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왕산 수성동계곡 · 병풍바위 글씨 인왕산자락길 / 그 사랑

나효선 2015. 9. 12. 22:00

전철유람 208

인왕산 수성동계곡 · 병풍바위 글씨 인왕산자락길 / 그 사랑

 

높이 올라가지 않아도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인왕산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가서 종로 09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옥인아파트’에서 내리면 바로 인왕산이 다가옵니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仁王山 水聲洞 溪谷)

 

수성동(水聲洞)은 조선시대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기린교(麒麟橋)

 

≪ 조선시대 안평대군의 옛 집터에 있었던 '기린교(麒麟橋)'로 추정되는 돌다리가 종로구 옥인동 옥인시범아파트 옆 계곡에서 최근 발견됐다.

서울시가 철거할 예정인 이 아파트의 옆 계곡 암반 벽 사이에서 발견된 돌다리는 가로 세로 약 35㎝, 높이 3.7m의 장대석 두 개를 붙여 만들었고 다리 폭은 70㎝ 정도다.

수평으로 놓은 다리이면서 교각이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 소박하면서도 품위가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09년 9월 14일     서울시 기념물 31호 ≫

            

   

인왕산

     

  

사모정

        

       

학생들이 야외수업을 하고 있어요.

        

   

석교(石橋)

   

       

인왕산 병풍바위 글씨

    

    

2012년에 처음 인왕산 수성동 계곡을 만났는데

널따란 바위에 무언가 새겨진 것이 있다는 것은

2013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인왕산 병풍바위에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이라는 글씨를 새겼던 흔적이라고 합니다.

          

          

             

‘인왕제색도’ 병풍바위, 일제 때 훼손 사진 첫 공개

        

경향신문   임아영 기자 2015-06-30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나오는 병풍바위가 일제강점기 훼손된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이태호 교수는 ‘월간 미술’ 7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1939년에 찍은 유리원판(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산 사진에는 당시 미나미 총독이 쓴 ‘동아청년단결’을 비롯한 학무국장의 천황에 대한 맹서 등 바위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면서 해당 사진을 소개했다.

 

1939년 인왕산 병풍바위를 찍은 사진에는 ‘황기 2599년(1939) 9월16일’에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행서체로 쓴 구호 ‘東亞靑年團結(동아청년단결)’이란 한자 글씨가 선명하다. 당시 경성에서 ‘대일본청년단대회’가 열릴 때 기념각자로 새긴 것으로, 매일신보는 9월17일 ‘천추에 빛날 각자 기공식’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그 왼편에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 도키사부로(鹽原時三郞)가 같은 날짜에 천황에 대한 맹서를 작은 글씨로 새겨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바위 글씨를 새긴 사람은 스즈키 긴지로(鈴木銀次郞)로 금강산 구룡폭 암벽에 해강 김규진의 거대한 19m 글씨 ‘미륵불’을 새긴 조각 기술자였다.

 

이 교수는 “광복 후 암면을 쪼아 글씨들을 제거한 상태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 흔적이 지금도 역력하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자연을 훼손한 만행이자 식민지를 겪은 우리의 아픈 흔적”이라며 “이 바위 글씨에 대한 당시 기사 등 정보는 있었으나 사진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 겸재 정선이 비 내린 뒤의 인왕산을 그린 산수화이다.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때는 조선 영조 27년인 1751년이다. 국보 제216호 ≫

              

사진출처 : 경향신문

              

1939년 인왕산 병풍바위를 찍은 사진

  

사진출처 : 경향신문

   

 

인왕산 치마바위

글씨가 새겨진 병풍바위 오른쪽에 주름진 치마 모양의 바위가 있습니다.

 

 

            

인왕산 자락길

 

인왕산 수성동계곡에서 위로 올라가

인왕산 자락길로 갔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창의문으로 갑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인왕산 수성동계곡이 나옵니다.

   

           

참새들의 쉼터

       

  

서울 시내가 보입니다. 남산

  

  

북악산(백악산 白嶽山)

     

 

   

북악산이 보입니다.

