. 1) 풍부하고 신선한 공기 마시기, 2) 소박한 음식 먹기, 3) 매일 운동하기, 4) 정신적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는 생활 영위하기. 1746년에는 가난한 병자들을 위하여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였습니다. 외과 의사, 마취과 의사가 도왔고, 특별히 설교가이면서 의사인 화이트헤드가 도왔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30명이 왔는데, 석 달도 안 되어서 5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웨슬리는 사회 속에서 공동체운동도 전개하였습니다. 1748년 ‘올드 파운더리’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는 9명의 과부, 1명의 소경, 2명의 가난한 아이들, 2명의 남녀 종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1772년에는 ‘파운더리’라는 기독교 공동체를 런던에 설립하였습니다. 그 안에 가난한 자를 위한 집, 과부들을 위한 집, 설교가들을 위한 집, 소년들을 위한 학교, 병자들을 위한 진료소, 직장을 알선해 주는 직업소개소, 은행, 도서관, 교회, 신용조합까지 두었습니다. 또한 1785년에는 ‘나그네친구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친구 없는 나그네, 병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조직하였습니다. 영국 전역에 감리교 신도회가 설립되는 곳마다 봉사센터를 세웠습니다. 맨체스터만도 이 봉사센터를 통해서 무려 6만 명 이상을 도와주었습니다.
웨슬리는 그의 어머니 수잔나 웨슬리의 영향을 받아서 교육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중, 상류층이 아닌 아이들은 초등학교 이상을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가난한 광부촌 킹스우드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전혀 학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새 집’이라는 이름으로 1749년에 2개의 탁아소와 소녀들을 위한 고아원도 설립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서 신용조합을 세워 운영하였습니다.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은 사회구조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운동으로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인류 최초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발생하였고,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인권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감리교인들을 중심으로 전국노동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운동으로 인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감리교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웨슬리는 감리교 지도자를 세우는 데 사회적 신분을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적어도 1,000명의 감리교 지도자들이 가난한 민중출신이었고, 8,000명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감리교인이었습니다. 감리교 속장과 평신도 설교가들과 감리교 시도회를 지역마다 개척한 사람들이 목수들, 제대 군인들, 술집 종사자들, 면직 노동자들, 가죽세공업자들, 깡통 만드는 노동자들, 그릇 만드는 노동자들, 빵 굽는 노동자들과 산업노동자들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웨슬리의 감리교운동은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여성 중에서는 가난한 계층 여인들, 종살이하는 소녀들, 방적기 돌리는 여인들, 가난한 가정주부들이 용감한 개혁과 과감한 사회개혁의 중요한 직위를 가졌습니다. 감리교회 내에 여성 지도력을 인정해서 공식적으로 여성 설교가를 인정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참으로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웨슬리는 1774년 「노예제도들 논박함」이란 논문에서 노예제도를 공격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짐승을 사냥하듯이 사람을 사냥해서 상품화하는 노예제도를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또한 웨슬리는 회심 이전의 교도소 방문이 출발점이 되어서 회심 이후 교도소 제도 개혁의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시 형벌제도는 너무 가혹했습니다. 가령 토끼를 총으로 쏜 죄, 다리를 파손한 죄, 어린 나무를 자른 죄, 5실링을 훔친 죄 등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러한 법들은 모두가 가난한 자들에게 적용되는 법들이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당시의 상황이었습니다.
웨슬리의 영혼 사랑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있지 않았습니다. 세상 속에서 사랑의 빛으로, 그리고 사랑의 소금으로 불꽃처럼 타올랐습니다. 한 사람 존 웨슬리의 회심이 전 영국 사회를 복음으로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무규범의 아노미 사회를, 거룩한 사랑의 법으로 치유하고 세워나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감리교인으로서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랑스러운 감리교인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성찰을 위한 질문
(1) 빛과 소금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2) 우리는 감리교인으로서 사회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 『2021년 월례회 공과』
자랑스러운 감리교인
거룩한 마음, 거룩한 삶
저자 : 김영복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클레어몬트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Ph.D)
•연세대학교 인문예술대학 교수 및 교목
•현) 서울연회 도봉지방회 갈릴리교회 담임목사
•「신학이 있는 영성마을 TV(유튜브)」
•감리교신학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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