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2011년 평신도 월례회공과 1
1 .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유영설 목사님 (여주중앙교회)
성경봉독 : 창세기 18:22∼33
참고성경 : 에베소서 5:15~18
요 절 :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 18:3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목적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갈망을 따라, 롯을 위해 중보기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손님으로 가장한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죄악의 도시 소돔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예고를 들은 아브라함은 소돔성에 있는 조카 롯과 소돔성 사람들을 위하여 여섯 번이나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죄악이 많음으로 하나님께서 그 땅에 심판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 18: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과 그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는 단지 자기 조카 롯의 식구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였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혹시 그 성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소수의 의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결심 앞에서 아브라함은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한편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한 성읍을 보면서 이 시대에 참 의인은 몇 명인지, 우리는 그 의인 가운데 포함되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따라 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의도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할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기도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내가 원하는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아를 포기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 없는 다른 존재입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미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분별하기가 쉽지 않으며 자신의 목적과 뜻대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맞추는 기도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하기를 기도하신 것에서 기도의 모범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왔을 때 예수님도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이지만 그 길을 피하고 싶으셨던 인간적인 약함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결단을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목적이요, 바른 기도입니다.
2. 다른 사람을 위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준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남의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며 기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기도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기도 생활을 게을리 하는 그 자체가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를 사랑하지 않고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 사랑하게 되고 그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기도는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누군가로부터 항상 중보기도를 통한 기도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공의에 의지한 호소였습니다(창 18:23~25).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에만 매달려 무조건적인 용서를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중보기도였습니다. 다음으로 그분의 자비와 긍휼에 의지한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의인 오십, 사십오, 사십, 삼십, 이십, 십 인으로 진행되는 간절하고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소돔 성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타는 사랑과 그의 간청을 끝까지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와 긍휼에 의지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며 한 영혼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담긴 기도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소돔성을 위한 기도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벗어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청원하면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고, 하나님이 대답하시면 아브라함이 또 다시 청원하였습니다. 기도가 이렇게 된 것은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교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친밀한 관계로 이루어진 교제였습니다. 우리가 친밀한 관계일 때 세밀하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기도를 통한 교제가 친밀해지면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한 것처럼 기도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했으나 겸손하게 드린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땅에 붙어 있는 “티끌과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라고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겸손함과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롯이라는 한 개인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대면한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한편 하나님은 용서와 관용의 태도로 아브라함의 기도를 경청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소돔성에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그곳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 시대의 사회가 진리와 정의가 없는 죄악과 부조리한 현실임을 반증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 시대보다 더 의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의로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대면하는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 론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확신한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둘째, 자신을 하나님 앞에 티끌과 같이 낮춘 겸손의 기도였습니다.
셋째, 친척 롯만을 위한 편협한 기도가 아니라 성중의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이고 이타적인 기도였습니다.
넷째, 타락한 영혼까지 진정으로 사랑한 끈질긴 애원의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든지 믿음과 겸손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문제만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문제, 그리고 기도의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뜻대로 이루어짐을 확신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환경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기도의 능력이며, 기도 응답의 열매입니다.
1) 나의 기도 중에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정의를 위한 기도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말해 봅시다.
2) 의인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어려움과 고민이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평신도국 자료『2011년 평신도 월례회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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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할 때 영적 에너지를 사용하므로 힘이 든다.
전에는 내가 중보기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근래에 많아지다 보니 “중보기도 하겠다” 는 말을 하기가 신중해졌다.
담임목사님이자 작은 오빠를 위해서 식사를 할 때마다 기도한다.
또 기독교대한감리회를 위해서도 식사를 할 때마다 기도한다.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일주일만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생각날 때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린도전서 14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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