   

   

인왕산 자락길 건강산책로

      

          

올바른 걷기 방법

               

 

   

해가 제일 먼저 사랑한 나무

혼자 붉은 옷을 먼저 입었어요.

   

  

서시정(序詩亭)

    

  

북한산 풍경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라서니 북한산이 보입니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나월봉 문수봉 보현봉

     

   

족두리봉

          

   

위에 한 사람이 앉아있어요.

 

향로봉 비봉

            

   

나월봉 문수봉 보현봉

          

  

문수봉

     

   

위에 한 사람이 서있습니다.

 

보현봉

       

   

북악산

       

           

윤동주 시인의 언덕

 

서시

      

 

             

윤동주 문학제를 준비하고 있네요.

                

          

윤동주 문학관

            

 

                    

2015 윤동주 문학제

2015.9.11(금)~13(일)

* 윤동주 시화전시회      * 윤동주 창작 음악제

* 윤동주 시 낭송의 밤    * 윤동주 문학 강연

 

13일 오후 3시에는 ‘윤동주 스마트폰 3분 영화제’가 열리고,

13일 오후 5시에는 시민과 함께 즐기는

‘열린콘서트’도 개최 될 예정이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인왕산 자락길 안내도

             

위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창의문(彰義門)

 

창의문(彰義門)은 사소문 중 하나로 자하문(紫霞門)으로 더 많이 알려진 문이다.

     

   

4소문 중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창의문

서울성곽이 축성된 1396년에 지어졌다.

창의문은 한양 도성 4소문(小門) 중 서북문에 해당하는 성문이다. 이 문을 나서면 현재 종로구 신영동 평창동 일대의 장의사 계곡으로 이어진다. 이곳을 흐르는 홍제천을 따라가면 서대문구 홍제동 홍은동 녹번동으로 이어지는 문산대로로 연결된다. 따라서 개성 이북의 황해도나 평안도로 내왕하는 길손들은 이 문을 지름길로 삼았으니 서대문 못지않게 내왕이 빈번했다. 사적 제 10호 ≫

             

   

겸재 정선 창의문

도성 북쪽의 백악과 서쪽의 인왕산 능선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서울 도성의 서북쪽 문인 창의문과 그 아래 펼쳐진 계곡을 그린 그림

             

 

   

창의문 홍예 천장

         

              

창의문의 천장화에는 닭이 그려져 있다.

이 일대가 풍수적으로 지네의 기운을 가졌다하여

천적인 닭을 창의문에 그려 넣었다.

              

      

인조반정 공신 현판

               

           

북악산이 보입니다.

          

    

9월 9일 청명한 날! 집에서 보이는 북한산 풍경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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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와 친구인 아버지 라사행 목사님

윤동주 연표(신동아 2005년 4월호)에

≪ 1939년(23세) 연전 문과 2학년으로 진급.

기숙사를 나와서 북아현동, 서소문 등지에서 하숙생활. 북아현동에서 살 때,

라사행과 함께 정지용을 방문,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

아버지 함자가 나옵니다.

 

나는 사진을 보고 “아버지”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42살에 미국으로 유학 가신 후 태어나서

돌이 갓 지나서 “엄마, 아버지”를 말했다고

언니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 있습니다.

 

그래 그런지 아버지에게 애교도 없고 사랑스럽게 군 적이 없습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을 때

아버지가 나의 보호자였는데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니

너무 이상했습니다.

 

윤동주 문학관 벽에 있는 시에

민들레의 평안도 사투리인 문들레!

서울, 대전, 미국에 있는 오남매에게

‘문들레 편지’를 보내주시던 아버지.

집에 가면 무엇이든 주시고자 하고

삼계탕을 끓여주셨던 아버지!

베풀어주시는 아버지 은혜를 당연하다고 여겼고

사랑 표현을 못했습니다.

 

내일 주일 예배 때 ‘그 사랑’을 찬양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라사행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두 주 동안 열심히 들으면서 배웠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찬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그 사랑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신명기 8장 6, 7,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