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감리회 2018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4과 예수 기도를 통한 침묵 기도의 길

나효선 2018. 4. 9. 22:40

기독교대한감리회 2018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4과 예수 기도를 통한 침묵 기도의 길

 

* 성경봉독 : 시편 51:1~12

* 요절 :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51:1)

 

시작하는 말

 

우리 감리교회를 창시한 존 웨슬리 목사님은 영성에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동방정교회 영성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사실 동방정교회는 개신교인들에게는 낯설지만, 신학적으로나 영성적으로 가톨릭교회보다 가까운 교파입니다. 동방정교회와 가톨릭교회는 1054년에 분열되었는데 동방정교회는 우리처럼 자유의지에 의한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웨슬리의 가르침처럼 완전한 성화를 강조하며, 성화를 위한 탁월한 기도훈련 방법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본론

 

예수 기도란 어떻게 하는 것이며 그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5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동방정교회 수도사들에 의해 형성된 예수 기도는 예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를 반복하는 기도입니다. 사실 기도문을 반복한다는 것은 우리 개신교인들에게는 낯선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의 신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기도의 신학적 의미는 네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 기도는 가장 건강한 기독교적 인간관을 표현하는 기도입니다. 기독교적 인간관이 무엇일까요? 인간은 죄인이며 신적인 자비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기도는 신학적으로 아주 건강한 기도입니다. 둘째, 준 성례전적인(semisacramental) 의미 즉 성례에 가까운 의미를 지닙니다. 현재 개신교에서 행하는 주된 성례인 성찬과 세례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은혜의 방편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처럼 예수 기도도 예수님의 이름을 반복하며 기도할 때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을 통해 임하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셋째, 사도 바울의 가르침인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입니다. 이 기도는 기도 시간은 물론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등 깨어 있는 모든 시간에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예수 기도는 모든 기도의 일차적 목표인 마음의 고요에 이르게 합니다. 마음의 고요는 모름지기 모든 기도자가 일차적으로 이르러야 하는 목표입니다.

 

그러면 예수 기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예수 기도는 세 단계로 실천합니다. 첫째는 구송기도입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어 드리는 단계입니다. 소리를 내어 기도하면 말하는 것에 신경 써야 하기에 정신 집중에 도움이 됩니다. 둘째, 정신 기도입니다. 정신과 마음을 통합해 드리는 기도의 단계입니다. 정신 즉 사고는 예수 기도문의 단어 하나하나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마음 즉 감정은 통회의 슬픔을 느끼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기에 우리는 영적으로 슬픔을 느낍니다. 셋째, 마음의 기도입니다. 정신의 기도를 하다 보면 예수 기도가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되는 단계입니다. 호흡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듯 예수 기도를 자연스럽게 마음 안에서 드리는 단계입니다.

 

예수 기도를 다른 말로 마음의 기도라고 하는데 여기서 마음이란 마음의 바닥을 의미합니다.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생각이 마음의 바닥에 이르는 훈련을 통해 저 깊은 곳에 내려가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 마음과 사고가 통합된 자리에서 신자는 성령의 임재로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합니다. 이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의를 사랑이라고 해석했는데 하나님의 의는 사랑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자가 예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마음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데 이것이 예수 기도의 일차적 유익입니다.

 

 

맺는 말

 

사도 바울은 로마서 8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기도 시간조차 끊임없는 잡념에 휘둘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기도를 드리지 못하는 모습을 뜻하지 않을까요?

 

사실 간구 기도나 중보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기에 잡념의 방해를 적게 받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침묵 기도는 잡념의 방해를 많이 받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예수 기도를 통해 더 깊은 기도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예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를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3분간 침묵으로 예수 기도를 드립니다.

 

2. 각자 기도 가운데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나누어 봅시다.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 2018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영성 형성의 길 The Way of Spiritual 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